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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입큰엄마 Jul 08. 2020

그 친구 이야기

그 친구를 처음 본 건 15년 전 노량진 한 학원 강의실이었습니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아 강사가 내뱉는 말과 침을 온전히 다 받아내는 진득한 학생이었습니다. 빗질한 흔적이 없는 곱슬머리는 떡져 있었고 무채색 계열의 헐렁한 반팔 티셔츠는 바람이 제법 선선해질 때까지 돌려 입는 걸 보니 당장 내일이라도 합격해서 나갈 것 같은 고수의 포스가 느껴졌습니다. 매번 앞자리 중앙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망부석처럼 칠판의 일부를 가리고 있으니 딱히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뒷모습이었습니다.


90년대 후반 IMF를 호되게 겪은 부모님은 공무원이 가장 안정적이라면서 뒷바라지를 약속하며 등을 떠미셨고 졸업 후 딱히 진로를 정하지 못했던 나는 그렇게 노량진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대학 시절에도 나쁜 성적이 아녔기에 나름 단기간에 합격을 목표로 밤샘 공부도 불사했더니 공시생 신분 반년도 채 되지 않을 때 쯔음부터 맥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학원과 고시원 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쳐갈 때쯤 커피 자판기에서 우연히 알게 된 언니에게 스터디그룹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동기부여도 되고 공시생도 사람인데 활력을 좀 찾고자 흔쾌히 모임 참여를 약속했습니다. 고시원 근처 지하에 있는 카페에서 첫 모임을 갖게 되었고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뒤통수와 목이 늙어난 무채색 티셔츠를 보고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어? 그 맨 앞줄..’
가까이서 얼굴은 처음 봤습니다. 구릿빛 얼굴에 숯처럼 까만 눈썹, 홑 까풀의 큰 눈, 장신은 아니었지만 다부진 팔뚝이 보였습니다. 6명이서 시작한 스터디 모임에서 그 친구는 놀라울 정도로 영어를 잘했습니다. 얼굴빛이 좀 진한 편이니 혹시 다문화 가정인가 했지만 공항 근처에도 한번 못 가지 못한 서울 토박이라고 했습니다. 영어문법이 약했던 나는 한국사가 약했던 그 친구와 서로 노트도 주고받고 틀린 문제도 알려주면서 힘든 시기를 견뎌 나갔습니다.
꿈이 같은 청춘들은 열정을 다해 몸이 부서 저라 목표를 향해 집중했고 중간에 최종 합격을 해서 나가는 멤버들을 보면서 다음엔 내 차례다라는 마음을 다지며 흐트러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모임에 그 친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당분간 모임이나 수업에도 참여를 못한다고 합니다. 서너 달이 지나갈 때쯤 우연히 그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잠깐 고시원 앞으로 나올 수 있어?’
전보다 마른 얼굴이었습니다. 시험 준비를 더 이상 못할 것 같아서 남은 짐을 가지러 왔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작은 칼국수집을 차렸다고 합니다. 언제 한번 놀러 오라며 덤덤히 웃고 있는 친구의 얇은 점퍼 속에는 여전히 무채색 반팔티가 보였습니다. 서둘러 돌아서는 뒷모습을 마냥 바라만 보다가 나는 용기를 냈습니다. 시험이 며칠 남지 않아 다들 미친 듯이 열공중이었지만 이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우린 고시원 근처 삼겹살 집에 가서 소주한 병을 시켰습니다. 지금은 편하게 공부를 할 상황이 안되고 집안 형편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말에 위로의 말조차 건너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소주가 한 병이 되고 두병이 될 때쯤 삼겹살은 까맣게 타고 있는데 연신 술만 들이켜던 그 친구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그리곤 동그란 양철 테이블 위에 무언가가 무심히 툭툭 떨어졌습니다.
“술이 들어가니까..... 왜 이럴까.. 너무 추잡해 보이지... 내가 원래 이런 놈은 아닌데.... 오늘까지만 좀 울고 내일부턴 열심히 해야지.”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손이 친구의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습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가 흠뻑 젓어 있는 걸 보니 오늘 하루도 녹록지 않아나 봅니다.


그 날 이후로 그 친구를 볼 수 없었습니다. 문득 밀물처럼 궁금증이 밀려왔다가도 내 삶을 살아내기도 버거움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그냥 흘려보내고 말았습니다. 2년여라는 시간 동안 간발의 차로 떨어지기도 하고 면접서도 미끄러지며 반복되는 실패 속에 불안한 미래까지 더해져 나는 부모님 몰래 노량진에서 짐을 챙겨 나와버렸습니다.
그리고 어학원을 다니며 취업준비를 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학용품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터라 그동안 사용한 제품의 특징과 개선점들을 면접에서 유창하게 떠들어 댓고 운이 좋게도 사무용품을 유통하는 외국계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노량진 공시생 시절의 추억은 아련한 기억 속 안개처럼 희미해져 갔고 매일 아침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지하철을 타고 월급쟁이 생활을 반복하며 나름의 삶을 즐기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회사 생활 3년 차. 본사가 해외에 있는 관계로 출장이 잦았던 나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피곤한 몸을 캐리어에 기대어 공항을 나오던 중 낯설지 않은 묘한 분위기의 뒷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익숙한 높이의 키, 다부진 어깨, 그리고 까무잡잡한 목. 예상은 맞았고 더 놀라 하는 건 그 친구였습니다.
집까지 데려다준다며 캐리어를 잡아끌어 어쩔 수 없이 차를 얻어타게 되었습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가면서 그 친구는 무수히 많은 얘기들을 꺼내놓았습니다. 어머니와 차린 식당은 밀가루 값이 폭등하고 손님들도 뜸해져 접었다고 합니다. 더 이상 물러 설곳이 없다는 생각에 일당을 많이 주는 막노동부터 시작했고 원청 건설사에서 해외현장 근무직에 추천을 해줘 지원을 했답니다. 일반 월급쟁이 몇 년치 연봉을 한 번에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작은 집이라도 하나 장만해 드려야겠다는 결심에 주저 없이 한국을 떠나게 되었고 주변에 불빛 하나 없는 컴컴한 오지에서 5년째 책을 읽고 마음을 다스리며 스님처럼 살고 있다며 덤덤하게 웃는 모습은 예전과 변함이 없었습니다.
캐리어를 집 앞에 까지 옮겨주고는 그 친구는 잘 지내라는 어색한 인사를 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회사에서 가맹점 오픈 총괄팀 새 직책을 맡은 나는 그 덕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반복되는 야근과 출장 속에 점점 떨어지는 체력을 챙기느라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가맹점 상권 분석이 어느 정도 끝나면서 시공, 인테리어를 전담으로 맡을 업체를 입찰을 통해 선정했고 그 최종 미팅이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똑같이 노트북을 옆구리에 끼고 피곤한 기색으로 회의실에 들어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의실 테이블 건너편에 그 친구가 앉아 있었습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세미 정장 차림에 파스텔 톤의 연한 핑크색 셔츠를 받쳐 입은 모습은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돌려가면 입었던 예전 공시생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해외현장을 마무리 짓고 한국에 왔다고 합니다. 외국 생활을 하면서 내내 사업 아이템을 생각했고 관련된 책과 정보를 수집하며 악착 같이 돈을 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건축 관련된 토지매입, 시공, 인테리어, 분양까지 모두 한 번에 해주는 사업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받아 든 명함을 보니 ‘원스톱 컨설팅’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친구는 우연히 제가 다니는 회사의 입찰공고를 봤고 몇 날 며칠 밤을 새워 기획서와 견적서를 작성하던 중 외국계 회사이니 영어 버전까지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윗선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 최종 업체로 선정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 성공적으로 일을 해냈습니다. 가맹점 점주들의 반응은 꽤 좋았고 전국 대부분의 공사를 친구의 업체에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15년 전 쓴 소주 한잔을 넘기며 흘리던 친구의 뜨거운 눈물을 말입니다.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습니다. 공무원 수험생활도 포기하고 어머니와 차린 식당도 제대로 하지 못한 불쌍한 인생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본 그 친구는 인생의 맨 앞자리에서 험난한 풍파와 시련들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다시 당당히 세상 앞에 나간 철인 같은 사람입니다. 실패와 포기로 인한 굳은살은 단단해지고 해내겠다는 다짐들은 더 견고해졌습니다. 결국 실패는 도전이란 과정을 겪고 난 사람만이 맛보는 쓴 소주 한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패의 두려움을 견디는 일은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고독한 일 일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넘어져도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내면의 힘과 내미는 손이 있다면 매번 두렵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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