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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트그래퍼 Jan 30. 2021

학생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대학교 입학처에서는 드라마틱한 일들을 종종 마주한다. 그중 수시모집 등록 시기인 연말이나 정시모집 등록인 연초 때 추가합격 발표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에피소드를 만나곤 한다. 대학을 합격한 기쁨 중 가장 큰 기쁨은 아무래도 추가합격의 마지막 문을 닫고 입학하는 것일 테다. 최초 합격도 기쁘지만, 마지막 추가합격을 기다리던 수험생의 간절한 마음을 어디에 비할 수가 있을까.


1월 어느 날 오후 8시 추가합격 발표 마감 1시간 전, 전화로 합격자를 직접 통보한다.


(입학처)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B대학교 입학처입니다.

○○학과에 지원하신 ○○○학생 맞으세요? “


(지원자)“와! 와! 와! 맞아요.”(기쁨의 흐느낌으로 울면서 소리를 지른다)


(입학처)“축하드립니다. 추가 합격하셨습니다. 잠깐 울음을 멈춰주시고요.

우리 대학에 등록하시겠습니까? 등록 안 하시면 다음 학생을 선발해야 합니다.”


(지원자) “네. 네. 네. 등록할 거예요.(계속 흐느끼며)”


(입학처) “혹시, 다른 대학에 등록한 곳 있어요?”


(지원자) “네. A대학교요”


이 사연의 학생은 결국 B대학에 최종 등록을 했다.

소위 A대학은 B대학보다 수능성적이나 내신성적이 더 우수해야 합격할 수 있다는 즉, 입시 성적 결과와 대학 평판도가 상대적으로 더 좋은 경우이다. 대부분 경우, 만고불변의 진리마냥 A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일류 대학을 합격하고도 이류 대학을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그 학생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대학 간판보다는 꿈꾸는 진로에 맞는 학과를 선택한 경우였다.


대학이 서열화돼 있고 어떻게라도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원하는 전공을 포기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런 선택을 할 경우, 적성보다는 간판 위주의 대학 진학을 했다가 잘 맞지 않아 중도 탈락하면서 다시 원하는 학과 입학을 위해 재수, 삼수를 선택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졸업자의 상당수가 전공과 상관없이 직업을 선택하고 있는 뉴스 기사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학 평판도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대학이 갖고 있는 콘텐츠와 그 교육을 통한 배움과 성장이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장단점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특징을 살펴보는데, 인생의 큰 관문이기도 한 대학을 선택하는데 학생 주체로서 의지도 중요하지만, 그 선택의 근거가 될 다양한 이유들을 대학 역시 실질적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최근 수년간 한국 입시에서 학생의 개성과 선택을 강조하고 있는데, 정작 대학은 각각의 고유의 장점들을 갖추려는 노력을 과연 실질적으로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대학교육의 질로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대학 서열로 선택하는 평판도 경향에 의존해 안일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대학 구성원이라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예전 미국 동부 버몬트주에 위치한 학부 중심의 4년제 교양대학(Liberal Art College)인 미들베리 컬리지(Middlebury College)에 벤치마킹 연수 차 방문한 적이 있다. 국제학과 환경학, 리더십에 대한 어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학교였고, 특히 국제학을 전공하기에 좋은 학교로 손꼽히기도 한 대학이었다. 캠퍼스 경관이 휴양지를 연상하게 할 만큼 아름다워 휴양지의 대명사격인 클럽메드(Club Med)에 비유하여 '클럽 미드(Club Midd)'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아름다운 캠퍼스와 특성화된 학과들을 내세우며 지원자들에게 어필하는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대학이었다.

미국에서 아이비리그 대학에 합격했지만, 미들베리 컬리지 같은 리버럴 아츠 컬리지(Liberal Art College)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런 선택은 대학 서열  위주의 선택이 중심인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여겨진다.  실제 미국 대통령의 약 40%가 아이비리그 대학이 아닌 리버럴 아츠 컬리지(Liberal Art College)에서 배출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미들베리 컬리지 대학 입학처장의 세미나 후 캠퍼스를 둘러보며 주변 학생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학교가 아닌 클럽메드 휴양지에서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평판도 위주의 대학보다 교육의 질이 높은 리버럴 아츠 컬리지(Liberal Art College)를 선택해서일까. 리버럴 아츠 컬리지는 종합대학교에 비해 비교적 작은 대학이라 소규모 클래스와 세미나 위주의 클래스가 운영되고 학생과 교수 간의 상호작용이 긴밀한 편이라 교육의 질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미국의 대학들은 지원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이유들을 제공하고 있고 그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었다.

미들베리 컬리지의 입학사정관에게서 들은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학내에서 필요로 하는 학생의 수요를 대학 구성원들로부터 수시로 체크하여 입학사정위원회(Admission Committee)의 선발과정에 반영시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 내 스포츠팀이나 오케스트라에서 공석이 생긴다면 그 자리에 어울릴 만한 역량을 갖춘 학생이 있는지 선발과정에서 고려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입시 공정성 측면에서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싶긴 했지만, 문화적 차이를 넘어 대학 내부 구성원들과 적극 소통하며 형식적은 대학 인재상이 아닌 실제 구성원으로서 학생을 바라보며 함께 성장해가고 발전해가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대학구성원의 노력에 덧붙여 진로진학 교육에 몸담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의 인식변화가 함께 수반된다면 더 좋은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고등학생들을 진학상담을 하거나 고등학교 교사와 간담회를 할 때 종종 물어오는 질문이 있다.


“어떤 면이 A대학보다 B대학이 좋은가요?”


대학 서열을 기본 전제로 그것을 뛰어넘는(어차피 증명하기도 쉽지 않을) 어떤 강점이 있는 것처럼 변명을 늘어놔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마주하게 된다. 대학 서열의 인식이 강하다면 어떤 대답을 한다 해도 순위를 머릿속에서 지우기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우문현답(愚問賢答)으로 


“학생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가장 원하는 대학교육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되려 역질문을 해본다. 서열의 논리에서 벗어나 필요로 하는 교육에 부합하는 대학인지 판단해볼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인식의 변화를 바꾸는 출발점은 좋은 질문에서 시작하는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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