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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앤비 Sep 07. 2020

삼십 년을 홀로 일했어요

그녀는 식사를 하고 있었다. 부엌 한쪽 벽 앞에 밀착된 커다란 식탁에 홀로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드넓은 거실에 배치된 티브이 음량은 거의 최고로 맞춰져 있었다. 힘겹게 밥 한술 뜬 숟가락을 입에 한차례 넣고는 고개를 들어 벽을 한번 응시했다. 그녀의 손과 팔에 근손실이 상당히 진행된 것이 한눈에 관찰되었다. 그러므로 젓가락을 사용해 나물반찬 한 움큼 집는 데는 조금 더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조금 전 삼킨 쌀이 입에서 사라질 때쯤 성실히 건져 올린 나물반찬을 입에 넣었다. 그러고는 고개 들어 이미 수차례나 응시한 벽을 그윽하게 다시 쳐다보았다. 그 흰 벽에는 달력 한 장이 무심히 걸려 있을 뿐 아름다운 과거를 회상할 만한 사진이나 마음에 잔잔한 평안을 건넬 풍경사진 한 장 걸려 있지 않았다. 반찬이 입에서 다 사라졌는지 고개를 숙이고 다시 밥 한술을 뜨려 했다. 유쾌한 대화나 잔잔한 미소가 결여된 그 식사 시간이 그녀에게 마지못해 완수해야 할 노동 같아 보이며 내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인기척 없이 그녀의 식사 현장을 잠시 훔쳐보던 내가 큰 목소리로 정체를 밝혔다.


“할머니! 저 왔어요! 에효 귀가 계속 어두워져서 어쩌시나.. 도둑이 다녀가도 모르시겠네!”

세상 밝은 표정으로 나를 드러냈다.


“아이고야! 관우 왔구나! 언제 왔니? 할머니 귀가 더 안 좋아져서 네가 온지도 몰랐구나...”


토요일 늦저녁 고요한 식사 한 끼 중 찾아온 불청객을 본 그녀의 표정이 대단히 밝아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촐한 식사에 온 집중을 하던 그가 제법 고장 난 두 무릎이 처한 곤경을 망각한 채 벌떡 일어나 나를 반겼다.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의 외할머니는 수년 전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시고 방 네 개짜리 큰 평수의 아파트에서 홀로 지내기 시작했다. 지극 정성스러운 두 외삼촌들의 대단한 헌신과 배려도 할머니를 모시기로 설득하는데 역부족이었다. 자식들에게 민폐 끼치기 싫다며 절대 홀로 살기를 결심한 할머니의 굳은 고집이 그들의 사랑을 이겼기 때문이다. 미국에 멀리 떨어져 계시어 행위로써 효도하지 못하는 내 어머니의 미어지는 마음이 순간 철없는 나의 마음으로도 깊이 또 깊이 짐작되었다.


나의 할머니는 제법 성공한 어머니였다. 자식들을 사회적으로 성공시키시고 가정의 형통을 수호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감당한 이웃들에게 칭송받는 온유하고 인자한 어머니였다. 그러나 난 그 고귀한 희생적인 삶 끝에 마주한 그녀의 고독한 식사 현장을 직접 마주하며 적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분주한 도시의 삶과 악한 이웃과의 관계 속에 치여 우리 자아가 무의식 속에 갈망하는 혼자 마시는 커피 한잔의 여유나 홀로 쉬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대신 그 일은 연로한 날에 남은 여생의 대부분을 홀로 생활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성실함으로 일구고 지켜낸 가정의 평화는 그녀가 맞이한 오늘의 외로움을 효과적이고 실질적으로 위로하고 있었을까.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그녀의 헌신으로 추수한 자식들의 성공은 그녀의 고독을 온전히 대체하고 있었을지. 난 이러한 질문들에 수학공식과 같이 명확한 답이 정해져 있기를 순간 바랬지만 그것은 헛된 기대였다. 그날 밤 난 할머니의 작은 일상에 동참하고자 친근한 딸 역할을 자처해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였다.


금일 오전 삼십 대 후반의 한 남성 환자분이 사백이 넘는 식후 혈당과 당뇨병의 전형적 증상들을 주소로 내원했다. 낡아빠진 고동색 모자를 대강 머리에 걸친 그는, 흰 페인트로 추정되는 물질들로 산발되게 덧칠된 상의와 다수의 구멍 난 오버핏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가 진료실 문을 여는 순간 내 생에 가장 고약하고 지독한 악취를 경험하였다. 그것은 사람이 지어낸 언어로 온전히 담거나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대단한 악취였다. 그는 세상 모든 수고와 죄를 짊어진 고독한 이처럼 심히 굽은 등 연장선에 이어진 고개를 푹 숙인 채 땅에 시선을 고정한 자세 그대로 내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들어가겠습니다..” 의기소침한 그가 작은 목소리로 먼저 말을 건넸다.

“예 들어오세요. 당이 높아 오셨군요. 이쪽으로 가까이 와 앉으시죠.”


난 그와의 물리적 가까움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고조되는 악취는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지만 내 감정의 요동함이나 표정의 변화가 드러나지 않도록 난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그는 내가 건넨 문진에 성실히 답했지만 그것은 질문한 횟수만큼 고스란히 되돌아오는 구취가 주는 대환란을 뜻하기도 했다. 난 그에게 더 이상의 질문을 던지기 두려웠다. 마지막으로 난 젊은 나이에 한 만성질환에 유병될만한 환경적인 요인을 찾고 그의 생활습관을 평가하기 위해 의지적으로 입을 떼었다.


“환자분, 실례지만 어떤 일에 종사하시나요?”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적인 질문을 던졌다.


“아.. 전.. 여기 읍 변두리에서 조그맣게 혼자서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하다 보니 힘에 부치네요..” 그는 답하는 중에도 무엇이 그리 죄스러운지 내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일하시느라 고되시겠어요. 건강을 신경 쓰실 여건은 되는지요?”

다시 질문을 건넨 후 몰려올 악취에 저항하기 위해 호흡을 애써 참았다.


“건강은 신경을 잘 못 쓰는 것 같습니다... 끼니도 종종 거르고 허기지면 밤에 혼자 술 한잔에 식사할 때도 많고요... 혼자 사는 게 힘드네요... 무엇이든 혼자 하다 보니... 그렇죠 허허”


대화는 예상외로 한참 길어졌다. 그의 모든 답변 속에는 혼자라는 표현으로 가득했다. 그는 평범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이 혼자 수행되고 있음을 강조하며 그로 감내해야 할 혹독한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어 보였다. 잘 관리되지 않은 그의 건강이 일상을 성실히 가꿔갈 마음의 여유를 외로움에 빼앗긴 환경 탓인지 혹은 그럼에도 주어진 건강을 돌보지 않은 본인의 무책임 탓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난 피검사를 포함한 각종 기본 검사를 오더하고 환자분을 다시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몸에서 풍기는 대단한 악취의 원인도 조금 이해되는 듯했다. 그에게는 스스로를 돌볼 내적 힘이나 여유가 결여되어 보였다. 이미 만성화된 외로움이 그가 현재 소유한 것들을 가꾸고 지켜내야 할 지혜와 힘과 동기를 점진적으로 앗아간 것은 아니었을까. 모든 진료를 마친 그는 진료실에 미련남은 이처럼 그리고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남은 이처럼 내게 한두 차례 더 눈길을 주며 느리게 퇴장했다. 그러고 보니 그 눈빛은 아주 익숙한 눈길이었다. 이곳에 발길 주었던 수많은 독거노인분들이 내게 건네었던 눈빛들 속에 녹아든 바로 그 정서로 여겨졌다. 그 정서는 늘 홀로 맞이하는 소박한 일상 가운데 방문한 공공기관에서 얻은 한줄기의 위로, 환기, 해소, 전환, 인정, 존재감 등의 확인이었으리라.  


지난달 평일 이틀간 내가 근무하는 지역에 위치한 보건기관에 속한 공무원 세분과 함께 제주도 서귀포시로 직무교육을 다녀왔다. 화창한 둘째 날 오후 모든 교육일정을 마치고 제주도 나들이를 누릴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다. 아름다운 제주도 풍경을 감상하고 바다 앞 이름 모를 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던 나른한 오후 우린 각각 종사하는 보건기관에서 겪는 고충들을 주제로 담소를 나눴다. 그때 예순이 넘은 한 공무원께서 깨끗이 비운 찻잔을 내려놓으며 속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는 이십 대 중반에 공무원이 되어 00 보건진료소에 처음으로 배치되었어요.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삼십 년간 같은 근무지에서 일해 왔고요. 아시다시피 그 작은 산골마을 진료소에 직원은 저 하나뿐이에요. 저는 삼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직장에서 홀로 일을 했던 셈이죠... 그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그곳에 배치되어 지금까지 동료 없이 홀로 일을 하니... 외롭고 적적한 날들을 많이 보냈어요.. 지금도 근무환경이 적응되지 않아요. 그 젊은 날들 사람들과 어울리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일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근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곧 은퇴를 기다리고 있네요.”


그 보건진료소가 위치한 곳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진료소는 보건소 보건지소 보다도 작은 단위의 기관으로, 연로한 어르신들의 의료 접근성을 증진시키는 목적을 위해 대중교통 취약지인 깊은 산골에 위치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 삼십 년 동안 산속에 위치한 자그마한 건물 안에서 홀로 청소하고 홀로 어르신들을 챙기며 홀로 근무했을 것이다. 그리고 퇴근길이면 넉넉하지 못한 가로등 탓에 심히 어두웠던 산길을 매일 홀로 내려왔을 것이다. 한평생 도시에 살던 내가 이제는 적막한 지방의 산 이름을 알만큼 이곳 삶에 대한 이해도가 생긴 탓일까. 꽃다운 이십 대 시절부터 산기슭에 위치한 근무지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왔다는 그녀의 나눔이, 내 마음에 모호한 여운을 남겼다.


외로움은 단번에 준비 가능한 가벼운 것들로 결코 변화시킬 수 없다. 즉각적인 처신이나 금세 소모되는 성의 없는 것들로는 더욱더 불가하다. 우리 삶은 늘 단번에 풍성해지는 법이 없다. 그것은 늘 평범하고 작게 시작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피고 맺는 꽃과 열매와 같은 것이다. 풍성한 삶은 결코 화려하거나, 힘이 들어가거나, 단명하지 않는다. 풍요롭거나 번영하는 삶은 무엇에 그리 얽매이거나, 금세 좌절하거나, 쉽게 실망하거나, 쉽게 요동하지 않는다. 되려 그 삶은 지극히 작은 것으로 지극히 큰 만족을 얻어내고, 주목할만한 것이 없어 보이는 것에서 귀한 가치를 발견하며, 대단히 더딘 것 같은 시간 속에 깊이 내린 나무뿌리와 같은 것이 아닐까.


금일 퇴근길에 지난 며칠간 마주한 이웃들이 떠올랐다.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난 그저 기도했다. 오늘도 홀로 근무하고 캄캄한 산속에서 홀로 퇴근할 그분에게 풍성한 근무환경이 제공되도록. 오늘도 홀로 벽을 보며 식사할 내 할머니의 삶에 평강이 넘치도록. 그리고 지금 이 시간 고독에 헐떡이며 깊은 밤을 보낼 모든 이웃들에게도 지치지 않게 할 어떤 소중한 가치가 발견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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