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관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앤비 Sep 21. 2020

수면제를 모은 어머니

하나님의 마음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제법 쌀쌀해진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한 금일 오후, 보건소 정신건강계 담당 공무원 두 분이 진료실 문을 열고 황급히 들어왔다.


"선생님 환자 중에 자살을 계획하려던 분을 발견했어요! 방금 환자들 관리하러 댁에 방문하고 오는 길이거든요"


주무관님께서 다짜고짜 이 한 마디를 전하며 환자분이 오랫동안 모아 왔던 수면제통을 내게 직접 건네셨다. 한국 건강보험공단 급여 기준상 수면제는 일회 처방 시 하루 일정, 이십팔 일 분량을 넘지 못하게 되어있다. 수백 알의 수면제를 모으기에 환자분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앞으로 환자 진료 시 참고하겠다는 말과 함께 주무관님 두 분께 큰 일을 하셨다고 격려와 감사를 전한 후, 난 자살을 생각했던 환자분의 진료기록부터 찾아봤다. 칠십삼 세 여환은 내게 당뇨약만 타가 비교적 건강을 잘 유지해왔던 분으로, 고작 남겨진 진료기록 내용만으로는 환자가 자살을 계획할만한 그 어떤 단서나 원인을 찾기 힘들어 보였다.


두세 시간이 흘렀을까. 공교롭게도 진료 대기 창에 갑자기 그 환자분의 이름이 접수되었다. 내 능력 밖의 일인걸 직감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그 환자를 뵐 수 있다는 사실이 순간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환자는 동행한 남편분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왔다. 고운 보라색 모자를 쓰고 남편의 부축을 받은 채 작은 보폭으로 걸어 들어오시는 그녀가 순수한 소녀 같이 느껴졌다. 난 여느 때와 같이 밝게 인사드린 후, 우울한 얘기를 조금이라도 덜 어둡게 만들고 싶어 평소보다 톤을 높여 말을 이어갔다.  


"어머님, 마침 잘 오셨어요. 제가 실은 고백할 것이 있어요. 죄송하지만 어머님의 사생활을 제가 알아버렸거든요.. 지난 삼 년 동안 모으신 수면제를 보니 제 마음이 어려웠어요. 힘든 일이 참 많으셨나 봐요.."


나의 말이 끝난 후 환자분은 침을 삼키시더니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뜸을 들였다. 난 그가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환자분의 양측 눈망울이 붉어지더니 순식간에 눈물이 가득 고여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창피해서 어쩌나.. 선생님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꼭 당부했는데.. 죄송해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이 아니었고, 죄송하단 말로는 어떤 밝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믿었다. 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여쭸다.


"아닙니다 어머니, 00 병원에서 처방받아온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모으셨던 거죠? 그걸 오래 모으실 만큼 어떤 사연이 있으셨던 거예요?"


난 그 옆을 지키고 계신 아버님과 애써 눈을 마주치며 어떤 정보라도 흘리시길 눈길로 간절히 호소했다. 아직 많은 대화가 오가진 않았지만 여러 사람의 여러 감정으로 진료실이 가득해지려던 순간, 내 시선이 아버님 얼굴에 고정됐다. 그의 왼쪽 뺨 부위에는 피부와 관련된 수술받은 흔적이 관찰되었고 그 흉터를 위로 죽 따라가 보니 왼쪽 동공은 마치 나병환자의 것처럼 흰자위만 남은 채 조직이 녹아 그 형태가 불규칙해 보였다. 순간 묻고 싶은 것은 많았으나 어머니의 이야기부터 듣는 것이 순서라 생각됐다. 어머니는 눈물 몇 방울을 더 흘리시고 감정이 가라앉았는지 마침내 작은 목소리로 애꿎은 입을 열기 시작하셨다.


"사실 제 아들이 수년 전 뇌졸중이 심하게 왔었어요. 오십이 넘었는데 지금은 걷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누운 채 저리 불쌍히 지내요. 지 부모야 알아보긴 하지만 대화도 잘 안되고.. 사람 사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수면제가 어떻게 생긴 약인지 알아내어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지요.."


난 어머니께서 어렵게 열은 입을 다시 닫을까 봐 고개만 끄덕인 채 그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속이야기를 들어드렸다.  무거운 시간이 흘러 어머님의 말씀이 끝나갈 무렵, 그 옆에 묵묵히 서있던 남편분이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선생님, 저도 열두 번씩 수술하느라 마누라도 신경 못썼어요. 여기 눈 보이십니까? 이거 피부암 수술한 건데 눈까지 번져 얼굴에 칼을 열 번 댔습니다. 십칠 년 전에는 가슴 열어서 인공판막도 두 차례 넣었지요.. 제가 하루에 먹는 약만 열개가 넘습니다"


아버님께서 나눈 본인의 고된 투병생활은 공감, 위로, 인정을 원했던 어린아이의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본인이 힘들게 살아왔다고 언성을 높이는 순간에도 아버님은 자살을 계획해왔던 부인의 마음을 몰라준 것이 미안했는지, 어머니 옆에 꼭 밀착해서는 배려하는 자세로 부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분들의 사연의 핵심은 바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본인들의 힘겨운 투병 생활에 대해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어머님이 수면제로 자살을 계획했던 이유는 아들이 병 걸려 현재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님이 언성 높이면서까지 본인의 고된 투병생활을 나눈 사연에 대한 본체는, 아픈 아들놈 때문에 그간 견뎌온 세월이 의미를 잃었다는 것이었다.


몇 달 전에도 비슷한 사연을 가진 할머님을 뵌 적이 있다. 나에게 진료를 받은 한 칠십 세 환자분은 나와의 면담을 다 마쳤는데도 머뭇거리시며 진료실을 나가지 않고 진료기록을 남기는 나의 얼굴만 응시했다. 더 도와드릴 것이 있냐는 나의 질문에 그분은 갑자기 흐느끼며 내 등과 어깨를 만지시고는 겨우 말을 이었다.


"두 달 전에요.. 제 아들놈 하나를 지병으로 먼저 보냈어요.. 젊은 선생님 보니 아들 같아서... 흑.."


자식을 낳아보거나 길러보지도 않은 내가 취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은 없었다. 그러셨군요.. 그러셨군요..라는 그 흔한 추임새와 함께 내 등을 갑작스레 쓸어내리는 환자분의 손길을 기꺼이 내어드리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는 바로 자녀 사망이라 한다. 자식을 잃은 슬픔과 상실감은 한 어머니의 삶을 극심한 고통으로 몰고, 다시는 기쁨과 웃음을 맛볼 수 없을 만큼의 절망으로 초대하며, 때론 내가 오늘 마주한 분처럼 본인의 생일 마감하려는 등 극단적인 일들을 용감히 계획하게 만든다. 시간이 약이라는 우리가 잘 아는 명언은, 연인과 헤어져 사랑의 대가를 혹독히 치르는 청춘들에게는 검증된 진리이나,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는 쉽게 적용되지 않는 말일 것이다.


의과대학 재학 시절 응급실에서 실습할 때도 비슷한 사연을 가진 한 아이 어머니를 직접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한 남자아이는, 할머님의 부주의로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왔지만 끝내 사망했다. 그 소식을 듣고 일이십 분 뒤 한걸음에 달려온 아이 어머니는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을 만큼 큰 소리로 오열한 뒤 그 자리에 쓰러져서는 실신했다. 그 비극은 너무도 거대하여 한 청년에 불과했던 내가 마음과 행동으로 동참하기 어려웠다. 본인 배로 낳은 자식이 사망했을 때의 기분을 굳이 상상할 필요와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난 이기적 이게도 그 충격적인 장면을 고의적으로 기억 한편에 덮어 놓으려 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여야 했던 하나님의 상실감, 절규, 고통, 비통, 애통함이 '아들이 아프다'는 말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온 환자를 면담하며 새삼 새롭게 느껴지는 날이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예수님은 성령님과 더불어 세분이 다른 인격으로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진 예수를 아버지가 아닌 '아들'로 칭했다. 보내신 이는 아버지 하나님이고, 보냄 받은 이는 아들 예수였던 셈이다. 성부, 성자, 성령으로 친밀하게 연합된 분들이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로 스스로를 설명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리 죄를 위해 고통 가운데 죽어야 했던 예수는 왜 아버지 예수가 아닌 '아들'로서 지상에 내려왔을까.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자식을 잃는 일과 견줄만한 고통이 없다는 전제하에 출발된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표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죄된 사람을 위해 의로운 아들을 보내야 했던 하나님의 심정이 바로 사랑의 본체였음을 증명하기엔 이만한 각본이 없었을 것이다.


아들의 아픔, 아들의 죽음, 그것들은 나의 일상과는 아주 멀게 느껴진다. 이것은 비단 가족 간의 사연이 아닐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맺고 소멸되는 무수한 사랑의 관계로 인해 상처 나고 아무는 일이 반복되는 우리 일상이기도 하다. 얽힌 시비와 설킨 갈등을 뒤로하고, 마음과 사랑을 베푼 대상이 사라졌을 때 저며오는 상실감과 아픔을 느낀다면 그 이는 그 관계에 대해 최소 성실하고 진중하게 임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오늘 만난 어르신들의 사연을 스승 삼아 내 미숙한 삶에 적용시키고 싶다. 지금도 진행 중인 사랑으로 맺어진 무수한 관계 가운데 성실함과 진솔됨으로 임하기로,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마음의 크기를 넓히는데 부단히 노력하도록, 그리고 오늘 내가 만난 이처럼 사랑으로 인해 아프고 힘든 이웃들의 사연에 더욱 귀 기울이도록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을 마감하려 계획했던 환자분께서 이후에도 별 사고 없이 내원하여 그 고운 얼굴을 내게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삼십 년을 홀로 일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