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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Apr 08. 2020

도쿄올림픽 연기에서 드러난 IOC의 인식

도쿄올림픽 연기 과정에서 흥미로운 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태도다. 선수들의 땀과 노력을 언급하며 올림픽이 가지는 사회 가치를 한 번이라도 언급할 줄 알았다. 그러면서 이런 중대한 문제는 글로벌 시민이기도 한 선수들의 입장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들을 줄 알았다.


이를테면 그럴싸한 말을 자주 하는 이들이 강조하는 올림픽의 전 세계 평화 기여나 화합 같은 단어 말이다. IOC의 속셈이 따로 있는 건 알았지만 어쨌든 이를 전면에 세워 충분히 중계방송만을 위한 개최도 고려할 법했다. 모든 경기를 중계로 돌리고 코로나 19로 힘겨워하는 전 세계 시민들을 위해 메시지를 보내거나 하는 방식도 가능했다.


하지만 아직 IOC 관계자들이 그런 발언을 했다는 뉴스는 듣지 못했다. 혹시 관련 주장을 했는데 내가 모르는 것이라면 그만큼 울림이 없어 나 같은 일반적인 시선으로까지 확대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도쿄올림픽 연기 과정의 최대 고려사항은 경제였다. 그다음이 일본과의 관계였다. 올림픽과 개최국의 경제문제는 많이 알려진 사실이어서 특별할 게 없다. 올림픽 개최 배용으로 얼마가 들어가고 그 이상 얼마의 경제 효과를 창출해 개최국 정부가 정치적 이득을 챙길 것인가 셈하는 것은 다수가 안다.


IOC 역시 한몫 크게 챙기려는 개최국 정부의 정치력을 이용해 뒤에서 수익을 챙기고 세를 키웠다. 액수만 다를 뿐이지 매 올림픽을 지탱하는 명분이 되어 전혀 새로움 없는 공학으로 자리 잡았다. 도쿄올림픽도 여기에 대입할 수 있다. 일본이 초강대국 재탈환을 노리는 국가라는 점과 지금 상태만으로도 국제 사회에서 입김이 센 국가라는 점에서 이것은 동어반복이다.


재밌는 건 앞서 말한 IOC 관계자들의 스포츠 사회 가치 침묵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그런 설명을 구태여 해봐야 튀어나올 반박에 재반박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봤을 것이란 추론이다. 다른 하나는 그들이 촌각을 다투며 올림픽을 연기해야 하느냐 취소해야 하느냐 지경까지 이르렀을 때는 스포츠 가치를 입에 올릴 정신이 없을 정도로 평소 중시하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맞거나 혹은 둘 다 틀렸더라도 스포츠계에서 중시하는 선수들의 땀과 노력을 통한 환희와 감동 등 사회 가치는 뒤로 밀렸다. 당장의 연기와 취소를 저울질할 때 그런 담론은 맨 앞에 서지 못했을뿐더러 당사자인 IOC 입에서부터 크게 부각되지도 않았다.


이 현상의 판단은 뚜렷하다. 더는 올림픽이 지구촌 축제이거나 국제 평화에 기여하거나 하는 등의 사회 가치를 수식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걸 IOC도 아는 셈이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세계 평화를 내건 올림픽을 개최하기보다는 차라리 넷플릭스에 그러한 가치를 강조하는 다큐멘터리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 나는 더 낫다고 본다. 아니면 유튜브도 있고 정치 권력자의 트위터도 있으며 전 세계적인 언론플레이도 있다.


이제는 방바닥에 누워 스마트폰만 만져도 소통할 수 있으니 올림픽이 갖는 사회 가치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초연결 사회에서 빙빙 돌아가는 가장 비효율적인 소통 도구 반열에 올림픽도 포함된 셈이다. 이것은 자칭 스포츠 전문가나 체육학계가 들으면 펄쩍 뛸 수도 있겠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코로나 19 국면에서 등굣길이 막히고 학원 갈 일 없는 청소년들이 왜 운동장에서 뛰어놀지 않고 전부 PC방으로 달려갔겠는가. 올림픽에 사회가치가 있다면 올림픽이 존재하는 세상에선 현실의 스포츠도 사회가치를 흡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게 눈으로 드러났다. 스포츠 내 주도권은 이미 세계화를 표방한 미국 스포츠와 유럽 축구로 넘어갔다. 차라리 그쪽에서 스포츠의 사회가치를 찾는 편이 훨씬 담론을 만들기엔 효율적이다.


보는 스포츠와 하는 스포츠는 그만큼 멀찍이 떨어져 전혀 다른 카테고리가 되었다. 심지어 보는 스포츠의 대표 격으로 불리는 올림픽도 주 시청 연령대가 50대 이상이라는 조사들이 속속 나오는 실정이다. 글로벌 시대를 이끌 세대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올림픽이 강조한 사회 기능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으며 오히려 퇴색될 것이란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니 IOC가 구태여 먹히지도 않을 올림픽 정신이나 올림픽 가치를 운운하지 않은 것이라고 나는 본다.


앞으로도 가시밭길이다. IOC로 대표되는 전통의 영역엔 경제문제만 남았다. IOC 수입 중 중계권료가 70%에 이르는데 여기가 핵심이다. 당장 어느 방송사에서 먼저 손을 드느냐의 문제로 남았다. 굵직한 곳 한 군데에서 먼저 나서며 더는 예전과 같이 큰돈을 지불하는 식으로는 중계하지 않겠다고 하면 너도나도 빠지겠다는 도미노가 벌어질 수 있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의 IOC 스폰서 이탈 현상도 감지됐다. 2017년에 맥도널드가 빠진 최상위 파트너 자리가 여전히 공석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 최상위 파트너들도 스폰서 금액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 이 또한 IOC 수입에 치명타가 될 게 뻔하다. IOC 수입 중 올림픽 파트너 마케팅 권리 수입은 20% 가까이 이른다.


상황이 이러니 발등에 불 떨어진 IOC가 올림픽 평화나 사회 가치를 운운할 수 없으며 애초 그런 건 허울이었다는 걸 자인한 것이다. 경제고 또 경제다. 다른 가치들을 대체할 콘텐츠는 흘러넘친다. 전쟁 중에도 열렸던 올림픽이란 찬사는 구시대 유물이란 걸 인정해야 한다. 지나치게 이를 높게 평가했던 이들의 인식도 이제는 바뀔 때가 됐다. 올림픽은 어느 순간 별것 없이 결국은 국제 장사로 돌아간 지 오래였는데 여기에 온갖 수사를 붙여 추앙했던 허상도 벗겨낼 때가 됐다.


예를 들어 우리 도시에 올림픽을 비롯한 메가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하니 곧 그 유산으로 잘 먹고 잘 살 것으로 추측하거나 그러면서 자원봉사를 선뜻 나서거나 하는 행동들 말이다. 아직도 인천 아시안게임이나 평창 동계올림픽에 자원봉사 나섰던 분들의 심정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도쿄올림픽이야 일본 정부가 워낙 국가 전체를 통제하고 일사불란 군대식 일렬 세우기를 표방하는 정치 후진국이어서 내년에 업적을 홍보할 것이다. 거의 모든 그런 발표는 거짓이라고 보면 된다.


당장 일본 스포츠인들은 IOC의 올림픽 연기 여부 결정 과정에서 정치인을 제외하면 어떠한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며 자신들의 순응하는 국가 문화가 부끄럽다고 토로했다. 참여하는 선수 입장이 배제된 올림픽 연기 과정과 당사자인 IOC의 선명한 이익 추구에서 사회 가치를 찾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는 해당 분야 관계자들이 팔기 위해 내건 담론 장사이거나 전문가들의 손쉬운 밥벌이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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