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사 서울의 남산 케이블카를 타는 것만 같았습니다. 또는 유럽 고지대 관광지의 푸니쿨라를 타는 것같기도 했습니다. 저 위 정상을 향해 유려하게 잘 빠진 트램을 타고 굽이굽이 올라가니까요. 그곳이 초행인 저는 도착 즈음 멀리 산 위로 보인 그곳이 테마파크인 줄만 알았습니다. 알록달록 컬러풀한 트램이 마치 동화 속 성처럼 보이는 산 위 하얀 건축물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으니까요. 도착해 보니 그곳이 게티 미술관이었습니다. 미술관이 산 정상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에 방문객들은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렇게 트램을 타고 올라가야 합니다. 그냥 밑에다 미술관을 짓고 방문객을 맞이해도 될 텐데 그 미술관의 건립자인 폴 게티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것이었다면 그는 아마도 접근성이 좋은 LA(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 미술관을 세웠을 것입니다.
게티 미술관은 입장료가 없는 것으로도 유명세를 치르는 미술관입니다. 국가나 지자체가 세운 것이 아니고 개인이 세운 대형 미술관임에도 돈을 받지 않습니다. 지하에 있는 폴 게티가 대신 내주고 있는 격이라 할 것입니다. 대신 이렇게 다운타운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발품을 팔고 오라고 합니다. 아, 차품이 맞겠네요. 그가 숨겨놓은 엄청난 보물을 보게 된다는 설렘을 누적시키면서 소풍 가듯이 오라는 것만 같습니다. 가서 본 게티 미술관은 미술관 이상의 특별한 장소였으니까요. 그가 LA 다운타운에서 26km 떨어진 브렌트우드 근처, 성 가브리엘산 꼭대기에 미술관을 세운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종일 주차비 25불을 입장료로 생각하는 방문객들이 있습니다. 차가 없인 갈 수 없는 곳이니까요. 그러니 가족이든 친구든 여러 명이 가면 이익일 것입니다. 역시 또 소풍을 가듯이 말입니다. 입장은 가방 검색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곤 트램을 타는 것입니다. 최근 사회적 의사 표현의 수단으로 미술 작품을 훼손하는 깜짝 테러가 빈번해져서인가 유명 미술관의 보안 검색은 갈수록 강화되는 듯합니다. 1년 전 방문한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의 경우는 아예 가방을 맡겨야만 입장이 가능했습니다.
1997년 개관한 게티 미술관(센터)의 중앙 통로 (2024. 10)
게티 미술관은 건물 한 동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와도 같은 갤러리 단지입니다. 산 위에 화이트와 베이지 컬러가 섞인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동서남북이란 이름이 붙은 네 동의 갤러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기획 전시하는 갤러리도 별도로 한 동 있으니 총 다섯 개의 동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산이 주는 신성함에 그런 규모까지 더해 게티 미술관은 제가 방문했던 맑은 그날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보였지만 구름이나 안개라도 끼는 날이면 올림포스산 정상의 신전처럼 보일 것입니다. 물론 그곳의 주신은 제우스가 아니라 그 빈 산에 미술관을 세운 폴 게티라는 부호입니다. 그의 지시로, 정확히는 그의 사후 그의 뜻을 받들어 그의 이름을 딴 재단에서 미술관을 완성하고 개관했습니다.
폴 게티는 1976년에 죽으며 7억 불을 게티 재단에 기부를 하였습니다. 당시 그의 재산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30조가 넘습니다. 그 10년 전인 1966년엔 전 세계에서 최고 부자로 기록되었습니다. 미술관 건축은 요즘 우리나라 고급 레지던스 건축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리처드 마이어에게 맡겼습니다. 그는 5년에 걸쳐 설계와 그 산 지형의 지반을 다지고 12년에 걸친 공사 끝에 1997년 공사를 완료하였습니다. 1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공을 들여 자연에 역사까지 어우러져 그 자체로도 거대한 예술 작품인 아름다운 게티 미술관이 탄생한것입니다.
다섯 개 동 중 어느 갤러리를 먼저 들어가도 상관이 없지만 그 미술관엔 먼저 보면 좋을 대작이 하나 있습니다. 갤러리들 사이의 중앙 통로로 직진해서 나가면 나타나는 전망대와도 같은 테라스에서 보이는 정경입니다. LA의 드넓고 시원한 전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직선 방향으로 가까이로는 UCLA 캠퍼스가 보이고 멀리는 다운타운이 보입니다. 항구가 있는 롱비치도 보입니다. 왼쪽으론 할리우드와 비버리힐스가 숨어있고 오른쪽으론 말리부와 산타모니카가 보입니다. 미술관에 왔지만 LA 최고의 전망대에 온 것입니다. 미술관 바로 아래엔 산을 타고 센트럴 가든과 캑터스 가든이 놓여 있습니다. 물론 그 정원도 건축물의 일부입니다.
게티 미술관 테라스에서 바라본 로스앤젤레스 시티 풍경. 우측 아래는 캑터스 가든.
폴 게티는 이런 빅 픽처까지 생각해 다운타운에서 멀리 떨어진 높은 지대에 그의 미술관을 세운 듯합니다. 그곳에선 LA라는 거대한 예술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으니까요. LA는 미국에서 뉴욕 다음으로 큰 도시로 미 서부 최대의 도시입니다. 그렇게 게티 미술관은 LA에 사는 앤젤리너들은 물론 전 세계에서 오는 많은 방문객들에게 미술 작품만 선사해주는 것이 아닌 다양한 볼거리와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미술관 입장 전 제가 오인한 테마파크가 맞습니다. 주제가 미술인 테마파크입니다. 동반한 아이들에겐 트램을 타는 것도 큰 즐거움일 것입니다. 그날 저와 친구는 점심으로 도시락을 싸가 미술관 마당에 앉아 먹었습니다.
게티 미술관엔 모든 시대에 걸친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정 예술가나 예술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통상적인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회화, 조소는 물론 도자기, 가구 등의 공예 작품과 스테인드글라스를 비롯한 장식 미술품도 많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폴 게티는 편식성이 아닌 잡식성의 콜렉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동서양의 많은 예술품들이 시대별로 네 동의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미술관은 다른 미술관에선 보기 힘든 중세 시대의 그림도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더 이전인 그리스, 로마 시대의 미술품은 그곳 미술관이 아닌 17km 떨어진 말리부에 위치한 게티 빌라에 따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날 시간상 그곳 미술관까지는 가보지 못했지만 빌라라 불리는 미술관답게 그곳 전시관은 모던하게 지어진 이곳 미술관과는 달리 로마 시대의 전원주택을 재현한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폴 게티가 살던 집 근처에 지은 미술관으로 1974년 개관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소장하는 미술품이 늘어나며 그곳이 차서 1997년 브렌트우드에 게티 미술관을 건립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곳 빌라 미술관도 무료입장입니다. 그 미술관의 이름이 게티 빌라(Getty Villa)인 것처럼 우리가 통상 게티 미술관이라 부르는 미술관도 정확한 이름은 게티 센터(Getty Center)입니다. 이 글에선 게티 센터라고 하면 의미 전달이 약화될까봐 미술관으로 칭하며 쓰고 있습니다. 물론 게티 빌라도 게티 미술관입니다.
1974년 개관한 게티 미술관인 게티 빌라 (출처, 홈페이지)
게티 미술관엔 유명 작품들이 많지만 대표 선수는 누가 뭐래도 고흐입니다. 그가 1889년에 그린 <아이리스>는 항상 많은 방문객들로 북적입니다. 게티 미술관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작품으로 1990년 경매에서 5,390만 불을 주고 낙찰을 받았습니다. 그것 말고도 게티 미술관엔 모네, 마네, 밀레, 드가, 르누아르, 렘브란트, 쿠르베, 제리코, 자코메티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즐비합니다.
별개로 영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윌리엄 터너의 작품이 제 눈을 더 머물게 하였습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도 보았지만 볼수록 빠져들게 하는 그의 그림입니다. 사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전함 테메레르>도 그렇지만 그의 그림은 눈을 비비고 봐도 잘 안 보이는 게 오히려 매력인 듯싶습니다. 게티 미술관엔 <모던 로마 - 캄포 바치노>란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미술책이 아닌 역사책에서 더 자주 보이는 프랑스 절대왕정의 태양왕 <루이 14세>의 초상화도 시선을 길게 가게 했습니다. "짐이 곧 국가다"라고 외친 만큼 자신감이 서려있는 그의 초상화입니다. 또 하나 제가 쓴 이전의 글들에 몇 번이나 등장한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초상화도 저를 들뜨게 하였습니다. 가장 위대한 자라 불린 로렌초 메디치의 양자요, 파치가의 암살 사건 때 죽은 그의 동생 줄리아노 메디치의 친자인 그를 생각지 않게 그곳에서 실물영접한 것입니다.
위로부터 1) 고흐의 '아이리스' 2) 윌리엄 터너의 '모던 로마 - 캄포 바치노' 3) 이아생트 리고의 '루이 14세' 4) 피옴보의 교황 '클레멘스 7세'.
그런데 폴 게티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을까요? 우린 그가 번 큰돈으로 그 미술관을 세웠다는 것은 알아도 정작 그가 무엇으로 부자가 됐는지는 잘 모릅니다. 우리에게 미국 부자는 강철왕 카네기, 철도왕 밴더빌트, 석유왕 록펠러, 자동차왕 포드, 비행기왕 하워드 휴즈 정도가 우선 떠오르니까요. 폴 게티는 록펠러처럼 석유로 큰돈을 벌었습니다. 지금은 텍사코에 합병되어 그 브랜드는 사라졌지만 그의 패밀리 이름을 딴 게티 석유로 번 돈을 가지고 미술품을 구입하고 미술관을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평생 수집한 미술품을 그의 미술관인 빌라와 센터에 나눠 넣은 것입니다.
폴 게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올 더 머니(All the Money)>란 영화가 있습니다. 명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18년 작품입니다. 영화는 폴 게티의 삶 중 우선 연상될 수밖에 없는 미술품 콜렉터가 아닌 1973년에 발생한 그의 손자의 유괴 사건을 다룹니다. 그 영화에서 할아버지인 그는 지독한 구두쇠로 나옵니다. 유괴범 조직이 무사귀환을 조건으로 제시한 1,700만 불의 금액을 대폭 깎아 최종 289만 불로 합의할 정도로 말입니다. 못 주겠다고 계속 버틴 것입니다. 그렇게 내어준 돈도 세금 공제 상한선인 220만 불까지만 내어주고 나머지 돈은 손자의 아버지인 그의 아들에게 이자를 받고 꿔줬다고 합니다. 아마 그 유괴범 일당은 그의 처사에 학을 떼었을 것입니다. 선수를 잘못 고른 것입니다.
폴 게티에 관한 구두쇠 일화는 그 외에도 많습니다. 방문객들이 사용하기도 하는 집 전화비를 아끼기 위해 집안 전화기에 자물쇠를 채우고 손님들은 마당의 공중전화를 이용하게 했다고 하니까요. 물론 전화비는 손님 부담입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그렇게나 인색했던 것입니다. 폴 게티는 그렇게 손자의 유괴 배상금까지 아껴서 모은 돈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품을 사모았습니다. 그리고 생전의 구두쇠 행보와는 달리 사후 그의 곳간 문을 활짝 열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무료로 즐길 수 있게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승처럼 쓴 것입니다. 게티 미술관에선 사진도 마음대로 찍을 수 있습니다.
게티 미술관의 설립자인 진 폴 게티(Jean Paul Getty, 1892~1976)
생각해 보니 저는 게티 미술관과 폴 게티란 인물을 알기 전부터, 그리고 <올 더 머니>란 영화를 보기 훨씬 전부터 게티를 알고 있었습니다. 과거 광고대행사 재직 시 빈번하게 그의 이름을 들어온 것입니다. 당시 광고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본 제작 이전 시안 제작 시 스탁(stock)이라 불리는 자료 사진을 많이 활용하였습니다. 그때 가장 많이 사용된 스탁 슬라이드가 게티이미지(gettyimage)란 회사의 것이었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 그 게티 맞습니다. 폴 게티의 손자가 창업한 회사로 뉴욕 증시에 상장까지 한 회사입니다. 위에서 유괴당한 그 손자의 동생입니다. 16세 때 유괴 당한 그 손자는 유괴 시 그의 귀까지 자른 유괴범의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그것에 미온적으로 대응한 갑부 할아버지의 충격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후 패밀리 비즈니스에선 멀어져 알코올과 약물로 폐인처럼 살다가 50대에 사망했습니다.
미술관 감상을 얼추 마치고 다시 트램을 타고 내려갑니다. 그때 폴 게티의 삶에 우리나라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삶이 오버랩되었습니다. 그는 사망 1년 후인 2021년 평생 모은 2만 3천 점의 미술품을 사회 환원차 기증을 하였습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조 단위가 넘어가는 큰돈입니다. 그 미술품들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서울 경복궁 옆에 조성된 송현녹지광장에 2027년 개관 예정인 이건희 미술관(가칭)에 전시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사립은 아니지만 이 글의 폴 게티가 LA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사회 공헌이라 하겠습니다. 바라옵기는 새롭게 개관될 그 미술관도 기증된 미술품들의 가치에 걸맞게 멋지게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입장료도 게티 미술관처럼 무료로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지금 폴 게티는 죽어서 없고, 그가 매진했던 비즈니스도 사라지고 없어졌지만 그가 수집하고 기부한 미술품들은 언제까지고 살아서 많은 사람들이 볼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언제 들어도 명언이고 진리입니다.
트램을 타고 올라가면 나오는 게티 미술관(센터) 입구
* 인디언 서머로 다소 더웠지만 청명했던 10월의 어느 날 바다 건너 멀리서 온 친구를 위해 자원봉사(?)로 미술관 가이드를 해준 플러튼의 친구에게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