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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달에 한 소년과 그의 아버지가 산다.

by 강이정

열서너 살 무렵 추석에 아버지께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부친과 함께 달밤을 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였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집은 아직도 먼데 어스름이 내렸고 두둥실 동녘에 보름달이 떠올라 그들의 동행이 되어 주었다. 부자父子가 마지막 고갯마루에 도착했을 때 달은 중천에 올라 저 아래 마을로 향하는 길을 훤히 비춰주었다.


징용 갔다 왜국 땅에 노동자로 눌러앉은 소년의 부친은 3, 4년 한 번꼴로 귀국했고 자식들도 그 터울로 태어났다. 보기만 해도 입이 절로 벙긋해지는, 아깝고 귀한 아버지였다. 형님들이 장성하여 집을 떠나니 마침내 열두 살 소년에게도 기회가 왔다. 난생처음 아버지와 단둘이 보내는 하루, 내내 마음이 기꺼웠다고 한다. 왕복 수십 리를 걸으면서도 고된 줄을 몰랐다


훗날 돌아보니 처음이자 마지막 동행이었다. 머지않아 소년은 대처로 나가 눈 코 뜰 새 없는 고학생이 되었다. 소년의 아버지, 즉 나의 조부는 몇 년 후 영구귀국하여 농사꾼이 되었는데 오래지 않아 병석에서 돌아가셨다. 본시 병약했던 몸으로 버텨낸 타국살이가 화근이었을 것이라 했다.




살아생전 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서너 번 더 들려주었다.


"그 밤은 달이 참 고왔더라. “


스토리는 항상 이 문장에서 뚝 끝이 났다. 십여 년 전 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듣던 날에 내 아버지는 정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기억이 소멸되기 전 알아 두고 싶은 디테일들이 있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고운 달밤에 무엇을 더 보태랴, 묵묵히 보름달을 향하는 당신의 먼 눈빛으로 충분하다 싶었다.


세월 지나 내게도 물끄러미 달을 향하는 버릇이 생겼다. 달을 우러를 때마다 달을 보던 아버지 옆얼굴이 생각났다. 당신도 이러했을까. 닳을 대로 닳은 마음을 기대고 싶었을까.


지체되었던 삶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나는 몇 년에 걸쳐 시간을 쪼개며 두세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머리와 몸이 고장 났다. 밤낮없이 돌아가던 기계가 뚝 멈춘 듯 머리와 몸에 마비가 왔다. 하던 일 모두를 일시에 내려놓고 치료에 집중해야 했다. 중년에 누구나 한 번쯤 받게 된다는 건강경고장일 거야, 잠시 지나갈 롱코비드 후유증일 거야, 스스로 위안도 해보았지만 의사들은 답을 쉬이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 나 또한 퇴행의 초입에 들어선 것은 아닌지 불안에 시달렸다.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날 아버지를 보러 갔다. 발병 10년 차에 접어든 아버지는 더욱 왜소해지고 한마디 말도 못 하는 아기가 되어 있었다. 경계의 눈빛으로 나를 주시할 때마다 "저예요, 아버지 딸!" 거듭 내 이름을 크게 불러 드렸다. 낯선 외부인의 침범에 화가 난 아버지를 요양보호사가 살살 달래 거실 실내 자전거 위에 앉혔다. 그녀가 쭈그려 앉아 손뼉을 치며 동요를 불러주자, 아버지는 아기처럼 웃으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곁에 앉아 엄마와 한참 안부를 주고받고 있는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딴판으로 표정이 또렷해진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잘~ 사냐?"


벼락같은 외침에 보호사가 휘청,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예! 이 단계에서는 이런 말이 불가능합니더." 그녀가 더듬으며 같은 말을 반복하더니 마침내 "기적"이라는 단어까지 입에 올렸다. 하지만 나는 하나도 별스럽지 않다는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나의 안녕이 궁금한 사람이었다. 언어와 인지를 완전히 상실한 후에도 무의식은 내내 나를 걱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돌멩이처럼 튀어나온 한 마디 외침은 당신 내부에 오랫동안 쌓여 있던 기다림과 염려의 응축물인 것으로 보였다. 현재 상태와는 무관한 과거의 산물이므로 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순간 망설이다 아주 큰 소리로 거짓말을 했다. "네! 아주 잘 살아요!" 찰나였지만 아버지는 안심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아기 얼굴로 돌아갔다. 지나고 나니 생전 당신에게서 들은 마지막 말, 유언이다.


아버지를 보고 온 후 새로운 입버릇이 생겼다. "나 잘 살고 있나?" 자문하고 "대체 어찌하면 잘 살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으로 되물었다. 회복이 지지부진하여 일시정지 상태로 2년 가까이, 속절없는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지나온 내 삶은 약간의 전진 후에 어김없이 브레이크가 걸려 버리는 상황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때마다 턱! 걸려 자빠지거나 쓰러졌다. 내 생애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희미한 점선이 된다. 이제는 오십도 넘겼고, 나름 중심도 생기고 뿌리도 탄탄해졌으니 굵은 실선을 쭉쭉 그으며 걸림 없이 나아갈 수 있을 거라 근거 없이 자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다시 건강에 발목이 잡혀 버린 상황에 몹시 화가 났다.


벌컥벌컥 화를 내던 끝에는 가계家系를 원망하기도 했다. 할아버지처럼 아버지도 나도 병약을 타고났다. 선조들도 대체로 그러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가 끊기지 않고 '허약'을 물려주고야 마는 독한 유전자라는 것이 집안의 농담이었다. '골골 팔십'이 가훈이라며 가족들이 모이면 자조하며 웃곤 했다.


불리하게 태어난 것들에게도 나름의 생존법이 있다. '가늘고 질기게’ 버텨내는 것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다시 일어날 것을. 계속 가는 것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한동안 혼자 화를 내다 제풀에 수그러져 나는 점선의 삶을 다시 받아들였다. 배운 것이 그거 하나인데 별 수가 있겠는가. 병원을 전전한 끝에 다행히도 맞는 약을 찾았다. 회복이 빨라지기 시작했을 즈음에 아버지의 부음을 받았다.


당신을 화장하던 날은 그믐이었다. 다시 태어나려고 달이 모습을 감추는 날이다. 달이 떠난 깜깜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지구 반대편 하늘을 떠올렸다. 달의 뒷면이 햇빛을 한가득 받는 풍경을 상상했다.


달에게는 온 우주가 알아도 지구에게만은 절대 안 보여주는 또 하나의 얼굴이 있다. 상처투성이의 음울한 표정을 감추려고 달은 자전과 공전의 속도를 일치시켜 버렸다. 그리하여 한사코 고운 낯 하나만 보여주며 지구를 따라 돈다. 애써 감추어둔 그 이면異面이 그믐날 저 건너편 우주적 관점에서는 만월로 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엄마 관점의 아버지'를 자꾸 알려주고 싶어 했다. 자식들이 알던 것보다 훨씬 겁 많았던 아버지는 아내에게는 성깔도 잘 부리고 실수도 하는 보통 남편이었다. 아버지의 불안과 화를 혼자 받아내느라 엄마 속은 멍이 들었다. 아버지 편만 드는, 속 모르는 자식들이 서운했고 악역을 도맡느라 엄마는 억울했단다. 하지만 아비 된 삶에 온 힘 기울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고 했다. 떠난 뒤에 그 안간힘이 더욱 가여워서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다.


마음 다쳐 귀가한 날이면 두꺼운 솜이불을 꺼내 뒤집어쓰고 울분을 토했다는 아버지는 험한 소리를 내뱉기도 했다고 한다. 상상 못 한 또 다른 아버지였다.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운석을 등으로 막아내며 지구를 따라 도는 달을 떠올렸다. 평화로운 미소 하나만 우리에게 보여주는 동안 당신 등은 그 많은 충돌로 수없이 패였던가.


무수한 크레이터*로 울퉁불퉁한 달의 이면이 태양 아래 완전히 드러날 때 아버지 당신의 상처, 연약함과 오점까지 햇볕에 데워지며 위로받고 있을까. 강렬한 태양 아래 한 생애가 전부 녹아내리고 나면 온전한 재생의 시간이 올 것이다.





옛날 옛적 산길을 가던 밤, 소년의 가슴에 고운 달 하나가 떴다. 달은 그와 함께 자라나 한 생애를 함께 걸어갔다. 달을 보던 당신을 그리며 나도 달을 본다. 잘 살아야 한다, 달이 당부한다.


이제 달 속에는 한 소년과 그의 아버지가 산다.

느려도,

가다 쉬더라도,

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들이


달밤을 간다.




*크레이터(crater): 행성이나 위성 따위의 표면에 역원뿔형이나 원통형, 타원통형으로 움푹 파인 지형. 화산 활동이나 운석의 충돌, 가스 분출에 의하여 생긴다.


# <계간 수필 오디세이 > 2025 봄호

#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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