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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무 Feb 18. 2023

알파 메일이 짝짓기를 독점할까?

『차이에 관한 생각』 4장 ~ 7장 리뷰

지난 글(남자아이를 여자아이로 키우면 여자아이가 될까?)에서는 남자아이를 여자아이로 키운다고 해서 여자아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도 흥미로운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알파 수컷(남성)은 다수의 암컷(여성)과의 짝짓기를 독점하고, 암컷(여성)은 알파 수컷(남성)과만 짝짓기 하기를 원할까?


바람둥이 알파 수컷과 까다로운 암컷들의 이야기를 어디에서 처음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동물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기도 하고, 학교 선생님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이야기를 별 의심 없이 받아들였고, 지금도 이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과 며칠 전에도 한 커뮤니티에서 결혼은 널리 유전자를 퍼뜨리고 싶어 하는 남성에게는 본능을 거스르는 제도라는 글을 읽었다. 여성의 경우 가장 우수한 남성 한 사람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결혼 제도가 본능에 맞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글에서는 여성들이 지위가 높은 남성에게 실제로 성욕 혹은 사랑을 느끼기 쉬운데 이것은 자신과 자식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한 생물학적 본능이라는 주장이 펼쳐졌다. 인간의 본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이 주장들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





4장. 잘못된 비유


리젠트파크동물원의 멍키힐에서 일어나 주커먼의 실험은 우리가 믿고 싶은 것에 잘 맞아 들었다. 이 실험에서 수컷 망토개코원숭이들은 암컷을 놓고 격렬하게 싸웠고, 암컷들을 전리품처럼 질질 끌고 다녔고, 일부 암컷을 죽게 했으며, 죽은 시신을 붙잡고 교미를 했다. 이 살육극은 전체의 3분의 2가 죽으면서 가라앉았다. 주커먼은 이를 근거로 수컷은 본질적으로 우월하고 폭력적이며, 암컷은 거의 발언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학살극이 소수의 암컷과 압도적으로 많은 수컷이 있는 상태에서 발생한 병적인 행동이라는 것도, 망토개코원숭이는 우리와 유전적으로 거리가 멀며 영장류 사이에서 수컷의 암컷 지배가 전형적인 특성이 아니라는 것도, 망토개코원숭이는 암수 사이의 크기 차이가 예외적으로 크다는 것도 모두 간과되었다.


대중들은 이 '호전적인 수컷' 이야기를 좋아한다. 왜 우리는 여전히 폭력적인 학살 이야기를 자연 질서로 묘사하는 데 흥미를 느낄까? 우리는 두 성을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양분하면서 영장류의 끔찍한 상황을 드러낸 주커먼의 틀린 이야기에 푹 빠진다. 그 지배자들이 결국 빈 손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앞서 이야기한 망토개코원숭이에 대해 말하자면, 한 수컷과 한 암컷이 일단 유대를 맺으면 다른 수컷들은 좀체 그것을 침범하지 않는다. 암컷이 선호를 표한 수컷과 함께 있을 때는 그 암컷을 뺏으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수컷은 먹이가 자신과 다른 수컷 사이에 있으면 싸움이 일어날까 봐 자리를 피한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가 원숭이인 개코원숭이에게서 사람의 젠더에 상응하는 것을 찾으려 한다는 데 있다. 유전적으로 인간은 호미니드과에 속하며, 보노보와 침팬지는 우리와 유전적으로 정확하게 똑같은 거리만큼 가깝다. 보노보와 침팬지를 놔두고 개코원숭이를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자료로 쓰는 것은 무리가 있다.



5장. 보노보의 자매애


앞서 보노보는 인간의 가까운 친척으로, 유전적으로 인간-침팬지의 거리는 인간-보노보의 거리와 똑같다고 이야기했다. 침팬지에 비해 보노보의 존재는 조금 낯선데, 보노보는 침팬지와는 (특히 젠더에 관해) 다른 독특한 특성을 보여 매우 흥미롭다.


보노보는 성을 밝힌다. 가능한 모든 조합으로 성행위를 즐기고, 잦은 성관계 빈도를 보이며 관능적으로 살아간다. 보노보에게 암컷끼리의 성행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자매애를 다지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가장 흔한 패턴은 서로의 성기를 맞대고 비비는 GG 러빙이다. GG 러빙을 할 때 두 암컷은 크게 웃으며 꽥꽥거리는 소리를 낸다.


또한, 보노보는 평화롭다. 침팬지와 달리 보노보가 다른 보노보를 죽인 사례는 확인되지 않는다.


보노보는 여성지배적이다. 인류의 진화를 다룬 시나리오는 전부 수컷의 우월성을 기본 전제로 상정했는데, 가까운 친척 종에서 암컷이 지배하는 상황은 이 시나리오 기반을 무너뜨린다. 알파 암컷은 대개 나이와 성격을 바탕으로 그 지위에 올라가며, 암컷들은 서로 협력해 수컷에 대항한다.


여성지배적인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수컷 보노보는 불행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수컷 보노보들은 암컷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성관계와 털고르기를 충분히 즐긴다. 수컷 보노보는 수컷 침팬지보다 부상이나 죽음의 위험이 낮다. 침팬지의 지위 다툼은 험악하며 암수 침팬지 모두 큰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6장. 성적 신호


음핵은 모든 포유류에서 발견된다. 음핵은 음경보다 감각세포의 밀도가 더 높기 때문에 결코 우연히 생겨난 것은 아니다. 암컷의 오르가즘이 임신에 필요하지는 않지만, 음핵은 성행위를 즐겁고 중독성 강한 일로 만들기 위해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진취적인 암컷의 섹슈얼리티를 상정한다.


보노보는 짝짓기를 할 때 수컷이 암컷의 표정과 소리에 반응하여 행동한다. 암컷이 지루함을 표시하면 수컷은 움직임을 완전히 멈추기도 한다. 암컷은 정상위 자세를 선호하고 수컷은 후배위 자세를 선호하는데, 수컷이 뒤쪽에서 시작하면 중간에 암컷이 재빨리 몸을 돌려 자신이 선호하는 정상위 자세로 바꾸기도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침팬지는 수컷이 자세를 지시하고, 암컷이 고개를 뒤로 돌리지 않는 이상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발정기의 암컷 보노보나 침팬지는 자신의 성기를 의기양양하게 내민 채 걸어 다닌다. 하지만 유혹하고 싶지 않은 수컷 앞에서는 이것을 숨기려고 시도한다. 야생 암컷 침팬지는 자랄 때 함께 있었던 나이 많은 수컷과 짝짓기를 피한다. 그가 자신의 아비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동물 종은 수컷이 화려하고 암컷은 칙칙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반면, 호미니드 삼총사(사람, 침팬지, 보노보)에서는 그 관계가 역전된다.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고 그것으로 판단받는 쪽은 여성이다. 수컷도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지위와 힘과 관련이 있다.



7장. 짝짓기 게임


알파 수컷은 여러 암컷들과 짝짓기 하며, 암컷은 알파 수컷과만 짝짓기 한다는 이야기는 익숙하다. 임신과 출산에 드는 노동력을 고려하면 암컷은 우수한 유전자를 남기고 싶어 하며, 그렇기 때문에 수컷에게는 지위가 곧 성적 매력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주장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관찰된 성행위에만 의존한 오류였다. 알파 수컷은 공공장소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 반면, 다른 수컷들은 보이지 않는 곳이나 밤중에 몰래 활동한다. 유전자를 분석해 보면 알파 수컷은 평균보다 높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때로는 더 지위가 낮은 수컷이 더 많은 자식을 남겼다. 암컷의 나름대로의 성적 선호를 갖고 있고, 이것은 위계질서와 무관할 때가 있으며, 위계질서와 일치하지 않으면 알파 수컷 몰래 하위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 유전자적인 측면에서만 생각해 보자면 알파 수컷하고만 짝짓기를 하는 것이 나은 선택인데도 말이다.


기존의 과학자들은 문란한 수컷과 까다로운 암컷이 진화를 이끌었다고 생각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베이트먼은 초파리 실험 결과를 들었다. 암컷 초파리는 만나는 수컷의 수와 상관없이 동일한 수의 자식을 낳는 반면, 수컷은 암컷을 더 많이 만날수록 자식의 수가 늘어났다. 베이트먼의 원리는 지금도 자연에서 행동의 성차를 설명하는 복음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암컷이 까다롭고 순결하고 충실하고 조신하다는 개념은 우리의 문화적 편견과 너무 잘 들어맞는데, 그 연장선에서 암컷이 일부일처제에 더 적합하다는 견해도 통용됐다.


그런데 조류학자들은 일부일처제가 피상적인 실체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부일처제의 모범적인 본보기로 거론되는 새들조차 DNA 검사를 하면 같은 둥지에 있는 알들의 아비는 여럿인 것으로 드러났다. 처음에 과학자들은 암컷 새들이 강제로 당한 것으로 추측했지만, 추적 결과 암컷이 적극적으로 외부의 수컷을 찾아간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이후 고와티는 개선된 방법을 사용해 베이트먼의 초파리 실험 결과를 재현했는데 동일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여기에 영장류가 가세한다. 암컷 유인원은 (많은 동물 사례에서 그러하듯이) 다양한 수컷과 성관계를 맺으려고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동물은 수컷이든 암컷이든 다수의 이성과 짝짓기를 즐기는데, 이것은 수컷과 암컷에게 모두 적용되는 우월전략이다. 암컷의 섹슈얼리티는 남성의 섹슈얼리티만큼 능동적이고 진취적이다.


가장 우수한 유전자만을 품어야 하는 암컷이 최고의 수컷과의 짝짓기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누군가는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동물은 짝짓기와 생식의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있지 않다. 짝짓기는 생식을 목적으로 한 본능이지만, 각 개체가 그것을 의식하고 짝짓기를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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