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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Feb 03. 2023

영어, 간절히 마주보고 싶은 그대여...

영어공부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동기를 갖게 된 이야기.

 모든 공부가 그렇겠지만, 특히 외국어를 공부할 때는 '동기' 와 '목적'이 정말 중요하다. 중국어는 시작할때부터 내가 전공으로 삼을만큼 동기와 목적이 충만했기에, 관련된 모든 것이 흥미롭고 재밌었다. 그러나 영어는 달랐다. 가장 오래 배웠으나 가장 자신없는 언어. 딱히 재미도 없는 언어.그렇지만 잘하면 좋은 언어.


내 영어인생 약 20여년 간의 시간을 돌아보면 한때 고3 아이들의 영어 개인지도를 했을만큼 문법과 독해에 자신이 있었던 적도 (짧게)있었으나, 듣기와 말하기는 영유에 다니는 유치원생보다 못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 상태. 언어의 기본이 사실 듣기, 말하기인데 이 두개가 가장 자신이 없다는 게 개인적으로 늘 아쉬운 마음이었다. 그랬기에 이왕 영국에 오게 되었으니 대학시절 결국 가지 못했던 영어권 연수를 온 셈 치고, 영어울렁증을 조금이나마 없애고 싶었고 다행히 가까운 곳에 적당한 가격의 좋은 영어학원을 찾아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여기서 영어를 말할 기회는 드물었다. 특히 내가 사는 도시 특성상 한국인들이 많아 가끔은 여기가 한국이 아닐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을 할 때도 많았다. 넷플릭스로 볼 수 있는 미드는 중드만큼흥미가 생기지 않아 정말 드라마 한편을 보는 게 대단한 숙제처럼 여겨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에 와서 영어를 가장 많이 듣고 말했던 시간은 손목이 부러지고 난 이후 병원을 다니면서 부터였다. 평일 낮 진료라 혼자 갈 때가 많았고, 수술센터나 응급실 안은 어린이 동반이 허락되지 않아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밖에 있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듣고 말하고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첫날 응급실에서만 좀 긴장했고, 다행히 처음 여기 왔을때에 비하면 듣는 귀에 어느정도 눈치가 생긴데다, 말하는 거야 내가 아는 온갖 단어와 구문을 끌어다 말하면 듣는 원어민이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었고, 친절한 병원 스텝이 어려운 의학용어는 번역해서 보여주기도 하는 등의 전방위 도움을 함께 받기도 해서 생각보다 병원 진료가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올때에 비하면 적어도 영어 앞에서 도망가고 싶은 심정은 아니었으니 나도 몰래 많이 성장했네? 싶은 유치한 마음이 살짝 들기도 했다 (ㅋㅋ)

그러나 역시, 냉정하게 돌아보자니 언어를 자유롭게 말하고 듣지 못한다는 것은 꽤 많은 불편함과 아쉬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국이었다면 좀 더 자세히 물어볼 수 있었을거고 그랬다면 좀 더 덜 긴장하고 무서워해도 됐을 부분들이 지나고 보니 많았었다. 대략적인 상태와 과정은 알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의 것을 몰랐기에 혼자서 답답해 했던 시간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손목이 부러지고 난 후에서야 비로소 나는 처음으로 영어공부에 대한 '강렬한' 동기를 가지게 됬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때에 할 수 있는 것". 언어를 배우는 동기란 사실 이토록 단순한 것이건만 그동안 나는 왜 거창하고 대단한 동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바꿔 말하면 불편한 환경에 나를 두지 않았었기에 단순한 동기부여조차 받지 못한 것은 아닐까.


영어 선생님은 영어실력을 향상을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늘 추천해 주시는데 교통비가 비싼 런던의 특성 상, 병원 진료를 위해 시내에 나온 날은 내 공부의 목적을 실행해 볼 아주 좋은 기회의 날이기도 하다.

깁스를 풀고 Hand Clinic 에서 간단한 물리치료 진료를 받으면서 치료사와 어떻게든지 한마디라도 더 해보려고 머리를 굴리고 말할 기회를 엿본다. 치료가 끝나고 근처 서점에 들러서 내가 원하는 책이 있는지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기도 한다. 그냥 책을 찾아 꺼내주는 직원들도 있지만 경험상 대부분의 직원들은 꼭 여러마디를 덧붙인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로는 꼭 그렇게 한다. 카페에 가서 메뉴판에 없는 메뉴가 있는지 묻기도 하고, 옷 가게에 들어가 직원과 옷을 두고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한다.

예전과는 다르게 '동기'가 생기고 나서는 확실히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을 피하지 않게 되었다. 영어 수업때 옆 짝지와 나누는 대화 시간이 이전만큼 괴롭지는 않다. 여기 온지 1년 반만에 강렬한 동기가 생겼으니.. 돌아갈 때쯤엔 내 인생에서 영어를 똑바로 마주할 만큼의 실력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부디 이 동기가 금방 사그러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시기, 이 마음들을 여기에 기록해둔다.

점심으로 먹은 그날의 빵. 카페에서 직접 구워내서인지 특별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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