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흘 꽃들은 괴로움과 잠자고 제 그림자에 얼굴을 묻었다 꽃이 필 동안의 잔잔한 그리
움을 지우고, 조바심을 지우고 꽃들이 흔들리는 경계 안으로 더 짙은 산그늘이 필요했다
줄기를 버리고 잎새를 버리고 떠도는 괴로움이 날벌레보다 가벼울 때
마주보는 이여,
고이 멎는 그대 입김에도 얼마나 아픈 것이 있는가
< 꽃피는 시절 1 >, 이성복 시집 남해 금산
다시 봄.
지금 이곳에선 어떤 나무, 어느 꽃 하나도 대단치 않은 것이 없다.
오래 품은 고백을 내보이듯 나무들이 은밀한 새순을 틔우고
꽃들은 자기만의 색과 향을 뿜어내며 존재를 증명한다.
“나 여기 온전히 있노라.”
천지간이 그들의 속삭임으로 소란하다.
3월 말이 되면 벚꽃이 단연코 이 무대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러다 4월 초 어느 하루엔 어김없이 바람이 세차게 불어올 것이고,
바람 속에서 여린 꽃잎들이 천지간을 메우는 장관을 보여줄 것이다.
꽃피는 시절마다 나는 설레며 이 낙화의 날을 기다린다.
난분분 난분분(難紛紛)...
벚꽃은 낙화할 때 완전히 해체된다. 낱낱의 홀몸이 된다.
연연하는 마음도 무게도 없기에 그들의 낙화는 오래 걸리는 일이다.
바람을 타면 하늘로 거슬러 올라 멀리, 낯선 곳까지 다다르기도 한다.
절연(絶緣)되었으므로 가벼운 것들의 낙화는 유영 또는 비행을 닮는다.
햇빛아래 시시각각 몸을 뒤챌 때 그것들은 반짝이는 손인사, 흩뿌려지는 눈물,
혹은 변심한 칼날처럼 번뜩인다.
네이버블로그펌 https://blog.naver.com/hans5786/222305200078 낙화의 날이면 한참 동안 밖에 머무른다.
꽃비가 얼굴을 스치고 몸을 휘감는 거리에서 해마다 같은 소식 하나가 새 소식인 듯 내게 날아온다.
오래전 내가 떠나온 <거기, 그때>의 이야기이다.
벚나무들이 속에 품어온 숱한 감정과 말을 천지간에 쏟아낼 때 한번도 꽃피어 보지 못한 젊은 날을 생각한다. 발화되지 못한 채 가슴에 묻혀있던 말들이 칼날에 베인 듯 붉게 튀어 오른다.
천지사방에 흩어진다.
꽃잎과 함께 허공을 떠돌다 낙화하는 것으로나마 나는 짐짓 꽃이 되어 보고 싶은 것일까.
20대의 나는 내내 파리하고 음울한 얼굴이었다.
묵묵히 길만 보며 걸었다. 병고와 파란의 연속이었다.
밤중 산행 같은 시간들. 복병에 놀라고 넘어질 때마다 어김없이 생채기가 생겼다가 아물었다.
흉터가 더께로 쌓여 갑옷 입은 듯 마음이 단단하게 두꺼워져 갔다.
‘무엇에도 마음 뺏기지 말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보자.’
그렇게 어둔 오르막을 한참 더듬어 가던 중 갑자기 눈앞이 열리더니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알지 못하는 사이 나는 산마루를 넘어온 걸까.
쉼표인지 마침표인지,
한동안은 거기서 볕을 쬐며 쉬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 서른한 살에, 오래된 대단지 아파트 안에 세를 들게 되었다.
후문 앞 외딴 동이었다. 1층에 자리한 15평 집은 어둡고 냉했지만 장점 하나에 마음을 끌렸다.
꽤 깊고 넓어서 숲이라 부를만한 정원이 건물 전면에 가득 펼쳐져 있다는 점이었다.
건물 외부에서는 숲의 존재를 짐작할 수 없었고
현관문 열고 맞은편 거실 끝까지 들어가야 볼 수 있는 은밀한 풍경이었다.
멀리 뒤편으론 키 큰 암록 침엽수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베란다 바로 앞까지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 수종을 짐작할 수 없는 아름드리나무들이
몇 겹으로 열 맞춰 늘어서 있었다.
당장의 음산함을 견딘 후 찾아올 봄 여름 가을의 보상이 눈부실 것이었다.
휴일 아침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단지 안 산책로를 한참 걸었다.
이십 대의 내 분투에 대한 답이 내린 것 같은 안식이었다.
비로소 찾은 평화 속에 맞이한 첫겨울, 빗장을 슬쩍 열어 보이며 마음이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그 무렵 어린 시절 친구 하나가 먼 곳으로부터 찾아왔다.
남다른 가족사로 십 대 시절 한국을 떠났던 친구는 남은 인연을 정리하러 잠시 귀국한 것이었다.
친구 얼굴에는 지난 세월의 성공과 실패가 모자이크처럼 섞여 그려져 있었다.
오랜 비행 끝에 날개 다쳐 찾아든 새 같기도 했다.
20년의 사연을 교환하는 우리는 교차로에서 만난 두 순례자 같았을 것이다.
나는 동류를 발견한 기쁨에 들떴다. 친구에게 안식과 힘을 되찾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어느 날 친구가 사진 한 장을 건네주었다.
사진 속엔 건강한 열 살의 내가 햇살 같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자신의 버팀목이었던 그 어린아이는 이제 사라지고 없는 것 같다, 는 친구의 말.
서로가 서로에게 무게를 더 얹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작별의 말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던 마음 어딘가가 푹, 찔린 듯했다. 피가 흘렀다.
어쩌자고, 이제껏 잘 여며온 갑옷을 안심하고 열어버린 내 잘못이었다.
그날 밤 귀가해서 거실커튼을 열어젖혔다.
오랜만에 환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창 너머 풍경에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집이 차원이동이라도 한 것인지
낯선 세상 하나가 어둠 속에 펼쳐져 있었다.
내가 한 눈 파는 동안 몰래 피어나
창을 가득 메우고 있는 밥알 같은 꽃들, 꽃들...
수십 그루 장대한 벚나무들이
눈부신 난장을 피워내는 중이었다!
겨우내 궁금했던 앙상한 나무들은 모두 벚나무였다.
겨울 끝자락, 내가 친구와 재회하던 동안 나무들은 겨우내 묻어두었던 마음을 끌어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수 같은 이별에 상한 얼굴로 돌아온 밤,, 마침내 말들을 죄다 쏟아내고 있었다.
눈부신 발화였다.
그 시절 내가 살던 세상에선
첫 번째 봄비 지나면 벚꽃 몽울이 맺히고 두 번째 봄비 내리기 전에 벚꽃이 졌다.
벚꽃은 만개하자마자 나흘 닷새쯤 보슬비처럼 떨어져 내리다가
약속처럼 봄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 하루에 머리 풀고 모두 쏟아져 버린다.
그렇게 끝장을 본다.
베란다 창 앞에 반듯이 누워 바라보았던 나흘간의 하늘,
꽃비를 기억한다.
열린 창으로 꽃잎들이 하염없이 넘어왔다.
꽃잎에 얼굴이 묻히고 몸이 덮였다.
아마도 이별은 미리 맺어둔 계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저리도 쉽게 잡은 손을 놓는 것이리라.
비상하듯 춤추며 허공에 오래 머무르는 낙화의 때.
어쩌자고 추락의 장면에 이르러서야 찬란하게 아름답다는 말인가.
나무는 설핏 부는 사소한 바람에 저리 매정히 자신을 밀어내는데
저항도 원망도 없이 순순히 떨어져 내리는 꽃잎들.
발화되지 못한 나의 말들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나에게인지 꽃들에게인지 모를 외마디가 흘러나왔다.
"머저리같은"
젊은 시절 내내 아픈 길로만 헤매는 이들이 있다.
본디 타고나기를 인연 약하고 한없이 여린 것들이다.
추락하는 주제에 비행하는 척, 간신히 버텨내는 주제로 누가 누구를 불쌍해할까.
어차피 서로를 붙잡을 무게도 기력도 없이 낱낱의 홀몸인 것을.
바람 속을 유영하다 잠깐 스친 후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것이 그들 만남의 방식이다.
공중을 서성이는 꽃잎들 사이 수백수천 어지러운 길들이 만들어졌다.
마음이 그 미친 길 속을 헤매 다녔다.
하늘땅 사이 기댈 곳 없던, 편히 내려앉을 곳 없던 친구의 처지, 나의 삶을 생각했다.
누가 누굴 버린 것인가.
다만 손을 놓은 것이다.
잠시 만난 우리는 허공 속 각자의 길로 갔다.
난분분, 난분분... 그 나흘 지나고 마침내 바람이 불던 날은
하루 낮 하루 밤이 온통 낙화하는 꽃들의 아우성으로 가득찼다.
마침내 소란 잦아들고 정갈한 아침이 왔을 때
산책로 눈길 닿는 곳마다엔 관리인들이 만들어 둔 소복한 연분홍 무덤, 무덤들...
급하게 돋아나버린 단호한 푸른 잎사귀 사이로 안타깝게 매달린 몇몇 꽃잎들이 보였다.
혼자 애태우면 뭐할까.
미련하게 버텨 봐도 결국 초라하게 떨궈질 것을.
무정하고 부지런한 관리인들이 꽃무덤을 마대에 쏟아 넣으며 초봄의 과제를 수행했다.
그날 쓸려나간 꽃잎들의 안부는 아무도 모른다.
두 번째 봄비 지나면
나무들이 어린 새 혀같이 어여쁜 새잎을 뱉어 내니 비로소 상춘이다.
창밖 싱그러운 연두색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생활 속으로 서서히 내려앉았다.
연연하던 미련은 떼어내 숲에 주었다.
한 시절을 숲에 버렸고 버린 마음 모두가 幻이 되어 날아갔다.
두 번째 겨울 오기 전 나는 정주할 집을 찾아 그곳을 떠났다.
지나고 나니 내가 길 위에서 지낸 마지막 시절이다.
며칠전 저녁밥을 먹으며 태블릿 뉴스를 보다가 그 아파트단지가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숲의 안위가 궁금했다. 벚나무들도 베어질까?
그때 그곳에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야 보이는 숲이 하나 있었다.
동굴 속처럼 어둡던 한 세계가 세상없을 천국으로 피어나던 시절이 있었다.
꽃잎 속에 육신을 묻고 싶던 나도 있었다.
거기가 나의 찬란한 봄이었음을 떠나온 여기에서 비로소 안다.
단단하게 굳어버린 껍질이 갈라져 피를 흘려야 새순 돋는다는 것도.
올봄도 어김없이 지독하게 아프며 아름다운 것들, 꽃이 피고 꽃이 진다.
< 지금 이곳 >에서 나는 단단히 뿌리내린 나무가 되었다.
굳게 땅을 디디고 서서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 분투하는 하루하루.
가끔 넘어지거나 길을 잃어도 고단한 얼굴로 돌아보면 집이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싸우며 나이 먹어가는 내가 집 안에 있다.
그때 幻이 되어 허공으로 날아갔던 한 시절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와 같은 안부를 거듭 물을 것이다.
'꽃이 피었다 지고, 잠시 만났다 떠나가는 길들이 교차할 때
이렇게 나이 먹어 가는 나여, 그리고 친구여 안녕한가'
그 숲이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이제 나는 그곳에 다시 가지 않아도 괜찮으니.
# 2021, <동서문학 17호- 풍경에 닿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