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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앤비 Nov 16. 2020

선별진료소

주먹을 불끈 쥐더니, 이내 나를 가격하려 했다. 나를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쥔 우측 팔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축 늘어진 팔을 그녀 머리 위까지 가져오는데 상당한 시간과 힘을 들여야 했다. 복수라고 하기엔 주춤하게 진행되는 그 일련의 동작들이 심히 어설펐다. 순간 져물어가는 붉은 석양빛의 파편이 그녀의 눈동자를 은은하게 비춰서인지, 마주한 눈빛은 원망 어린 살기보다는 짙은 억울함이 그을린 망연자실함에 더 가까웠다. 그녀의 주먹이 허공에서 오래도록 방황하자, 주변 요양보호사들이 그 팔을 끌어내리며 간신히 말렸다.


‘이러시면 안 돼요 어르신’

‘수고하시는 선생님인데요’

‘다 어르신 위해서 하는 것이에요’

‘다 끝났으니 마스크 다시 올려 쓰시면 곧 돌아갈 거예요’

‘선생님, 이 분이 치매가 좀 심해서..’


난 의례적인 미소를 지으며 구십 세가 훌쩍 넘은 어르신께 곰살궂은 억양으로 연신 죄송하다 외쳤다. 더 밝은 미소를 지을 인격과 능력은 충분히 갖췄지만, 코로나 전수조사 대상자들이 내 앞에서 대열을 이루고 있었던 터라 여유가 조금 부족했다. 코를 찌르면 조금 아프다고, 이삼십 분은 얼얼하다고, 한쪽 눈에서 눈물이 흐를 수 있다고, 그럼에도 이 모든 절차는 삼초라는 짧은 시간 내에 끝날 거라는 확신을 심어 드리며 미리 양해를 구했지만, 한편 그것은 타인에게 명백한 고통을 건네게 될 내 마음의 안위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간단한 의료행위를 실행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은 난청을 지닌 그들에게 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설명할 때도, 협조를 구할 때도, 사죄를 할 때도 목청을 한껏 높여야 했다. 딱 다섯 발만 떨어져서 보면 가학적 환경이 따로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요란한 보호복으로 무장한 이는 긴 막대로 입구멍 콧구멍을 만족스러운 검체를 채취할 때까지 여러 각도로 연신 쑤셔대고, 쇠약한 몸을 간신히 지탱하는 백발노인들은 눈물을 흘리고, 재채기를 토해내고, 혼곤한 정신을 바로잡느라 애썼다. 


복지부는 고위험 시설에 대한 선제적 일제검사를 그간 전국단위의 비수도권 지역에서 꾸준히 실행해 왔다. 금일 이곳 강원도 양양군의 여러 요양병원에서 내원한 육십여 명의 어르신들의 평균 연령은 팔십 중반은 되어 보였다. 이 간단한 의료행위의 수급에는 다양한 인력이 필요했다. 요양병원을 포함한 각종 고위험 시설에서 대상자들을 모실 운전기사, 그들을 부축할 요양보호사, 진료할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내려온 공문을 충실히 이행할 감염계 공무원, 검체를 수송할 또다른 운전기사 모두가 필요했다. 금일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며 느낀 것은, 일상에서 연신 울려대는 재난문자에는 무수한 사람들의 수고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당연 국민 모두의 수고를 얘기하는 것이지만, 의료진과, 보건기관의 공무원들과, 특히 고령 어르신들의 것들이 너무나도 크다는 것이다. 기약이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언제 어떻게 어떤 형태로 이 재난이 마무리될지 장담할 수 있는 이가 없다는 것이 더욱 그러하게 만든다. 


난 보건기관에 종사하면서 천구백이십년대생 어르신도 종종 봤다. 아흔 살 이상의 노인은 거의 매일 봤다. 금일 생면부지의 노인들을 많이 울렸고, 많이 노하게 했다. 미세한 콧구멍 입구멍을 찾아내 그들에게 고통을 가하면서도, 그들 가슴에 난 구멍은 메워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이 모든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고, 그것을 신속하고 완연하게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의 연약함 때문이다. 그러나 난 그 연약함 속에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사람의 연약함과 한계로 인해 각종 방역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쏟아부을 것이고, 더디지만 진일보를 이루는 쾌거의 시간을 맞이할 것이고, 위기와 절망 속에서 진부한 하루의 소중함을 마음으로 깨달을 것이고, 찬찬히 성장하고 개선하며 굴곡진 삶을 고이 펼 것이며, 과거를 되씹으며 돈으로 살 수 없는 풍염한 미래에 조금씩 다가설것이기 때문이다. 난 그 미래가 주님과 관계적으로 가까워지는 복이라 믿는다. 일상 영역에서 돌이킬 것들을 돌이키고, 옛것을 지우고 새것으로 채우며, 사람의 연약함과 환경의 요동함 속에도 결국 진리를 더욱 붙잡게되는 복, 난 이러한 것이 코로나 종식을 꿈꾸는 우리가 맞이할 풍염한 미래라고 생각한다. 


입동이 이틀 전이라 했다. 금일 오전은 영하권으로 날이 많이 추웠다. 올 가을 중에 가장 추운 날이라 호언장담하던 어제의 일기예보는 적중했다. 음압텐트가 흔들리고, 모자가 흩날릴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난 얼얼한 코를 부여잡고 귀가할 어르신들이 온기 가득한 저녁을 맞이하기를 바랐다. 재난의 주관자이고 최종 해결사 되시는 주님의 진한 은혜와 시선이, 보건의료 종사자들과 민원인들 모두에게 짙게 임하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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