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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테이너 김승훈 Jun 15. 2023

신념과 편견 그리고 고정관념이 영 좋지 않다면?

신념에는 장애가 없어요(Feat. ADHD) | 사심 史心 인문학 6화

신념(信念)은 영어로 Belief 또는 Faith로 ‘굳게 믿는 마음’이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신심(信心)도 비슷한 뜻이기는 한데, 신심은 주로 종교에서 사용하는 말이고 인문학에서는 신념이라는 말을 많이 써요. 사람의 지식과 학문은 신념들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보면 돼요. 신념은 그 뜻이 더 확장되어 가치관, 좌우명, 이념 등을 뭉뚱그려 말하기도 해요.

신념을 갖고 그 신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에요. 단, 우리 자신의 신념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신념도 중요해요. 물론 자기 자신의 신념이 잘못되었는지도 돌아 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해요. 점검이 없는 신념은 아집이라고 하죠. 아집이 극단적인 사고방식과 결합되면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게 돼요.


신념이 있으면 주체적으로 살게 돼요. ⓒ 지식테이너 김승훈

신념은 개인의 삶에서 어떠한 목표방향을 결정해요. 신념 없는 삶은 우유부단하고 모순적일 수 밖에 없어요. 자신의 삶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신념이 있으면 그 길을 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신념이 없으면 결정을 하지 못해서 주저하게 되거든요. 신념은 사람이 무언가를 결정하는 이유에요. 신념이 없으면 사람은 하루하루 될 대로 돼라 생각으로 욕구에 따라 살고,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순간에 판단을 하게 될 근거를 찾지 못해 그냥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리게 돼요. 물론, 항상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논리적으로 선택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는데, 이러한 부분도 항상 ‘나에게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하는’ 신념이라고 보는 거예요. 목적의식 없는 결정은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전의 결정과 이후의 결정들이 서로 모순이 되거나 흐지부지 될 수 있어요. 이런 경향은 확실한 답이 있는 문제보다 도덕적, 윤리적인 선택의 딜레마가 있을 때 많이 나타나요.

그런데, 개인의 신념이 공공의 이익에 반하게 되거나 반사회적인 경우도 있는데, 차라리 그런 신념은 없는 게 나아요. 대표적인 예로는 최근에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정유정 같은 사이코패스가 있죠. 아니면 삶에서 충격을 받아 자신에게 피해를 준 원수에게 복수하고자 흑화하는 경우도 있어요. 신념은 매체에서는 캐릭터나 인물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기도 해요. 주인공 캐릭터들도 각자의 신념이 있고, 엑스트라들도 신념이 있어요.


앞에서 이야기 했지만, 특정 분야에 대해 아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끝까지 오기와 아집을 부리며 자기 주장을 굽힐 줄 모르는 고집불통 그 자체인 사람이 있어요.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이경규 씨의 명언이 있어요. 사회적으로는 정치극단주의자반지성주의자들이 이런 부류에 속하구요. 직장에서 아는 것이 적은데 부지런하기만 한 직장 상사도 이에 해당돼요. 해당 분야에 대해 책 한 권만 읽고 그 것이 세상의 전부인 양 떠드는 사람도 무서워요(다만 이경규 씨는 본인이 만들었던 영화 <복수혈전>이 망했던 것에 대한 자괴감을 느껴 자아비판을 했다는 해석도 있음).

어떻게 보면 ‘신념’이라는 말은 듣기 좋게 말한 완곡한 표현이고 진짜 뜻은 ‘믿음’이라고 보면 돼요. 세상에서 제일 구제불능인 사람은 무식한데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건데, 극단적으로 세상에서 제일 구제불능인 사람은 자신만의 아집에 갇힌 고집이 세고 무식한 인간이에요.

대표적인 예로 유튜브에 떠돌고 있는 가짜 뉴스가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어요. 정치 카테고리의 컨텐츠에 보면 댓글에 무조건적인 찬양과 무조건적인 비판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아요. 온라인 매체 시대에 진실보다는 자신의 신념이 더 가치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있는 슬픈 현실(그래서 본인이 정치인이 아니라면 정치인과 너무 친하게 지내지는 않는 것을 추천).


편견(偏見, Prejudice)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친 생각, 그러한 생각으로 인해 상대에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를 말해요. 고정관념(固定觀念, Stereotype)은 잘 변하지 아니하는, 행동을 주로 결정하는 확고한 의식 또는 관념이나 어떤 집단의 사람들에 대한 단순하고 지나치게 일반화된 생각을 말해요(by 표준국어대사전).

편견은 한 쪽으로 기울었다는 부정적인 뜻이 있는데, 고정관념의 경우 통념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는 좋고 나쁨의 의미가 없는 중립적인 뜻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고정관념은 나쁜 뜻으로 쓸 때는 ‘잘못된’ 고정관념이라는 수식언이 붙을 필요가 있어요. 어떠한 통념이나 고정관념이 있다고 해서 그 자체로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고, 정정하거나 계몽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단정 할 수는 없어요. 다만 부정적 맥락으로 화제를 돌릴 때 이러한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는 통념이나 고정관념이 그 자체로 부적절하거나 부정적인 것이라 느낄 때가 많아요.

경향, 추세, 통계적 결과 등에 따른 결론과 편견에 따른 결론의 차이에 대한 예를 들면 이래요. “30대 남성들 중에는 유튜브를 시청하는 이들이 많은 편이다.” 이런 서술은 30대 남성이라는 집단의 어떠한 경향이나 트렌드일 수 있으니 말을 꺼낼 수는 있어요. 신뢰할 만한 통계가 이 서술을 뒷받침 할 수 있으면 서술이 통계적 결과가 될 수 있죠. 그런데 같은 생각이더라도 말의 순서를 바꿔 “저 사람은 30대 남성이니까 유튜브를 시청할 것이 뻔하다.” 식의 서술은 30대 남성이라는 집단과 그 구성원에 대한 편견에 따른 결론이 될 위험이 있어요.


일반적인 정의에 따라 편견은 어떤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태도를 말하고, 차별 대우(Discrimination)는 다른 집단을 적대하여 취해지는 행동이나 행위를 말해요. 누군가 어떤 소수의 집단을 싫어하기는 하지만 이런 태도가 그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편견은 가졌지만 차별 대우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의외로 차별은 하는데 편견까지는 갖지 않을 수도 있어요.

존 도비디오(John Dovidio)는 편견을 어떤 사회 집단 또는 그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부당하고 주정적인 태도라고 정의해요. 그러나 이 정의는 편견이 긍정적일 수 있어 한계를 가져요. 반대로 차별 대우는 일반적으로 어떤 집단과 해당 구성원을 향한 부정적인 행위를 포함하고 있어요. 적대 집단에 대한 차별 대우는 다양한 형태로 일어날 수 있어요. 고든 올포트(Gorden Allport)는 차별 대우에는 5가지 단계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특별한 경우 이 단계가 급속히 증가하기도 해요(예를 들자면 나치의 홀로코스트 범죄 등).


1단계 반항적 말투 : 적대 집단을 향한 언어적 공격.

2단계 회피 : 적대 집단에 대한 체계적인 회피. 어떤 경우에는 이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만드는 단계가 포함되기도 함(나치는 유대인들에게 다윗의 별이라는 인식표를 달고 다니게 하여 일반인들이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게 만듦).

3단계 차별 대우 : 적대 집단은 다른 집단과 비교하여 시민권, 직업 등에서 의도적인 불이익을 당하게 됨.

4단계 신체적 공격 : 적대 집단의 구성원들은 공격 당하고 그들의 소유물이 파괴되기도 함.

5단계 몰살 : 적대 집단의 모든 구성원을 몰살하려는 의도적 시도가 일어남(예를 들면 홀로코스트).


1단계의 경우 사회에서 꽤 많이 나타나요. 편견과 차별 대우가 함께 일어나는 경우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은 일치하는 것처럼 보여요.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편견이 측정될 때는 사회적 압력이 존재해요. 편견은 보통 자기 보고 설문으로 평가되는데, 질문에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Social Desirability Bias)이 영향을 줘요. 사람들은 남들에게 자기 자신이 편견 어린 사람으로 보이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으며, 실제보다 더 관대한 이미지로 자기 자신을 치장하려고 해요.


편견에는 다음 3가지 종류가 있어요.


공공연한 편견 : 대외적으로 특정 집단이나 대상에 대해 편견어린 말과 행동, 태도를 서슴지 않음(여론조사에서 직접적인 주장을 하며 응답하는 경우).

암묵적인 편견 : 겉으로는 편견을 거부하는 것처럼 처신하지만, 다른 동기로 위장이 가능하다면 편견어린 태도를 보임(흑인 이름이 적힌 투고 글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거나, 유별나게 비판을 꺼리려는 태도를 보임).

자동적인 편견 : 암묵적인 편견도 드러내지 않지만, 뇌와 지각(Perception)의 차원에서 편견이 드러남(흑인의 무표정한 얼굴들 속에서 더 자주 화난 얼굴을 찾아내거나, 흑인이 들고 있는 물건들을 총이라고 자주 오지각하기도 함).


이처럼 편견과 같은 친사회적이지 못한 태도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개인 내면에 암묵적으로 깔린 미묘한 측면들을 잡아내는 방법론이 필요해요. 실제로 암묵적 연합검사(IAT : Implicit-Association Test)는 사회심리학자들이 위와 같은 사회적 인지 상황을 연구할 때 쓰는 보편적인 연구방법론이에요.

1990년에서 2000년대 전후 심리학자들은 편견이 보수 우익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여겼고, 그와 관련하여 일반화된 편견(Generalized Prejudice) 또는 심리적 불관용(Psychological Ontolerance) 같은 용어를 제안하기도 했어요. 편견 외에도 차별, 타자와 근본주의, 공격성, 획일화, 다양성 거부, 자기중심성, 우월주의, 선민사상 같은 것들을 싸잡아 보수주의자(Conservatives)들만의 특징이라 간주했죠. 그러나 이것이 연구자의 또 다른 우월의식 또는 타자화가 아니냐는 자성이 있었어요. 이후 2010년대 재럿 크로포드(Jaret Crawford) 등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편견은 좌우를 막론하고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임을 강조하게 됐어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극단적인 정치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어떤 편견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배척하는 소수 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 유사하다고 생각해요. 이를 외집단 동질성 편향(Outgroup Homogeneity Bias)이라고 해요. 이렇게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범주화 하는 사고방식이 고정관념이에요. “어떤 집단에서 우세하게 나타난다고 여겨지는 (대개 부정적으로 받아들여 지는) 특성을 그 집단의 모든 개인들에게 개인 간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부여하는 단순한 인지적 관점”이에요. 편견이 태도 및 정서에 속한다면, 고정관념은 인지에 속해요.

고정관념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타인에 대해 종종 나쁜 쪽으로 우리의 생각을 왜곡시킨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이로 인하여 행동 및 제도 수준의 차별이 발생하고, 실제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또한 편견이라는 정서적 및 태도 수준의 반응 역시 우리의 행복과 삶의 질을 저해해요. 고정관념은 편견이나 차별과 같은 불관용이라는 것에 대해 그것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논리로서 봉사하곤 하는데, 이로 인해 수십 년 동안 사회심리학자들은 고정관념을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지 중점적으로 고민 해 왔어요.

고정관념은 어떤 타인에 대한 범주 정보(Categorical Information)만이 주어졌을 때 그 타인에 대한 대략적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어요. 이를테면 어떤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더라도, 특정한 정보 하나로도 곧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상당 부분 그려낸다는 것이에요. 이렇게 되면 범주 정보가 그 사람에 대한 더 자세한 개인화된 정보(Individuated Information)에 접근할 유인을 차단하게 될 수도 있어요. 개인화된 정보는 범주 정보가 가용한 시점에서 어렵지 않게 얻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개인화된 정보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되는 경향이 문제가 돼요. 또한 하나의 대상에 대한 여러 범주 정보들이 경합할 때에도, 고정관념은 특정 범주 하나만을 신뢰하며 애용하도록 만들어요(학력, 출신 지역, 종교, 젠더, 장애 여부 등).


사회심리학계에서는 “가난한 사람은 정직하고, 부유한 사람은 교활하다.”는 고정관념을 연구했어요. 이에 대해 아론 케이(A. C. Kay)는 이것이 고정관념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반발을 가라앉히기 위한 보상적(Complementary)으로 나타난 고정관념이라고 지적했어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고정관념을 갖게 되는 것만으로도 그 고정관념으로 인한 피해자의 객관적인 성취나 능력을 저해 시킬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이와 관련한 학계의 최초의 보고는 1995년에 나타났어요. 더 무서운 사실은, 정작 당사자가 그 고정관념을 부정하거나 극복하려는 의지를 불태울수록 오히려 성취의 저하가 더 심하게 발생한다는 것.

이 현상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고정관념 위협(Stereotype Threat)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미친 듯이 연구했어요. 때로 실제로 어느 정도 진실에 부합하는 고정관념의 영향을 받더라도 더더욱 부정적 효과를 받게 되며, 더더욱 부정적 효과를 받게 되며, 긍정적 고정관념은 미약하게 그 대상자의 성취를 증가 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점도 밝혀졌어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의 사례는 많이 있지만, 그런 사례에 대해 사람들은 자신의 틀린 고정관념에 대한 반례로 규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고정관념에 종속된 새로운 하위 고정관념을 만들어내며 기존 고정관념과 차별화하고 있어요. 뉴스들을 예로 들자면 “노인 올림픽 선수”, “여류 작가”, “여성 대법관”, “장애인 국회의원” 등의 표현들이 나오는데, 연구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유형 세분화(Subtyping) 및 소집단화(Subgrouping)라고 부르고 있어요. 유형 세분화는 고정관념을 강화 시키고, 소집단화는 고정관념을 약화 시키는 현상이 있어요.


그럼 우리는 왜 고정관념을 갖게 될까요? 심리학계에서는 인지적 자원의 효율적 사용, 동기화에 의한 추동,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보고 있어요.


첫째, 고정관념은 세계를 지각하는 간단한 방법을 제공해요. 예를 들면 모든 뱀이 사람에게 위험한 것은 아니겠지만(약 달여 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뭐), 일단 독사에게 물린 경험이 있거나 직관 경험이 다른 모든 뱀들을 피하는 것이 이롭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것처럼요. 오죽하면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어둠의 마법사가 많은 슬리데린을 상징하는 동물이 뱀이겠어요.

둘째, 고정관념은 때때로 외집단에 대한 적대감과 좌절감의 전치로 인해 동기화 되어 발생 할 수도 있어요. 희생양 만들기(Scapegoating) 관련 연구자들이 자주 제기하는 경우인데, 사회의 문제나 부조리에 대해서 누군가 만만한 소수자 집단을 골라잡아 비난해야 할 동기적 필요성이 발생하고, 그들에 대해 부정적인 일반화를 시도하는 거예요. 고정관념이 외집단에 대한 정당화 될 수 없는 증오를 합리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 대표적으로 그 희생양을 만든 케이스가 유대인을 탄압한 나치였던 거죠.

셋째,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정체성의 일부는 우리가 소속하여 동일시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 집단에 의해 결정돼요. 고정관념이 다른 집단의 구성원들로부터 자신을 확실하게 구분하도록 소속감을 갖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거죠. 집단들을 구분하기 위해 우리가 소속하고 있는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은 비교하는 집단에 따라 어느 정도 변화하는 융통성을 보일 필요가 있긴 해요. 세대 차이나 정치 성향 차이의 경우 이런 사례들이 좀 있죠.


고정관념과 관련하여 일반인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논의가 되는 것들이 있어요. 사람의 경험은 제한이 될 수 밖에 없으니까요. 한부모 가정, 이혼 가정, 다문화 가정, 탈가정 사례자들을 대상으로 봉사 활동을 하거나 상담을 하는 경우, 상당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야 하긴 해요. 이러한 일들을 통해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경우,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문제가 있다는 편견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죠.

정신질환을 고칠 수 없다는 병이란 편견도 이와 관련이 있어요. 증상이 경미하면 다른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게 알아서 숨기는 경우가 많고, 그러기 힘든 사람들이 병원을 많이 찾게 되는 것인데(사실 그런 사람들도 병원에 가는 과정까지 많이 힘듦), 병원에 오래 다니는 사람들은 완치가 어려운 사례들이 많아서, 좋지 않은 경우들을 사람들이 많이 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관련 전문가나 실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차라리 그 것을 모르는 게 편견 없이 공정하게 대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공정하게 대하는 것이 그 당사자를 배려하는 행동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


‘신념이 없는 사람은 편견이 없고, 편견을 버리면 신념이 없다.’라는 말도 있긴 해요. 심리학에서 신념(Belief)은 ‘무엇이 반드시 참일 것이라고 간주되는 진술’이고, 서로 다른 신념들의 관계를 연결해 주는 것을 사회적 공리(Social Axiom)라고 불러요. 종교도 제도화된 형태의 영적 탐색 활동으로 정의되곤 하지만 그 내부에 다수의 신념들의 세트가 내적인 논리적 연결을 통해 존재한다고 보는 거죠. 심리학적 의미에서의 신념의 대표적 사례는 “사필귀정”, 세상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이 벌을 받는 곳이라는 “공정한 세상에 대한 신념(BJW : Belief in Just World)”을 들 수 있어요.

그러나 고정관념은 특정 범주 및 집단에 대해 그들이 갖고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전형성 높은 (주로 부정적) 속성이 그 구성원 모두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어 있을 것이라 일반화하는 인지적 정보 처리 과정이라 봐요. 신념과 달리 고정관념은 집단/범주 한정적으로 명확히 적용되고, 대개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신념에 비해 더 많은 외적 도전을 받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아요. 물론 생각이 유연하지 못하고 잘 양보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신념을 상당히 광의적으로 해석할 경우, 사회적 신념(Social Belief)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기도 하며 실제 이를 바탕으로 하여 고정관념을 정의하려는 시도 역시 있었어요. 신념에 있어서도 기본적으로 개인 내적(Intrapersonal)인 수준에서 볼 것인지 또는 개인 간(Interpersonal)인 수준에서 볼 것인지에 따라 정의와 설명이 다소 갈릴 수도 있다고 봐요.


통념(通念)은 사회적으로 널리 전파 되어서 이미 그렇게 알게 된 상식이나 사고 회로를 말해요. 다르게 말하자면 왠지 그럴싸한 생각이나 사고 방향들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문제는 이 통념이 사실적으로 잘못되었더라도 사회적으로 그 잘못된 내용으로 널리 전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 요소가 있어요.

일반인들이 “~하니까 당연히 -한 거 아닐까?”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도, 좀 더 깊은 내용을 알고 있는 관련 전문가 입장에서는 그 사고 방식이나 결론이 유치하게 보일 수도 있어요. 이런 통념을 깨는 역할을 맡는 사람들은 주로 전문가나 관심이 많은 마니아들. 특히 잘못된 통념은 전수적인 교육이나 대대적 선전이 아니면 깰 수 없어요. 그 만큼 다수의 생각을 고친다는 것이 여러 가지로 현실적이지 못하기도 해요. 그래서 비유적으로 앞 시대를 산 세대는 포기하고 후세에는 많은 시간을 들여 교육하는 것이 약이라고 하죠.

그래서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은 ‘당신이 여태껏 잘못 알고 왔던 것들’, ‘그럴싸하게 모두가 여겼으나, 실제 조사 결과로는 많이 다른 것’을 언급하기도 해요. 통념을 비틀려는 사람 입장에서도, 일반인들이 단순하게 생각해서 얻어지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진행하기도 하구요. 사회적인 프레임의 피해를 받은 것들을 다시 조명할 때도 민간 통념이라는 말을 제시해요.

여기서 주의할 점은 편견이나 고정관념이라는 단어 자체로는 반드시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꼬집을 때는 ‘잘못된’을 앞에 붙여 주는 것이 어법에 맞는 표현이에요. 비슷한 표현이지만 비교하자면 편견은 ‘사회적인 특성 없이 개인만의 특성으로도’ 이뤄질 수 있어요. 통념은 통계적 분포가 치우치지 않고 널리 퍼져있으며 편견은 한 쪽으로 치우쳐 있어요. 고정관념 역시 통계적인 조건과는 관계 없이 개인적일 수도 있어요. 고정관념은 찬반에 관계를 따지지 않는 고정된 상황에서 말한다는 점에서 편견과 또 달라요.


의지가 약해서 약을 먹는 것이 아님 ⓒ 지식테이너 김승훈

신념과 편견, 고정관념 그리고 통념은 이렇게 각각의 뜻은 다르지만, 바꾸기 힘들다는 것에서는 같아요. 사람의 생각은 그 본인이 스스로 깨닫고 바꾸는 것도 힘든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바꾸겠어요. 그리고 그 생각이 ‘사람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면 이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닌데, ‘잘못된’ 생각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바꿔 줘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번 글은 왜 이리 길었냐고 할 것 같아서 말하자면, 이런 것들에 대해 워낙 한이 많이 맺혀서 그래요. 특히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보편적인 생활 방식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는 못할망정, 다른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옳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통념을 갖고 있거든요. 우리나라는 ‘아침형’ 인간을 본받아야 할 생활 방식으로 생각하면서, ‘저녁형’ 인간들의 생활 방식이 게으르다는 잘못된 통념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죠. 그렇다면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일하는 ‘저녁형’ 인간들은 게으른 사람이라는 모순이 생기는데, 이에 대한 반박을 할 수 있겠어요?

또한 ‘아침형’이 되고 싶어도 자기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아침형’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대표적으로 ADHD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뇌 신경의 각성이 현저히 더딘 편이라서, 잠에서 깨는 과정부터 다른 사람들보다 힘들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도 다른 사람들보다 힘들어요. 역시 잠을 청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보다 힘들기 때문에 밝은 밤과 깜깜한 낮을 살아간다고 비유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람들은 ADHD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행동이 게으르고 예의가 없다잘못된 통념을 갖고 있어요.

사실 우리나라만큼 잠에 대하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나라는 없을 거예요. 각자의 건강에 맞게 자는 시간대와 자는 시간을 각자 찾아가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각자의 건강에 맞는 잠을 무시하는 사회잖아요. 오죽하면 “4시간 자면 대학에 가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까지 생겼겠어요. 그 만큼 우리나라는 잠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나라. 잠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별도의 주제로 다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할게요.


프레임(Frame)은 사람이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에요. 우리가 어떤 것을 말할 때 그것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기인했으며, 어떻게 동작할 것이며 ,그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등 대상에게 다양한 생각을 갖게 돼요. 그것이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고, 명제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관계 없이 그 해석을 사실인 것으로 믿고 살아가요. 프레임은 개인의 인식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일 뿐이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게 취급해요.

언어학자가 만든 개념이긴 한데, 이용되는 분야는 다양해요. 정치 이야기 할 때도 정치인들이 프레임을 씌우기도 하고, 정책 연구 과정에서 대중들이 정책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영향을 주기 위해 이용되기도 해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 따라 달렸다는 말을 들어봤겠지만, 상담에서도 쓰는 개념이에요. 프레임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 수정을 목적으로 하는 분야에서 자주 쓰여요. 이 때문에 최면과 세뇌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개념이기도 해요.

레이코프가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가 있는데, 이 책의 제목대로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고 하는 순간, 듣는 사람의 머리 속에는 이미 ‘코끼리’ 프레임이 작동하기 때문에 저절로 떠올리게 되는 거죠. 사실 이 책은 언론과 정치 분야를 중심으로 프레임 이론을 분석하는 내용이에요(TMI로 레이코프는 미국 민주당 지지자로, 선거운동 자문을 한 적도 있음).

정치권에서 대중을 선동할 때 프레임을 씌우며, 정파를 막론하고 여러 논란을 불러왔어요. 국가정보원 및 국방부의 여론 조작 사건도 있었고, 근거가 없는 종북몰이, 색깔론, 친일몰이 등이 프레임 씌우기의 예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정치적 프레임은 상대 진영을 매도하고,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쓰이는데 이를 과하게 몰입하면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되어 정치를 올바른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거죠.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처럼 워터 게이트 사건과 관련하여 ‘사기꾼’ 발언으로 자기 자신에게 프레임을 걸어 버리는 경우도 있긴 해요(결국 닉슨은 대통령을 사퇴했음). 국민적 관심을 받는 재판에서는 여론 재판을 이끌기 위해 이 기법을 도입하기도 해요.


잘못된 고정관념이나 사회적 통념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해요. ⓒ 지식테이너 김승훈

사실 이런 생각들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많을 수 밖에 없어요. 공감이 안 되는 사람과 자주 마주쳐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직장에서는 먹고 살아야 되니까 참고 사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사적인 관계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잖아요. 이런 사람들이 만일 가족이라면... 애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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