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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정 May 26. 2024

살아있는 것들

이토록 번거로운, 곁을 내어 주고 보살핌을 감당해야 하는, 살아있는 나날

"살아서 내게 온 것들을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않은가."

 졸지에 떠맡은 열두 화분 앞에서 중얼중얼 불평을 했다.


내 동거인은 일, 공부, 운동으로 스케줄표를 빽빽하게 메우는 걸로 모자라 각종 모임까지 즐기느라 24시간이 모자란, ‘외향형 에너자이저’ 다. 그에게 청천벽력이 일어났으니 역병에 의한 <사회적 거리두기>였다.


한동안 도탄에 빠져 있더니 궁리해 낸 그의 숨통은 역병시대에 유행을 탄 ‘아파트 실내텃밭’이었다.

흙 담긴 스티로폼 박스가 거실 창가에 속속 등장했다. 상추, 방울토마토, 케일.. 새내기마냥 이름표를 단 상자들이 열과 행 맞춰 늘어나더니 결국 거실 삼분지 일을 점령했다. 내 영역이 줄어들수록 나는 짜증스러워졌다.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쓸고 닦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무리 방비해도 물 샐 틈은 존재하는 법, 거실마루 군데군데가 까맣게 변색되었다. 여기저기 흙도 밟혔다. 불쾌지수 치솟던 어느 날엔 까만 알갱이가 수없이 발견됐다. 소름 돋게도 그것들이 미세하게나마 이동하는 것을 발견하고 흙의 부산물이 아니라 탈출한 벌레들임을 깨달았다. 나는 폭발했다.


한여름이었다. 쩌렁쩌렁한 내 분노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그 화가 독이라도 뿜어낸 걸까. 아니다, 에어컨 바람 때문일 것이다. 푸성귀들이 생기를 잃어갔다.  그날 이후 농사는 완연하게 몰락해 갔고 실패의 흔적을 뒷수습하며 거실농군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거실을 탈환한 내 기쁨은 그러나 길지 않았다. 불굴의 사내는 포기하지 않았다. 재택근무 와중에 그가 간간이 외출했다 돌아올 때면 낯선 잎사귀가 현관문 사이로 삐죽 먼저 고개를 들이밀었다.


푸성귀들을 뒤이은 관상용 화분들의 진격이었다. 마침내 천장까지 닿는 거대한 녹보수 화분이 입장하던 날, 나는 다시금 화와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코로나블루를 호소하며 갱년기 사내의 눈망울이 고양이처럼 그렁거렸다. 꾸울꺽, 분노를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다.


대신 “家長보다 키 큰 식물은 불길하다”, 주워 들은풍월을 앞세우며 녹보수에게 줄자를 들어 밀었다. 172센티 넘는 윗가지들을 무자비하게 잘라냈다. 후두둑 쏟아지는 잎사귀를 보는 172센티 가장의 표정은 살점 베이는 사람 같았다. 내 기분은 약간 풀렸다.


화분 돌보기로 시름을 달래던 재택근무자에게 낭보가 날아든 것은 다음 해 2월이었다. 그의 닦달에 내가 여기저기 신청해 둔 시민 텃밭 중 하나에 당첨된 것이었다. 언제 장만해 둔 것인지, 차 뒷 트렁크에 각종 농기구와 모종을 가득 싣고 역병 시국 1년 만에 그는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주인 떠난 거실화분들은 이내 방치되었다. 누렇게 말라가는 것을 내가 발견했을 때 몇몇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내 상태를 말하자면 ‘돌봄 대상은 가족한정’이라는 신조로 살아온 지 오래된 참이었다. 원체 에너지 부족한 몸을 끌고 밀며 반백년을 살아왔으며 현재는 지병 재발을 막기 위해 숙면과 휴식에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덕분에 나의 하루는 딱 12시간. 심신에도 가용시간에도 손톱만큼의 여유가 없다.


또한 ‘살아있던 것들’에 대한 슬픔이 여전히 남아있다. 탄생과 생애를 함께 하다 품에서 죽어간 강아지, 고양이들. 그리고 몇몇의 실종. 지독한 슬픔과 오래 찾아 헤맨 기억은 반려동물을 다시 거두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내게도 식물집사 시절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기 해외거주를 위해 지인에게 화분들을 맡겨야 했던 일이 오래전 있었다. 몇 년 동안 튼실하게 키워낸 대형 벤자민 고무나무가 불과 두서너 달 만에 고사했다는 소식에, 정 준 것 그 무엇도 아물기 힘든 쓰린 빈자리를 남긴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내가 얼마나 상실에 취약한 성향인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건조한 도시여자’의 외피를 여러 겹 둘둘 뒤집어썼다. 무생물들과 함께, 냉정하게, 상실의 두려움 없이, 그동안 비교적 안전하게 지내온 것은 그 덕분이었다. 이제는 ‘그런 척’이 아니라 정말로 삭막해진 내 바운더리에 난데없는 흙과 물과 식물이 침범한 것이다. 실로 난감하기 짝이 없는 사태였다.


일일이 초록생물들의 특성을 검색하고 개별맞춤 환경을 제공할 호의 따위는 내게 없었으므로 남서향 거실창 앞에 일렬횡대 키 순서로 세워 놓았다. 날 잡아 녀석들 앞에서 큰소리로 선언했다. “물은 일괄적으로 주 1회만 줄 테다. 각자도생토록 하여라.”   


그런데 대체 무엇인가, 자꾸 돋아나는 저 연두색 이파리들은. 중년아저씨의 스윗한 일대일 서비스 대신 가혹한 군대식 처우 앞에서 생존능력이 배가되기라도 한 것인가.


특히 대장격 녹보수놈이 대단한 성장세를 보였다. 마치 반항기 청소년 같았다. 아는 사이가 되고 보니 가위질은 선뜻 내키지 않았다. 단호한 태도로 윗가지들을 가차 없이 구부려 노끈으로 묶어버렸다. 그리곤 오갈 때마다 으름장을 놓는다. “눈치껏 고개 숙여야지?”


안면을 튼 후에는 안 내켜도 이름 교환이 다음 순서다. 녹보수, 금귤나무, 스파트필름... 하나씩 호명할 때 잎사귀가 순간 반짝! 하는 건 순전히 기분 탓일 게다. 예쁜 말만 들은 식물이 잘 큰다는 드라마 대사를 접했다. 그 후론 화분 앞에서 소리내 투덜거리기가 어려워졌다. 기왕이면 잘 살아 주는 게 피차 좋은 일 아니겠는가. 


이쁘다, 사랑해, 복화술로 겸연쩍게 소근거려 보기도 하는데 저 녀석들도 나만큼 민망해하는 것 같다. 안면 트고 통성명하고 표정을 알아가는 것, 성가시고 부담스럽고 가끔 다정한 일이다.


오늘은 水요일, 각자 몸피와 성질에 맞도록 물을 주었다. 슬쩍 잎사귀도 쓸어주었다. 녹보수 별명은 해피트리인데 성격도 이름 따라 초긍정적인 걸까. 내 으르렁과 잔소리를 죄다 격려사로 바꿔 듣는 모양이다. 오늘도 기어이 새순을 오른쪽 정수리 위로 높이 피워 올렸다. 머리 위로 승리의 V를 그리며 히죽 웃는 것만 같다.


아마추어 농부님은 텃밭 농사에 여념 없고 조만간 김장거리를 수확해 오겠노라 일방통보 해왔다. 수십 포기 무, 배추를 절여야 한다. 으윽, 내 아까운 체력과 시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토록 번거로운, 곁을 내어 주고 보살핌을 감당해야 하는, 살아있는 나날들이다.





# 2022 <동서문학 18- 꽃들의 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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