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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Sep 30. 2022

벤투 감독이 이강인을 외면한 이유

축구대표팀 감독이 여론을 수렴하는 자리가 아닌 건 분명하다. 대다수가 이강인이란 특정 선수를 한국 축구의 잠재력으로 꼽더라도 감독에겐 선수 선발 권한이라는 고유의 선택권이 있다. 이런 선택권은 이미 수많은 대한민국 국적의 선수 중 어떤 선수를 대표팀에 소집할 것인지에서부터 발동한다. 이강인이란 선수를 모두가 경기에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더라도 사실은 이러한 대표팀 선수 선발 과정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그 누구도 무당도 모르는 미래 결과를 두고 현시점에서 확신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감독은 자신의 경험과 이론을 바탕으로 최상의 결과에 가까울 것이라고 추론하는 선수 구성을 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강인이라는 신예 스타플레이어를 뽑는 것과 아직 이름 모를 또 다른 선수를 대표팀에 선발하는 것엔 큰 차이가 없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설령 손흥민과 김민재 같은 선수를 대표팀에 부르지 않더라도 이것은 감독이 자신이 구상하는 최선의 밑그림에 채색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어떤 선수를 어떻게 선발하고 이를 훈련이나 실전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도 사실은 전부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과거 다른 대표팀 감독이 K리그에서 활약하는 특정 선수를 외면해서 논란을 낳고 다른 나라 역시 잊을 만하면 이런 논란에 시달렸던 것을 보면 어느 나라 불문하고 축구대표팀과 이를 둘러싼 감독의 권한 논란은 필연적이다. 아쉽지만 그저 하나의 과정이자 스토리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톱클래스들만의 세계를 모르는 외부인들의 한계이며 그들의 그런 능력을 인정하기 때문에 대표팀 선수를 국민 투표가 아닌 아직은 프로페셔널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를 전제조건으로 놓고 보면 이강인 출전 제외를 두고 다시 생각해볼 부분은 벤투 감독이 월드컵에서 한국의 전력을 객관적인 약체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월드컵 같은 단기전에서 상대적 약체가 무기로 쓸 수 있는 왕성한 활동력과 쉼 없는 상대 압박을 펼쳐 한마디로 ‘난전’을 펼치겠다는 구상이 힌트로 엿보인다. 상대적으로 활동량보다는 정교함과 기술을 앞세운 이강인이 여기에 가능하냐는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2002 월드컵 반복하면 고루하지만 사실 그때도 한국은 상대보다 더 뛰고 쉴 새 없이 압박해서 상대가 우리보다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기술’보다는 ‘폭풍 난전’에 휩쓸리는 걸 택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대표팀 쪽으로 경기가 흘러가는 걸 기본 원칙으로 삼아 전혀 다른 국면에서 서로의 준비된 수 싸움을 펼쳤다. 훗날 체력 못지않게 기술적 발전을 이뤄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박지성 등을 그때 우리는 이강인과 같은 유형의 선수로 분류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벤투 감독의 질문이 바로 이 지점에서 맴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자신이 크게 그려둔 쉽게 말해 ‘체력전’과 ‘난전’을 축으로 한 축구에서 한 명의 자원을 빼고 여기에 부합하지 않지만 스페인 무대에서도 가능성을 입증한 전혀 다른 유형의 이강인을 투입해도 되느냐는 물음이다. 그것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했을 때 ‘가능하다’라고 판단하면 벤투 감독은 이강인을 투입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팀 전체의 색을 고려해 좀 더 활동력을 자랑하는 선수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질문과 답으로 해석된다.


아무리 큰 그림에 따른 촘촘한 선수 구성이 중요하더라도 필드플레이어 열 명 중 한 명 정도는 ‘변칙’ 기용이 가능할 수 있지 않냐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 축구 괴물이 모이는 월드컵이란 무대는 자원 한 명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10분의 1이라고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겠지만 가장 통계가 맞지 않는 원시적인 스포츠이며 어떨때엔 10분의 1이 경기 전체를 좌우하는 10분의 10도 된다. 발로 하는 스포츠지만 이미 그들의 발에서 내뿜는 정확성은 손으로 공을 주고받는 수준이 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할 때도 많다.


요즘도 유튜브에 많이 돌아다니는데 과거 홍명보 감독이 런던 올림픽 앞두고 오만과 평가전에서 후반 시작과 동시에 상대 최후방 수비수 쪽으로 롱볼을 띄우고 그러한 경합에서 우위를 차지해 곧바로 슈팅 찬스를 만들라는 지시한 영상이 유명하다. 실제로 그 영상에서 선수들은 이를 그대로 실현해 골망을 흔들었다. 상대 후방 수비수 중 한 명이 우리 공격수보다 제공권에서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을 공략한 것이다. 이 정도로 어느 선수 한 명이 팀 전체 색과 맞지 않는데 심지어 이것이 상대의 장점과 배치돼 약점이 된다면 이를 역이용해서 활용하는 건 톱클래스 선수들에겐 손만큼 정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벤투 감독을 이해하려면 결국 한 조각의 퍼즐에 변화를 줄 것이냐 말 것이냐에서 변화를 주지 않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어제 막 선임한 감독도 아니고 2018년 8월에 선임한 감독이다. 감독이 변하는 것보다 인사권자와 주변이 변하는 것이 빠르다.


다만 코로나19로 지쳤던 축구 팬들이 이제 겨우 마스크를 벗고 목말랐던 육성 응원을 할 수 있었다는 점과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감독이 우리 축구의 현재이자 미래가 당연시되는 선수를 외면했다는 점에서 더 분노가 폭발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이제 막 스페인 무대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이강인이 나온다고 해서 경기장을 찾고 TV를 켰는데 그 수많은 이의 기대와 희망이 단호한 표정의 외국인 감독 한 명의 결정으로 물거품 됐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국 축구대표팀은 진정 한국을 대표하는 팀인지 아니면 한국 축구협회를 대표하는 팀인지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전에도 많이 썼지만 A매치라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이를 통한 부수적인 수입으로 돌아가는 축구협회 대표팀이라고 보는 게 옳은데 사실 대표팀을 향한 감정이 그렇게 딱 떨어지는 건 아니므로 이론에 불과하다.


이강인 출전 제외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고 뭘 할 시간도 없다. 감독이 여전히 승부의 세계에서 ‘승리’라는 최고의 결과물을 위해 노력하는 직업 소명이 확실하다는 점을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덧붙여 그래도 이강인이 대표팀 내에서 같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벤투 감독이 더 정확한 어떤 판단을 했을 것이란 걸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것도 저것도 인정이 되지 않으면 11월 말에서 12월 초 추운 겨울 긴긴밤 중에 열리는 월드컵 정도는 하이라이트로 봐도 충분하다. 시원한 맥주 한 잔 딱 들어맞는 여름도 아니고 요즘 경쟁적으로 내놓는 포털과 방송사의 하이라이트 편집 수준도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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