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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Feb 17. 2023

이토록 추운 겨울이 가고

이토록 기다린 적 없던 3월.

 10월 마지막주에 서머타임이 해제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해가 눈에 띄게 짧아지기 시작했다. 이것도 작년에 한번 겪고나니 그리 당황스럽지 않은 일이었고, 오히려 겨울이 막 시작되는 초반엔 작년보다 훨씬 따뜻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역시 작년은 우리가 영국서 맞이하는 첫 겨울이라 그렇게 추웠던 걸 꺼라며 남편과 나는 서로를 위로했다. 실제로도 11월 중순까지의 기온은 작년보다도 더 높았었다. 

그러나 두번째 겨울이라는 안정감을 즐길 새도 없이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했다. 보통 영국의 겨울은 아무리 추워도 영하로 잘 떨어지지 않는데 그랬다 해도 이후 며칠은 기온을 회복하는 등의 여유가 있었건만 한번 영하로 떨어진 기온은 그 주를 넘겨서도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12월 초엔 눈이 펑펑 내리는 진풍경까지 펼쳐졌다.

눈 덮힌 가든
도로를 뒤덮은 눈들, 하루만에 얼어버려 며칠동안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딛고 다녔었다

여기 오래사신 분들도 이런 추위는 처음이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올 겨울은 정말 혹독했다. 혹독한 것은 날씨뿐만이 아니었다. 겨울이 와도 끝나지 않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최악의 영국 경제 때문에 작년에 비해 최소 2배 이상 오른 energy bill을 받게 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들려왔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지만 에너지 가격이 걱정되어 실내온도를 15도로 맞추고 가족들이 다 모이는 저녁 시간에 한시간, 새벽에 두시간, 이렇게 총 세시간만 난방을 했다. 늘 15도 아래로 유지되던 집안에서 말할때마다 입김이 새어 나왔다. 정말 너무너무 추운 날 며칠 정도만 15도로 온도를 맞춘 채 밤새 난방을 했는데 그 달의 난방비가 한국 돈으로 50만원 정도가 나왔다. 더 많은 돈을 낸 집들도 허다한터라 선방했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돈을 내면서도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밖이 따뜻할만큼 아끼고 춥게 지냈는데도 50만원이라니...그마저도 영국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 혜택을 받은 금액이었으니 실제로는 50만원을 훌쩍 넘었다는 소리다. 혹한기 캠핑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는데도 말이다.

올해 한국도 난방비가 많이 올라서 힘든 분들이 많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어린 아이가 있다는 핑계로 한 겨울에도 수면잠옷이라는 걸 입어본 적 없이 따뜻하게 지냈었는데 타국에서 바깥보다 더 추운 집안에서 내복에 수면잠옷에 후리스까지 겹겹히 겹쳐있고 겨울을 보내고 있다니.... 영국서 잘 훈련되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면 난방비만큼은 절약할 자신이 있다는 실없는 농담마저 막 나왔다. 


기온 자체야 영하 10도를 훨씬 내려가는 한국의 겨울과 비할 수 없지만 한국에선 집이 따뜻했기에 그래도 밖에서 얼었던 몸을 녹일수 있었는데 여기선 안팎이 모두 겨울이었고 올해는 특히 내가 팔까지 다친 탓에 겨울이 너무 길게만 느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것은 다 지나간다고 어느덧 날짜가 2월 중순을 지나가며 확실히 기세를 떨치던 겨울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고 느꼈던 한주였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좀 풀리는 것 같다. 이제 좀 있으면 3월이니 겨울이 거의 다 지나갔다고 생각해도 되는걸까...? 


 습하고 해가 잘 나지 않는 영국에서 앞으로도 당장 두꺼운 외투를 벗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제 곧 오게될 3월을 기다리며 영국의 봄을 기대해본다. 봄이 오면 또 에어컨 없이도 지낼 수 있는 날 좋고 볕 좋은 여름이 오겠지. 점점 길어지는 해를 보며 9시까지 골프를 치곤 했던 좋은 날들을 다시 추억해본다. 


 이토록 추웠던 2022년의 겨울이 드디어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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