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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트그래퍼 Oct 11. 2022

공기엔 세금이 안 붙어 참 다행이야

“오늘의 날씨입니다.

 벌써 닷새째 하루 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단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될 수 있으면 실내에 계시고, 창문도 꼭 닫아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마스크 착용 잘하시고, 노약자는 실외활동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날씨와 미세먼지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겨울엔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려 삼한사온(三寒四溫)이란 말보다 ‘삼한사미(三寒四微)’란 말이 더 친숙해졌을 정도로 겨울철 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뜻의 이 단어는 이제 더 이상 신조어가 아니다. 겨울철 불청객인 미세먼지를 피해 청정자연을 찾아 떠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맑은 공기와 피톤치드에 둘러싸여 몸과 마음이 다 씻겨 내려가는 기분을 느끼기에 최고의 장소는 역시 대자연의 품 아니던가. 


한창 TV에서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이 인기리에 방영하고 있는 중이었다.

‘신이 세상을 만들기 전 연습 삼아 만들어 본 곳’이라는 지구 태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슬란드는 여전히 활화산과 빙하가 있는 곳이다. 

아직도 뜨거운 지열이나 거대한 폭포를 이용한 수력발전으로 친환경적인 전기를 생산하고 있어 온실가스 배출도 거의 없는 살아 숨 쉬는 지구 최고의 자연환경이다. 

TV 속 아이슬란드에 홀딱 반해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행 비행기 티켓을 지르고 말았다. 


미세먼지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 그곳을 향해 지구 가장 북쪽에 있는 수도까지 멀리 날아가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다. 

“와! 공기부터 다르구나!”

공항 밖으로 나오니 코끝이 찡해지는 것이 차갑고도 신선한 공기가 폐 속 가득 흘러 들어와 아이슬란드에 왔음을 실감케 했다. 공기의 맛은 무색무취이지만, 아이슬란드 공기의 맛은 분명 달고 상쾌했다. 전 세계 공기 맑음 지수가 최상위인 만큼 그 명성 값을 톡톡히 한 달까. 


도시 자체는 매우 한적하고 고즈넉했다. 낯선 알파벳들의 아이슬란드어 간판들 사이로 한적한 거리를 천천히 걷다 보니, 레이캬비크는 수도 치고는 도보로 웬만한 랜드마크를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길치라도 길 잃은 미아가 되지 않고 어디든 느긋하게 다닐 수 있을 만큼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특히. 하늘을 가로막는 높은 건물 하나 없이 알록달록 오밀조밀 낮은 북유럽 건물들이 아늑함을 준다.


다양한 상점과 기념품샵들이 골목마다 들어서 있어 추위를 피할 겸 한 기념품 가게로 들어갔다. 차가워진 몸을 녹이려 별생각 없이 기념품들 사이를 누비며 냉장고 자석들을 만지작 거리다가 색다른 희귀 기념품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아이슬란드인이 공기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생각은 되나, “Fresh Icelandic Mountain Air”라고 적힌 공기 캔 더미들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신선한 공기를 통조림 통에 판다고?”


기념품 샵에서 아이슬란드 산속 공기 캔이라며 990 KR(크로나)에 판매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우리나라 돈으로 한 캔에 약 만 원 정도 하는 가격으로 말이다.

그저 공상과학소설이나 SF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지구 상에서 누구든 원하는 만큼 공짜로 누리고 있는 것이 공기이거늘. 

아무리 기념품이라지만 캔 속의 그 무언가가 과연 진짜 메이드 인 아이슬란드 산속 공기일지, 뚜껑 따는 순간 다른 공기와 섞일 텐데 어떻게 마실 수 있다는 것인지, 의심 많은 이과 출신 아니랄까 봐 선뜻 ‘내돈 내산’ 할 필요까진 못 느끼고 기념품 샵을 떠났다. 무색무취의 공기가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을 파란 색 공기가 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


호구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던 선택이었지만, 뒤늦은 후회가 찾아온다. 귀국길에 오르니, 다시 미세먼지 가득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에 아이슬란드 산속 공기 캔 하나라도 밑져야 본전인 심정으로 사 올 걸. 나중에 기념품을 보며 그 시간 속으로 다시 여행하는 기분을 느껴볼 기회까지 놓쳐버린 셈이다.


어린 시절 물을 사 먹는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생수를 사서 마시거나 정수기 물을 마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린 지금, 어쩌면 물처럼 미래 언젠가 공기도 사서 마셔야 하는 날이 오는 것이 아닌지. 하루에 마시는 공기의 양은 하루 마시는 물의 약 1만 배 정도인 걸 보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미세먼지 가득한 일상으로부터 떠나온 여행이기에 아이슬란드 공기 캔 판매는 선명하고도 놀라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여행 이후, 기념품을 넘어 실제 다양한 나라의 공기 캔이나 산소 스프레이 상품 소식을 차츰 접하게 될 때면 더 이상 놀라움이 아닌 씁쓸함으로 다가온다.  이제 이색적인 상품이 아닌 생필품으로서 자리 잡는 것일지도.

의식하지 않은 채 들이쉬고 내쉬는 공기를 너무 당연한 것으로 쉽게 여기고 그 소중함을 잊고 살고 있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서 마스크를 쓰거나 공기 캔 을 사서 마시는 것은 그저 단기적인 대안 일뿐이다.


최근 기후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이 탄소배출량을 줄이려 탄소 국경세를 도입하려고 한다. 

EU 회원국의 제품보다 탄소를 많이 배출한 제품이 수입되면 그만큼 환경비용을 부과한다는 것인데, 이러다간 나중엔 공유재인 깨끗한 공기에 세금까지 붙이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진다. 

즐겨듣는 인디밴드인 페퍼톤스의 “New Hippie Generation” 노래가 떠오른다. 공유재를 공유재 답게 만끽하며 오랫동안 노래 부르고 싶다.


“답답한 것들은 던져버려! 여긴 정말 한적하다 

 햇살엔 세금이 안 붙어 참 다행이야

 오늘 같은 날 내 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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