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북부 베로나는 그 나라 초보 여행객들에겐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북부 지역에선 주로 밀라노와 베네치아를 가곤 하는데 베로나는 그 두 도시 중간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출발하든 차로 각각 동서로 2시간 정도를 가야 합니다. 그렇게 멀지 않음에도 가기가 쉽지 않다고 한 이유는 수도 로마를 기점으로 출발한 여행자는 북진하여 피렌체를 거쳐, 아니면 더 위에 있는 볼로냐까지 간 후 서북쪽의 밀라노를 갈 것인가, 아니면 동북쪽의 베네치아를 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북으로 직진하면 베로나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지명도나 다음 행선지를 고려하면 베로나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밀라노로 가는 여행자는 십상 스위스로, 베네치아로 가는 여행자는 오스트리아로 넘어가기에 그 두 도시 사이의 베로나는 패스되는 것입니다. 물론 제한된 시간 안에 여행을 끝내야 하는 급하고 가난한 여행자들의 루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베로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갑니다. 그들이 보고픈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를 가슴에 묻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 여행객들 중엔 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2017년 회사 일로 밀라노 출장을 갔었습니다. 일을 다 마치고 귀국하기까지 스페어 데이로 잡아둔 하루가 비었습니다. 오, 베로나를 갈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 없이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는 영문학의 고도 베로나로 향했습니다. 예상대로 중세의 낭만이 서린 베로나에서 그 커플을 만난 저는 그 도시에서 과외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고대의 건축물을 보고 매료당했습니다. 로마의 콜로세움과도 같은 거대한 원형 경기장이 도시 한가운데에 있던 것이었습니다.
베로나 중심가에 위치한 로마 시대의 원형 경기장 아레나 디 베로나
베로나는 다운타운인 에르베 광장 주변에 로마 시대에 지은 2천 년이 넘는 주택들이 아직도 건재할 정도로 고색창연한 도시입니다. 그런 베로나에 존엄한 자 아우구스투스로 불린 황제가 서기 30년에 지은 웅장한 아레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땐 주로 노예들의 검투장으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뜻밖의 경험은 이후 몇 년 후 고흐를 보러 프로방스의 아를에 갔다가 그 도시에서도 생각지 않은 원형 경기장을 보고서 이날 베로나의 기억을 소환하게 됩니다. 정말 대단한 로마 제국입니다. 지중해를 뺑 둘러서 유럽이나 북아프리카, 레반트와 아나폴리아란 불린 아시아 지역 어디를 가든 이런 원형 경기장들은 발견이 되니까요. 베로나의 그 경기장은 아레나 디 베로나(Arena di Verona)라 불립니다.
그때도 지금과 같은 10월 말이었습니다. 베로나의 아레나에 들어서서 "역시나 로마!" 하며 감탄을 하고 있는데 그곳엔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 경기장 바닥에 놓여 있었습니다. 무대와 그 부속 장치들이 흩어져 있던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행사를 마치고 나서 아직 그 장치와 장비들이 수거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매년 6월에서 9월까지 열리는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가 끝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해 뜻하지 않게 베로나에 가게 된 저는 이렇게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로나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만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가 끝난 후의 아레나 모습 (2017. 10)
베로나 아레나의 오페라 축제는 1913년 처음 열렸습니다. 이탈리아, 특히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던 과거 롬바르디아라 불리는 북부 이탈리아의 독립 영웅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연례행사로 열려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무려 100년이 넘은 것입니다. 올해가 2024년이니까 정확히 111년 동안 101회의 오페라 축제가 열렸습니다. 기간과 횟수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세계를 시끄럽게 만든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반대로 세계를 조용하게 만든 최근의 코로나 때문이었습니다.
1913년 개막작은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였습니다. 아마도 주최 측은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들어가 있는 <나부코>와 <개선 행진곡>이 들어가 있는 <아이다> 중에서 고민하다가 <아이다>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바빌론 유수 시 식민 생활의 설움을 노래한 유대인의 <나부코>보다는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집트의 <아이다>를 고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베로나의 이 축제는 북부 파르마 출신인 베르디에 한정하지 않고 중부 루카와 페사로 출신인 푸치니와 로시니에게도 개방되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축제로 성장했습니다. 베르디, 푸치니, 로시니 등 쟁쟁한 오페라 스타들이 즐비한 오페라의 나라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가 된 것입니다. 1년 전인 지난 2023년 이 축제를 보기 위해 전 세계 125개국에서 온 40만 명의 관객들이 베로나의 여름밤을 더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세계적인 야외 오페라 축제인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 (솔오페라)
베로나의 그 오페라가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그곳 원형 아레나를 빠져나와 지난 토요일인 12일 서울 올림픽공원에 위치한 원형 돔(KSPO DOME, 구 올림픽체조경기장)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날이 개막일로 이번 주토요일인 19일까지 공연이 열립니다. 111년 역사상 처음 있는 해외 공연으로 한국 이탈리아 외교 수립 140주년을 기념하여 이루어진 대형 이벤트입니다. 그런 의미 있는 서울 공연의 대표 선수로 발탁된 베로나의 오페라는 푸치니의 대작 <투란도트>입니다. 이 가을 고대 중국의 신비가 담긴 초대형 블록버스터 오페라가 지금 서울의 밤을 화려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야외 오페라 공연의 백미는 스케일일 것입니다. 실내 오페라 극장에선 시도할 수 없는 웅장한 무대와 다수의 인력 참여가 가능하기에 그렇습니다. 7년 전 제가 가서 직접 목도한 3만 명이 입장할 수 있는 베로나 아레나는 그런 면에선 최고일 무대일 것입니다. 역시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보덴 호수와 알프스를 배경으로 무대를 꾸며 기이한 아름다움까지 선사하는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도 그런 면에선 베로나 오페라 축제와 함께 야외 오페라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 큰 공간을 채우는 음악과 음향은 현대의 오디오 기술이 해결하고 있을 것입니다.
방한 중인 베로나의 <투란도트>도 야외를 실내로 들여온 돔에서 펼쳐져 규모면에선 아레나와 다를 바 없습니다. 케이에스포 돔에 가로 50m, 높이 20m에 달하는 대형 세트가 똑같이 들어섰으니까요. 고대 중국의 성벽과 황궁을 재현한 그 무대는 베로나 아레나의 세트를 그대로 싣고 왔습니다. 올해 6월 그 오페라 축제의 개막작인 <투란도트>가 끝나자마자 컨테이너 55개 분량의 장비에 그 무대를 나눠 담아 서울행 배를 태운 것입니다. 현지 인력 100명도 함께 와서 무대를 꾸미고 무대에 섰습니다. 이번 서울 공연의 정식 타이틀이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인 이유입니다.
서울에서 화려하게 개막한 아레나 디 베로나의 오페라 '투란도트' 공연 모습 (2024. 10. 12. 솔오페라)
지난 12일 저는 그 개막 공연을 직접 참관했습니다. 7년 전 베로나에서 그 아레나를 방문했을 때 언젠가 그곳에서 열리는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그곳은 아니지만 그곳과 똑같은 오리지널 진품을 서울에서 만난 것입니다. 오페라엔 초보자로 그간 <투란도트>의 줄거리는 알아도 음악은 너무나도 유명한 아리아인 <네순 도르마>를 빼곤 몰랐었는데 비로소 전작을 보고 듣게 된 것입니다. 설레었고 궁금했습니다. CD나 영상, <팬텀싱어> 등에서 따로 떼어내서만 듣던 그 <네순 도르마>가 어떤 순간에 어떻게 불려지는지 말입니다. 그렇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오페라 안에서 이어지는 스토리의 흐름 속에서 듣게 되면 감동은 비교가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저의 기대와 예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투란도트>는 3막의 오페라입니다. 북경에 황궁이 있는 고대 중국의 공주에게 청혼을 하는 왕자의 이야기가 기본 줄거리입니다. 그 왕국의 혼기가 찬 투란도트 공주의 결혼 조건은 하나입니다. 그녀가 내는 3가지 퀴즈를 맞히면 그녀의 신랑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참수를 당하는 것입니다. 지난 2년간 꽤 많은 도전자들이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위험부담이 큼에도 남자들이 계속해서 도전하는 것은 그녀가 너무나도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우리의 주인공 칼라파 왕자는 신기가 발동해 그 문제를 모두 맞힙니다. 하지만 그녀는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남자를 혐오하는 것엔 구원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녀 선조 중 한 공주가 칼라파 왕자의 모국인 타르타르국의 침략 시 처참하게 능욕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남자들이 맞출 수 없는 문제를 내고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자 칼라파 왕자는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반대로 그가 내는 한 가지 문제를 맞히면 그는 죽고 틀리면 그와 결혼하자는 것입니다. 투란도트 공주는 그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북경의 백성들에게 그날 밤 잠을 자지 말고 그의 이름을 알아내라고 합니다. 참으로 냉혹하면서도 못되기까지 한 공주입니다. 그 과정에서 칼라파 왕자를 따르는 하녀 류가 그를 위해 죽음으로 그의 이름을 지켜냅니다. 그런 지고지순함에 마음이 움직인 투란도트 공주는 새벽 동이 틀 때 예상을 깬 답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틀렸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한쌍의 커플이 탄생합니다. 그간 능욕의 저주로 죽음의 행진을 이어온 공주가 한 여인의 희생으로 사랑의 소중함을 깨달아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오페라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립니다.
공연을 보며 몇 번의 놀람이 있었습니다. 일단은 앞에서도 언급한 무대 스케일입니다. 베로나에서 온 <투란도트>엔 총 500여 명의 가수와 배우, 그리고 합창단이 출연합니다. 합창단 중엔 공연장이 있는 송파구의 귀여운 어린이 합창단도 등장합니다. 그 많은 참여 인력을 수용해야 하기에 무대는 클 수밖에 없습니다. 1막의 무대는 북경 성밖에서 진행되고 2막에선 성벽 뒤에 숨어있던 거대하고 화려한 황궁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장관입니다. 사진에서만 본 베로나의 <투란도트> 세트와 똑같이 생긴 어전의 모습이 그 돔 안에 세워졌습니다. 마치 깜짝쇼를 하듯이 솟아나 저를 비롯한 관객들은 모두 탄성을 질렀습니다.
케이에스포 돔에서 솟아난 웅장하고 화려한 '투란도트'의 무대와 공연 모습
다음으론 아리아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오페라 곡 중에서 가장 잘 알고 있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하나만 뽑으라면 <네순 도르마(Nessun dorma)>가 1등으로 나올 것입니다. 오페라를 모르는 사람들도 그 노래는 많이 들어왔으니까요. 그리고 한 번만 들어도 기억될 정도로 아름답고 인상적인 노래이니까요.
3막이 시작되면 드디어 칼라파 왕자의 <네순 도르마>가 나직이 흘러나옵니다. 대단한 뜻이 있는 것 같지만 잠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북경 시민들에게게 공주가 내린 명령입니다. 하지만 칼라파 왕자는 자신감에 넘쳐있습니다. 그의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고 아침이 되면 투란도트 공주는 그의 신부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이 아리아에서 노래합니다. 서울 공연 첫날 <네순 도르마>는 베로나에서 온 신사인 마틴 뮐레가 불렀습니다. 사실 저는 그를 잘 모르지만 프로그램북에 소개된 대로 그는 세계 정상급의 스핀토 테너답게 클라이맥스를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갔습니다. 1막과 2막에서 그렇게 많은 노래를 부른 것이 마치 3막의 <네순 도르마>를 위한 리허설이었던 것처럼 열정적으로 공주를 향한 마음을 가득 담아 불렀습니다.
"내가 이겼다"며 그가 마지막 "빈체로(Vincero)"를 포효하듯 외쳤을 때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기대 이상, 전율의 순간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머리 뒤로 그 아리아가 울리는 듯합니다. 박수를 치며 혹시나 앙코르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없었습니다. 순간최근 같은 푸치니의 작품인 <토스카>의 세종문화회관 공연 시 일어난 앙코르 논란이 떠올랐습니다. 결국 칼라프 왕자는 승리했고 투란도트 공주는 패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의 승리였습니다.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마음이 바뀌어 투란도트 공주가 원했던 패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칼라프 왕자를 향한 하녀 류의 숭고한 희생이 모두를 승자로 만든 것입니다.
투란도트 공주(옥사나 디카)와 칼라파 왕자(마틴 뮐레)의 팽팽한 기 싸움 (솔오페라)
프리마돈나로 등장하는 투란도트 공주역의 소프라노 옥사나 디카의 보컬은 대단했습니다. 매우 아름답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남자들을 죽여온 냉혹하고 차가운 공주이기에 그녀의 노래도 그에 어울려야 했습니다. 과연 베로나의 아레나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도 투란도트역을 맡은 그녀답게 옥사나 디카의 고음 보컬은 마치 송곳이나 정으로 얼음을 깨듯이 차갑게 파편이 되어 저의 귀는 물론 가슴까지 꽂히는 듯했습니다. 다른 관객들도 충분히 그렇게 느꼈을 것입니다. <투란도트>에선 공주 신분이지만 강하고 박력 있는 드라마틱 소프라노의 여왕다운 그녀의 보컬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비련의 여주인공인 하녀 류의 보컬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스핀토 테너와 드라마틱 소프라노 간에 강대 강으로 경합하는 칼라프 왕자와 투란도트 공주 사이에 그 둘을 중화시켜주고 정화시켜주는 훌륭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리릭 소프라노의 아리아로 그 둘의 사랑을 연결해준 것입니다. 하녀였기에 그녀의 차림은 허름했지만 그녀의 보컬은 절대 허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아리아를 감싸주는 음악을 연주한 오케스트라도 매우 훌륭했습니다. 특히 베로나 오페라 축제의 음악 감독으로 이번 방한 공연에서도 지휘를 맡은 다니엘 오렌은 음악은 물론 막이 바뀔 때마다 관객의 분위기를 유도해 공연의 흥을 더했습니다. 그의 지휘는 무대 아래 핏(pit)에서 이루어졌지만 보이는 두 팔만으로도 무대 위의 배우처럼 연기를 하는 듯했습니다.
하녀 류(마리안젤라 시칠리아)의 애절한 아리아. 핏의 지휘자는 다니엘 오렌 (솔오페라)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유작입니다. 아쉽게도 그는 이 오페라를 다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것을 안타까워한 친구인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마에스트로 토스카니니가 그의 사후 미완성인 3막의 뒷부분을 여러 작곡가들을 찾아다니며 완성시켰습니다. 푸치니에게 토스카니니와 같은 친구가 없었다면 <투란도트>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처럼 미완성 오페라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푸치니는 1924년 후두암으로 죽었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투란도트>는 1926년 초연되었습니다. 무대는 밀라노의 라스칼라 극장이었고 토스카니니가 지휘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투란도트> 이후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적인 오페라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푸치니는 동양에 매우 관심이 많은 오페라 작곡가로 보입니다. 이전인 1904년 완성한 <나비 부인>은 20세기 초반 일본의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만든 오페라이니까요. 하지만 <나비 부인>의 사실성과는 달리 <투란도트>의 중국은 우리가 아는 중국과는 조금 다릅니다. 아니 많이 다릅니다. 배경은 북경이지만 우리가 흔히 중국 정통 왕조로 여기는 진한수당송명 왕조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칭기즈칸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몽골족의 나라로 보입니다. 투란도트, 칼라파, 류, 티무르, 알툼 등 등장인물들의 이름부터가 생경합니다. 서역에 가까운 중국입니다. 실제로 투란도트 공주의 모델은 오고타이 칸국의 공주였던 쿠툴루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마농 레스코, 토스카, 라 보엠, 나비 부인, 투란도트 등 불멸의 오페라 작곡가인 푸치니 (1858~1924)
마르코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습니다. 마르코폴로는 13세기 말 중국을 방문하고 이 책을 발간했는데 그때 그의 중국은 세조라 칭한 쿠빌라이 칸이 다스리던 원나라였습니다. 아마도 <투란도트>의 원작자인 카를로 고치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보고 스토리를 구성한 듯합니다. 그 정도로 <동방견문록>은 당시 유럽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으니까요. 이런 <투란도트>의 생경함은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드라마 <마르코폴로>를 본 시청자들에게서도 똑같이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오페라 <투란도트>는 배경은 중국이지만 역사상의 국가가 아닌 상상 속의 판타지 국가로 봐야 합니다.
3막의 피날레로 <네순 도르마>가 다시 합창으로 웅장하게 울려 퍼지며 오페라는 끝이 납니다. 이 <투란도트>의 연출자는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한 프랑코 제피렐리입니다. 우리 모두가 최고로 기억하는 올리비아 헷세가 줄리엣으로 출연한 그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독입니다. 그렇게 오페라 감독으로도 겸업을 했던 프랑코 제피렐리였습니다. 2019년 그는 사망했지만 그가 생전에 연출한 <투란도트>의 버전이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의 오리지널이 되어 지금까지도 공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다른 버전보다 뛰어나기에 그렇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위의 그의 두 작품엔 베로나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과연 사랑의 도시 베로나입니다. 투란도트 공주가 3막에서 칼라프 왕자의 이름으로 대답한 답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그 답은 오답이었지만 모두를 승자로 만들어준 정답이 되었습니다. 빈체로!
* 이번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오페라 투란도트 서울 공연은 국내의 솔오페라단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소영 단장이 2005년 창단한 솔오페라단은 그간 오페라 본토의 수준 높은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해오고 있습니다. 또한 국내에서 제작한 우리의 창작 오페라인 <춘향전>, <선덕여왕> 등을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각국과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연해 오페라를 통한 민간 외교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