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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y Jul 13. 2020

[프롤로그] 아직은 비행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캐빈은 무대, 손님은 관객이다.


   ‘2 years with the company.’ 아직은 비행 전 브리핑룸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내 입에서 나오는 ‘2년’이라는 말이 낯설다. 1년+n개월 일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다. 2년을 일했지만 아직도 늘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이고, 또 한편으로는 이제는 뭔가 실수를 하면 2년이라는 시간에 부끄러워질 것 같아 더 무게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빨리 프리미엄 캐빈 크루가 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아직 이코노미에서도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어떤 크루는 이코노미에서 자기는 더 배울 것도 없고 지겹다며 그저 빨리 이코노미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글쎄 나는 아직은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사실, 하는 일 자체를 배우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대단히 어려운 일도 없을뿐더러 반복되는 일을 하기에. 하지만 경험치가 쌓이면서 달라지는 것은 손님을 대하는 태도, 어려운 상황이 생겼을 때 풀어나가는 재치, 그리고 얼마나 디테일에도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느냐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그런 면에서 완숙되지 않은 채로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을 대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초반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아마 표정관리였을 거다. 중동 국가인 카타르에 오기 전 기존에 내가 속했던 사회는 이곳과는 판이하게 달랐고, 다국적 기업인 카타르항공에서 일하기 전 나는 이렇게나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매일같이 상대해본 역사가 없었다. 사실 외국으로 교환학생도 다녀왔고, 외국인학교의 직원으로 일하며 다국적의 동료와 함께 일했던 경험이 있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 전 대륙 160개 도시로 취항하는 이 회사에서 만나게 될 동료와 손님들은, 기존의 내 범주로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정말이지 천차만별이다. 속된 말로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별의별 경우가 다 있구나 싶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들을 대하는 직업을 가진 우리 엄마가 ‘사람들 참 천태만상이더라’ 하는 말을 종종 하고는 했는데, 가보기는 커녕 때로는 들어본 적도 없었던 나라에서 온 수많은, 그리고 매일같이 새로운 사람들을 대하는 나는 오죽하겠느냔 말이다. 내 경험과 그에 따라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만큼 다양한 문화, 배경, 인종, 생활방식, 그리고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당황스럽거나 심지어 불쾌한 일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아직 초짜였던 나의 얼굴은 굳어졌었고, 때로는 그 영향으로 비행 후에도 우울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기도 했었다. 웃어야 하는 것이 이 직업의 일부일지라도 승무원도 사람인데, 무례한 승객에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느냐 마느냐는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작년 이맘때쯤이었을까, 5년 이상 비행했던 크루와 점프싯에 나란히 앉아서 대화를 하는데, 화날 만한 상황에서도 표정 변화가 없는 그녀가 인상적이었다. ‘난 굳이 화가 나지도 않아.’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미 별의별 상황을 다루는 것이 익숙하고 능숙해진 덕이리라. 사실 나는 아직도 손님들을 대하는 것이 어렵다. 갤리에 그저 짱 박혀서 주방 일을 하라면 몸은 힘들지언정 그게 오히려 속 편할 때가 있다. 사실 아마 손님은 내게 영원히 어려운 대상이 될 듯 같다. 아무리 내게 환하게 웃어줘도, 아무리 이런저런 대화를 편하게 해도, 손님은 손님이니까. VVIP이든, 플래티늄 멤버 손님이든, 어쩌다 한 번 고향에 가는 노동자이든, 내게는 같은 손님이다. 물론 플래티늄 손님을 대할 때 더 조심스럽지 않으냐 하면 부인하지는 않겠다. VIP 손님이라 하면 더 신경 쓰지 않느냐 하면 그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당히 해도 되는 손님, 쉽게 대해도 되는 손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 미소는 기본적으로 모두에게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공손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손님을 만나면 몰래 꽃다발 들고 서프라이즈! 하고 찾아온 남자 친구라도 발견한 것 마냥 내 미소가 환해지고, 무례한 손님의 공격(?)을 당하면 가짜 미소로 전환이 된다는 거다. 자동이다. 예전에는 그 미소가 곧바로 싹 사라지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미소의 종류만 살짝 달라지니, 그래도 참 많이 컸다. 내 미소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나는 백 프로 느껴지는데, 그게 남이 보기에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나는 여러 차례의 평가 비행에서 상사로부터 genuine;진정성 있다 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분명 이는 칭찬이었다. 긍정적인 상황에서 내 진정성은 더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다소 상하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미소가 기본 설정으로 되어 있는 가면을 쓰고 있어야 했다. 그때는 ‘진정으로’ 속상한 티를 내서는 안되었고, 그것이 초반의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부분이었다.



   트레이너들이 서비스 교육 때 그리 하던 말이 있다. 캐빈은 무대고, 너희들은 배우나 다름없다고. 얼마나 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는지 아냐고, 표정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가 다 관찰의 대상이라고. 그래, 그곳에서 평정심을 잃고 본심을 내보이면 나만 우스워질 뿐이다. 탑승을 하며 내가 먼저 웃기도 전에 내게 먼저 웃어주는 손님이 있다. 주니어일 때는 그런 손님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용기를 내서 그다음 손님에게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달까. 반면 손님이 무뚝뚝하거나 차가우면 주눅이 들었었다. 하지만 곧 그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기서 먼저 환하게 웃어야 하는 것은 무조건 나였다. 그러면 무표정하던 손님도 열에 여덟은 내 미소에 화답했다. 누군가가 먼저 웃어주면 여전히 무표정을 고수하기가 더 힘들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내가 주도권(?)을 쥔 듯한 기분을 느끼자 조금 쉬워졌다. 어느새 제법 농담도 하고, 내 미소 하나, 내 농담 한 마디에 이내 웃는 손님들을 보니 내가 미칠 수 있는 작은 영향력에 신기한 기분마저 들었었다. 내 삶이 현재 어떠하든, 비행 전 무슨 일이 있었든, 캐빈에 서면 초기화되는 기분이었다. 그곳에서의 나는 적정선의 미소를 항상 유지하고,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그 종류와 레벨이 달라지고는 하지만 이제 어지간해서는 그 미소를 잃지는 않으려 한다.


    이제는 만성이 되어버린 허리 통증과 소화불량, 매번 덜컥 겁이 날 만큼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 그리고 알 수 없는 각종 몸의 여러 증상을 포함해 정신적으로는 사람에 지치기도 하고, 때로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맞지 않아 비행 후 에너지가 소진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3-400명의 손님 중 단 한 명의 단 한마디에 눈물이 핑, 마음 맞는 크루와 손발 척척 맞아 일하다 보면 나는 다시 ‘그래도 비행만 한 것이 없다’ 싶다. 가만히 있으면 무슨 병이라도 나는 건지 틈만 나면 죽어라 여행을 다니면서도, 그 좋아하는 여행, 한국에 있을 때 그 긴 시간 내 마음껏 내 성에 찰 만큼 못해 끙끙 앓던 그 여행을 이제는 원 없이도, 남들이 보기에는 무슨 한이 맺혔길래 저리 돌아다니나 싶을 만큼 하면서도 심지어 비행이 그리웠으니 말 다했다. 누군가 내게 비행이랑 여행 중 무엇이 더 좋으냐 물어보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는 고전적인 질문과 흡사하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겠다.


   비행 2주년, 이번에는 휴가를 한꺼번에 몰아 3주간의 휴가를 만들었다. 그 3주간 스페인 그라나다와 이비자, 포르투갈 포르투, 그리고 필리핀 팔라완까지 죽어라(?) 여행을 하면서 얼마나 벅찬 순간들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와중에 ‘그래도 내 집이 최고다~’ 하는 기분이 들면서 자꾸만 그리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비행이었다. 3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도하로 돌아오는 길, 필리핀 클락에서 우리 회사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그만 울컥해버렸다. 집에 가는구나, 내 일상인, 비행하는 삶으로 돌아가는구나, 하는 안도감이었을까.


   휴가에서 돌아와 처음 했던 필라델피아 비행. 우리 승무원들 사이에서 힘들다고 인식되는 장거리 미국 비행인 데다가 체류지가 특별히 재미있는 것도 아니니 별생각 없이 갔다. 별생각 없이 그저 일했다. 13시간 비행 중 한 6시간 지났을까. 한 손님이 갤리로 오더니 차 마시고 싶은데 자기가 만들어도 되겠냐고 묻는다. 특별한 레시피가 있다고. 그래서 종이컵에 티백 넣어주고 설탕이랑 우유 등은 알아서 넣으라고 해줬다. 열심히 옆에서 두 잔을 만들더니 나에게도 갑자기 묻는다. ‘너도 한 잔 만들어줄까? 내 레시피 특별해.’ 2년간 일하면서 크루한테 티나 커피 만들어주겠다고 하는 손님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호의에 놀랐지만 마음이 따뜻해져 흔쾌히 마시겠다고 했다. 손님은 우유 스틱 1개 반을 넣은 자신만의 차를 만들어주고는 너희가 우리한테 해주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으로 해줄 수 있는 거라는 매우 예쁜 말까지 남기고 갔다. 이 손님 한 명으로 별생각 없던 이 비행이 특별해졌다. 내가 내 자리로 돌아왔구나, 하는 마음과 함께.

   다음 날, 필라델피아에서 도하로 돌아오는 비행.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나이 든 아주머니가 갤리로 오더니 내 팔을 조심스레 쓰다듬는다. 뭐 필요한 게 있으신가 해서 봤더니 “Thank you for your manner that you helped us.”라고 얘기하며 따뜻하게 웃으셨다. 내가 몇 시간 전 샌드위치 서빙했던 손님이었다. 아이스크림도 드시라고 열심히 권했었다. 그때도 수줍게 웃고 있던 모습이 기억이 났는데.. 나한테 그 말 하려고 갤리까지 와서 무려 나를 일부러 찾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사람들은 참 내 생각보다 따뜻하구나. 어떻게 처음 보는 타인한테 저렇게 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례한 사람도 있지만, 내 생각의 범주를 벗어날 만큼 따뜻한 사람들도 많다.


   캐빈은 무대고, 우리는 배우와 같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고,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미소를, 그리고 평점심을 잃지 않는 프로다. 그럼에도 내가 늘 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슬럼프도, 무기력함도, 가끔 자신 없던 내 모습도 승객의 칭찬 한 마디에 저 멀리로 밀려난다. 그 수줍은 미소 하나에 나는 다시 다음 비행에 나설 힘을 얻는다. 3년 차에는 또 어떤 에피소드가, 어떤 사람들이, 어떤 도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래, 아직은 비행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2018년 7월, 비행 2주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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