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에 관한 생각』1장 ~ 3장 리뷰
젠더에 관한 논쟁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젠더에 대한 주장은 극단적이다. 하나는 남성과 여성은 성기 외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차이가 있어 보이는 것은 사회와 문화가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다르며, 남성의 여성 지배는 이 차이에 따른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모든 차이를 없는 냥 대하려는 쪽과 사소한 차이를 과장해 의미를 부여하는 쪽의 치열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논쟁에 대해 흥미로움을 느끼던 때도 있었으나 언젠가부터 소모적으로만 흘러가는 모습에 피곤함을 느꼈다. 그러던 와중에 한 영장류 학자가 과학적 관찰을 기반으로 젠더에 관한 통찰을 제공하는 이 책을 발견했다. 무엇이 더 믿고 싶은 진실인지를 떠나 우리 종의 친척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유인원들은 인간 사회에 작용하는 사회적 압력이 없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성차(혹은 그런 게 없다면 없는 상태의 성차)를 드러낼 것이다.
책의 대부분은 침팬지와 보노보를 관찰한 결과를 기술하는 데 할애된다. 침팬지와 보노보는 인간과 유전적 거리가 정확하게 동일하지만, 놀랍게도 매우 다르게 행동한다. 침팬지 사회는 공격적이고 세력권을 중시하며 수컷이 지배한다. 보노보 사회는 평화롭고 섹스를 좋아하며 암컷이 지배한다. 입장에 따라 침팬지의 이야기가 만족스러울 수도 있고, 보노보의 이야기에 구미가 당길 수도 있다. 그러나 동일하게 가까운 유인원 종이 있다면 둘 다 동일한 비중으로 참고하여 인간을 파악하는 것이 과학적인 태도일 것이다.
한때 여자아이에게 인형을 사주고 남자아이에게 자동차나 로봇을 사주는 것이 성차별적이라는 논의가 있었다. 장난감을 통해 우리의 기대와 편견을 아이들에게 주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험에 따르면 수컷 유인원의 경우 자동차나 공을 더 선호하고, 암컷 유인원의 경우 인형에 관심을 보인다. 어린 수컷은 소란스러운 싸움 놀이를 통해 성장하는 반면 어린 암컷은 보살핌 놀이를 하며 성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의 성에 맞는 장난감을 주어 진짜 남자나 진짜 여자로 성장할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역으로 아이에게 반대 성에게 맞다고 여겨지는 장난감을 주어 젠더 중립적으로 키우려고 한다. 저자는 아이가 선택한 놀이와 장난감을 존중해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색깔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남자아이는 파란색으로, 여자 아이는 분홍색으로 구분하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관행일 뿐이다. 한때는 이 색들이 정반대로 적용된 적도 있었다. “분홍색은 더 확고하고 강한 색이어서 남자아이에게 어울리는 반면, 더 섬세하고 우아한 파란색은 여자 아이에게 더 예쁜 색”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남자아이를 여자 아이처럼 키우면 여자 아이로 사회화가 될까? 존 머니는 젠더가 순전히 양육에 달린 문제이므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기가 손상된 남자아이를 여자 아이로 키우는 '데이비드 라이머 사건'을 통해 우리는 사회화만으로 젠더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젠더가 생물학을 초월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젠더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난데없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젠더에는 유전자와 환경이 작용한다. 젠더 역할은 문화적으로 습득되는 것이지만, 그 습득이 아주 어린 나이에 별다른 저항 없이 아주 빠르게 일어난다는 것은 생물학적 기전이 있기 때문이다.
실험에 따르면 같은 젠더의 사람을 모방하면 뇌의 보상 중추가 활성화되는 반면, 반대 젠더의 사람을 모방하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 암컷(여성)은 자신의 어미를 모방하고, 어린 수컷(남성)은 어른 수컷(남성)을 모방하며 자기 사회화를 실현한다. 진화는 같은 젠더에 동조하면 좋은 기분이 드는 편향을 심어주었다는 것이 시사된다.
그러나 자신의 생물학적 성과 모방하고 싶은 젠더가 불일치하는 경우가 유인원에게도 사람에게도 발견된다.
암컷 침팬지 도나는 수컷에 가까운 행동을 더 많이 보였다. 외모도 수컷에게 어울리는 거친 특징을 지녔다. 하지만 생식기는 어엿한 암컷이었다. 수컷들도 도나에게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짝짓기 시도도 하지 않았다. 저자는 도나를 에이섹슈얼 젠더 비순응(asexual gender-nonconforming) 개체로 표현하는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어쨌든 도나는 모두와 잘 지내며 문제없이 살아갔다.
트랜스젠더 존재는 젠더 정체성이 본질적이고 체질적임을 보인다. 만약 젠더가 사회적 압력에 의한 부산물에 불과하다면 사회적 압력과 반대되는 젠더 정체성을 지니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뇌에는 모방해야 할 롤 모델로 어떤 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 판별하는 렌즈가 있는데, 트랜스젠더 정체성은 뇌가 반대 성을 스승으로 받아들일 때발생한다. 뇌와 몸이 반대되는 성을 택하는 것이다.
생물학적 성과 문화적 젠더는 구분되지만,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젠더는 외부적 압력으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 내부에서 생겨난다.
남성이 더 이성적이고 감정에 영향을 덜 받는다는 믿음은 어디에서나 흘러나오지만, 감정에 휘둘리는 정도가 젠더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남성이 얼마나 감정적인지는 중요한 스포츠 경기 때 남성이 보이는 행동을 보면 된다. 어떤 감정이 어떤 때에 드러나기에 적절한지 젠더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뿐이다. 여성은 슬픔이나 공감성의 감정이, 남성은 분노와 권력을 강화하는 감정이 용인된다.
사실 인간이 이성/감성으로 구분된다는 것은 미신으로 판명났다. 사람의 생각은 대체로 직관적이고 잠재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해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영역이 생각 이전에 이미 작동하고 있음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이렇듯 우리가 성에 대해 하는 많은 말들은 불확실하다. 젠더의 의미를 과장하기도 하고, 이에 대한 반발로 젠더 차이를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축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쪽 극단도 증거와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려워졌다.
저자는 그래서 말을 하지 않고 오직 행동으로 보여주는 유인원 관찰이 성에 대해 훨씬 정확한 정보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위계질서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위계질서를 규탄하고, 남들은 권력을 탐하지만 자신만큼은 권력에 관심이 없는 듯 이야기한다. 그러나 과학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다. 그 이해에 따르면 동물계에서 위계질서는 수컷에게도 암컷에게도 일종의 원초적 본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