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아무 Nov 07. 2022

인간, 동물, 기계 중 둘을 묶는다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의 리뷰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소설로 유명하다. 영화도 명작이라고들 하지만, 어느 정도 생략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영화보다는 소설이 더 흡입력 있게 진행된다고 생각하여 영화 대신 소설을 선택했다.



최종 세계대전 이후 지구는 방사능 낙진으로 뒤덮여 불모지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성으로 이주하여 인간처럼 생긴 로봇 안드로이드를 시종이나 일꾼으로 부리며 살아간다. 지구에 남은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물을 키우는 것을 고귀한 일로 여긴다. 릭 데카드는 자신의 주인을 살해하고 지구로 도망친 안드로이드를 잡는 현상금 사냥꾼이다. 그는 안드로이드를 퇴역시켜(죽여) 번 돈으로 전기양 대신 진짜 동물을 키우고 싶어 한다. 그는 신형 모델 넥서스-6 여섯 대의 사냥에 나선다. 무엇이 진짜(인간)이고 무엇이 가짜(안드로이드)인지에 대한 혼란이 이야기를 이끈다.



# 펜필드


"888번에 다이얼을 맞춰. TV를 보고 싶어 하는 열망, 뭐가 방영되든지 간에 말이야."

"지금 당장은 아무 쪽에도 다이얼을 맞추고 싶지 않아."

"그러면 3번에 다이얼을 맞춰."

"다이얼을 맞추고 싶게끔 대뇌피질을 자극하는 설정에도 다이얼을 맞출 수가 없다니까!"




소설에서는 펜필드라는 기기로 두뇌를 전기로 자극하여 자신이 느끼는 기분이나 욕망을 설정할 수 있다. 미래에 여러 가지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자각, 황홀경의 성적 희열, 일에 대한 창의적이고 신선한 태도, 만사에 남편의 지혜가 월등함을 기쁘게 인정함 등 무엇이든 느끼도록 설정할 수 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도 결국 전기 신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인간은 안드로이드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소설 속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면, 릭의 아내 아이랜이 절망을 설정하는 장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유용성도 없고 심지어 유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랜은 절망을 느끼고 싶어 한다. 인간은 슬픔이나 절망에 빠져나오려 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인간은 자기파괴적인 생각에 몰두할 때가 있다. 더 나아가 자기학대나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절망을 느끼고 싶어 하는 욕망조차 뇌에서 이루어지는 전기 신호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인간은 자연이 만들어낸 알고리즘에 따라, 안드로이드는 인간이 만들어낸 알고리즘에 따라 감정과 욕망을 느끼고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절망이란 부정적인 상황에 대해 깔끔하게 납득하여 체념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타개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도 아니다. 안드로이드에게는 0도 1도 아닌 절망이라는 상태가 굳이 필요하지 않기에 의도적으로 절망을 배제하고 설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드로이드의 절망을 의도한다면, 안드로이드가 절망을 느끼지 않을 이유 또한 없을 것이다.



# 보이트 캠프 척도


당신은 생일에 송아지 가죽 지갑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당신의 어린 아들이 갖고 있던 나비 표본을 당신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누드 모델이 커다랗고 아름다운 곰 가죽 깔개 위에 엎드려 있습니다.

요리사가 끓는 물에 바닷가재를 풍덩 빠트립니다.

벽난로 위에 박제된 사슴 머리가 하나 걸려 있습니다.

투우 포스터로 벽이 멋지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손님들은 생굴을 맛보고 있습니다. 주요리는 속에 쌀을 넣고 푹 삶은 개고기였습니다.




안드로이드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의 리스트는 위와 같다. 릭은 동물의 죽음이 연상되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즉각적이고 생물학적인 반응을 측정한다. 동물을 보호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사회이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감정이입 능력이 인간성을 입증하는 조건인 것이다.


내가 이 검사를 받는다면 아마 안드로이드로 판명이 날지도 모르겠다. 질문 중 절반 정도는 거부감이 들지만, 나머지 절반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성에 대한 규정은 그 자체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무엇에 감정이입을 하고, 무엇에는 할 필요가 없는지 교육받는다.


예전에는 흑인, 여성, 어린이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 우스운 일이었다. 기득권들에게 이 존재들은 자신과는 다른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흑인, 여성, 어린이라고 해서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도덕적으로 비난받는다. 나중에는 동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을까? 기득권과 다른 미천한 존재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우리'의 범주에 들어오는 것이 사회 발전의 방향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감정 이입 장치


그는 그들을, 다른 사람들을 경험했으며, 그들의 재잘거리는 생각들에 통합되었고, 그 수많은 개인의 존재로부터 비롯되는 소음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었다.(...) 왜 나는 여기에 혼자 올라와 있으며, 심지어 똑바로 볼 수조차 없는 무언가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걸까? 바로 그때, 그의 내부에서, 융합된 다른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한 마디씩 떠들어대면서 외로움의 환상이 깨지고 말았다. 당신들도 역시나 그걸 느낀 거군. 그는 생각했다. 맞아. 목소리들이 대답했다.




감정 이입 장치는 사람들의 뇌를 연결하는 기기처럼 묘사된다. 감정 이입 장치에 손을 대면 타인의 생각, 감정, 고통을 내 것처럼 내 안에서 느낄 수 있다. 감정 이입 능력은 인류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한몫을 했다. 타인의 고통이 내 고통 같기에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타인의 기쁨이 내 기쁨 같기에 그것을 늘리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연결이 단절된 소설 속 사람들은 이 감정 이입 장치에 매달린다. 함께 나누는 것이 고통일지라도 그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인간에게는 연결에 대한 욕망이 생존 본능처럼 존재하는 것 같다. 의식주에 충족되더라도 타인의 존재가 없으면 결핍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타인이 제공하는 편의가 아니라 타인의 존재 자체가 필요한 것이 인간이 가진 특징이다. 그래서 인간은 타인이 지옥이라면서도 지지고 볶고 살 수밖에 없는 안쓰러운 존재이다.


릭은 자신이 처단해야 하는 안드로이드에게까지 감정 이입을 겪으며 딜레마에 빠진다. 모든 안드로이드에게 감정 이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안드로이드(여성)에게는 감정 이입을 한다.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인간이 안드로이드에게 감정 이입을 한다면 인간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지 않을까?


그러나 인간의 감정 이입은 놀라울 정도로 선택적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동물을 먹으면서 자신이 키우는 동물을 떠올리는 사람은 소수이지 않은가. 같은 인간끼리도 자신의 적은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지 않은가. 이중잣대는 인간의 역겨운 면모이면서도 생존을 위해 필요한 사고이다. 모든 것에 감정 이입을 한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 인간, 동물과 기계 그 사이에서


인간은 동물과 기계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동물의 행동 양식은 본능에 새겨진 대로 움직이는 것일 뿐이고, 기계의 행동 양식은 인간에 의해 설계된 대로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 인간은 이것과 달리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동한다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었다. 인간은 지적으로도 동물과 기계보다 위대했다.


그러나 이 같은 믿음에 의심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인간도 전기 자극과 화학 자극에 종속적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자유의지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게다가 기계의 지적 능력은 인간을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은 이제 존재 자체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다. 기계보다 자신이 나은 것이 무엇인지 입증해야 하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우월한 인간, 열등한 동물과 기계라는 분류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새로운 분류를 시도한다. 자연인 인간과 동물, 인공인 기계라는 분류이다. 왜 자연이 인공보다 우월한가에 대한 뚜렷한 답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계와 인간의 차이가 동물과 인간의 차이보다 크지 않을 때에도, 인간은 여전히 기계와 묶이기보다는 동물과 묶이기를 원할 것이다. 원본은 (질적으로 똑같더라도) 복제와 똑같이 취급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하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기계발서는 원래 안 읽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