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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없다

없던 사람이 세상에 나타난다. 한동안 머무르다 다시 없음으로 나아간다.

by 강이정

"할아버지 어~없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외치면 생후 6개월 아기가 삐죽삐죽 울상이 된다. 손가락 사이로 살피다가 울음 터지기 전 얼른 두 손을 내린다. "까꿍, 여기 있네!" 아기가 꽃처럼 웃는다. 아기도 제 얼굴을 가려본다. "어? 우리 애기 어디 갔지?" 애타는 목소리를 몇 번 들려주면 슬그머니 이불을 내린다. "아이고, 울 애기 여기 있었네!" 매번 반가운 환호가 터진다. 할아버지 세상도 꽃으로 피어난다.


내 딸은 내 아버지의 첫 손녀다. 자식들 모두가 독신으로 서른을 넘기고 적막강산에 시름만 가득한 날들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딸이 사윗감을 데려오더니 번개처럼 혼사를 치르곤 일 년 만에 손녀를 품에 안겨 주었다. 아버지의 시간이 회귀하여 나는 아기가 되고 당신은 청년으로 돌아간 듯, 설레이는 날들이 다시 시작되었다.


삼십여 년 전의 아기놀이들도 생생히 재생되었다. 아기는 불안과 호기심으로 자신이 태어난 두리번거리다가 까꿍놀이를 하면서 처음으로 세상을 알게 된다. - 보이지 않아도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손을 치우고 이불을 내리기만 하면 그대로 있다. 나의 존재를 온몸으로 환영하는 사람들이 항상 거기 있다.-



걸음마를 시작하면 이제 숨바꼭질의 시절이다. 숨느라 애쓴 마음 실망하지 않도록 노련한 술래가 은근히 시간을 끌어준다.


아기가 술래가 되었다. 지쳐 포기할까 할아버지는 슬쩍 발끝을 내밀어준다.


숨어 버린 사람은 찾으면 된다. 커튼 뒤로 아무리 꽁꽁 숨었더라도 아기가 울음 터뜨리면 미안한 얼굴로 반드시 나타난다.


아기가 마음에 새긴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사람들은 대체로 믿을만한 대상이다. -







"나는 이제 아버지 없다."

벤치에 앉아 나는 혼잣말했다. 화장장에서 예상치 못한 통곡으로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나는 홀로 나와 있었다.


사흘장의 풍경은 당신 살아온 모습만큼 단정하고 차분했다. 반가운 해후와 다정한 안부가 오갔고 아버지의 자손들은 도란도란 모여 앉아 삼시 세 끼를 꼭꼭 씹으며 농담하고 웃었다. 발인 날 아침 영정을 안은 내 딸이 행렬 맨 앞에 섰을 때, 스물 두 살 아이의 검정치마가 사뿐사뿐 앞으로 나아갈 때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첫 손녀를 안아 들던 당신의 함박웃음이 떠올랐다. 바로 그 아이가 당신의 마지막 길을 인도해 모셔다 드리는 날이었다.


삶이 이토록 단순 명료한 과정이었던가. 세상에 없던 사람이 와서 한동안 머무르다 다시 없음을 향해 나아간다.


화장장 입구가 완전히 열렸는데 관을 잡은 내 손이 떨어지질 않았다. 힘이 쑥 빠져나가며 무릎이 꺾였다. "아이고~!" 이것이 내 소리인가. 생전 해 본 적 없는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뱃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통곡은 제어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불 속에 있을 때는 사시나무처럼 온몸이 진동하며 잠시 정신을 놓기도 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었다. 10년에 걸친 이별이었다. 병환을 안 날부터 당황 슬픔 우울 수용의 단계를 충분히 밟아 담담해진 지 오래였다. 임종의 새벽, 젊고 건강해진 아버지를 꿈에 뵈었다. 퇴화해 가는 몸속에 갇혔던 당신 영혼이 나비처럼 자유로워진 모습이었다. 나는 오래 얹혔던 바위를 내려놓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므로 폭발하듯 터진 울음은 내 감정과도 무관한 것으로 보였다.


스스로를 단독자로 자리매김해 온 내가 어리석었다. 나는 생명의 기원인 당신과 평생 연결되어 있었던 거다.. 양쪽이 팽팽했던 고무줄을 반대편에서 놓아버리니 날아와 맹렬한 반동으로 나를 후려쳤다. 내 근원의 한끝이 잘려 나간 몸부림, 순수한 생물학적 슬픔이었다.


아버지를 잃고서야 나는, 아비 잃은 자식이 지팡이를 짚는 까닭을 알았다. 부모를 잃은 후에야 자식은 어른이 되는 모양이었다.



돌아온 일상은 마냥 고요했다. 태풍 지나간 물처럼 천지가 흔적도 없이 시치미를 뗐다. 놀라운 부재. 당신은 완벽하게 아무 데도 없었다. 마르고 작아져 초등학생만큼 줄었던 몸집, 그 작은 부피 하나 사라졌다고 하늘이 온통 비어버렸다. 기억과 감정이 남아 있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는데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집안에서 거리에서 자꾸 기웃거리고 두리번거렸다. 꿈결에라도 '잘 있다' 한 소식 들려올까 기대했다.


확고했던 놀이의 규칙이 깨어져 버린 것 같았다. 수십 번 까꿍이라고 외쳐도, 하루 종일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도 숨은 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죽음은 더 이상, 커튼 뒤에 잠시 숨거나 손가락 사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어린애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아버지 없는데 세상에는 온통 아버지들이 가득했다. 마트에서 어린이날 선물을 고르는 젊은 아빠들, 딸과 함께 스틱 짚으며 산을 오르는 중년의 아버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택배를 운반하는 기사, 휴일 낮 가족을 태우고 운전하는 아버지들을 보았다. 남의 아버지들 때문에 때때로 울었다.




1주기 추도식을 모시러 갔다. 아버지 방은 생전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다. 창가 황토색 가죽 의자도 그대로였다. 거기 앉아 가족 앨범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것이 아버지의 아침 일과였고 언어와 인지를 거의 잃어버릴 때까지도 습관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앨범에는 우리 가족의 모든 역사가 시간 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이제 방을 정리하겠다고 엄마가 선언했다. 앨범도 각자의 몫으로 나누기로 했다.


"한 시대가 저물었소."

앨범을 해체하며 사진 속 아버지에게인 듯 엄마가 한숨 쉬며 혼잣말했다. 1968년 뿌리내린 가족의 역사는 세 개의 튼실한 가지로 확장되었다. 55년 간, 나를 시작으로 세상에 없던 아이들이 차례로 나타났고 아무도 사라지지 않았다. 가족을 열었던 최연장자, 나의 아버지가 맨 처음 안녕을 고했으니 이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사람씩 커튼 뒤로 퇴장할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없는 아이들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그러는 한 저문 시대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 거라고 속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내게 배분된 사진 파일 첫장에 생후 6,7개월 무렵의 내 딸을 아버지가 안고 있었다. 아버지의 세상이 문을 닫던 날에는 내 딸이 아버지를 안아 배웅해 드렸다. 바통터치하듯 역할이 바뀌었다. 그런 방식으로 시대는 이어질 것이다.



그는 농사꾼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동생이자 형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라서는 한 여인의 연인이 되었고 곧이어 남편이 되었다. 그리고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장인, 시아버지가 되었다가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가 되었다. 모든 역할 중 무엇보다 엄중하고 두려운 것이 아버지라는 자리였다. 아버지일 때 그는 만사를 삼갔다. 치매 말기에 이르러서도 자식들이 오기 전엔 항상 세수하고 머리를 빗으며 셔츠 단추를 끝까지 채우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물건들이 정리되고 창문이 활짝 열리면 켜켜이 쌓인 전생애가 대기 속으로 흩어지고 새로운 공기로 교체되겠지. 한 사람의 호흡이 지구의 대기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한 어린 과학도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구를 거쳐 간 모든 이들의 호흡이 지구에 남아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기므로 아버지의 폐세포를 거친 공기는 당신의 고유성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0에 수렴할 만큼 비율이 미미할지라도 분명 아버지는 호흡의 형태로 남아있다는 얘기다. 살아가는 동안 내가 숨 쉴 저 대기 속에 말이다.


흩어지고 옅어지는 것들이 소멸을 향해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전체 속으로 확산되는 중이라는 생각에 이르러 나는 조금 덜 쓸쓸해졌다. 있음과 없음은 이러한 방식으로 서로 얽혀있는 듯했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나의 아버지는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어른이 된 내 세상에서 놀이의 규칙도 변경되었다. 아버지는 확장된 것이다. 다만 너무 넓게 퍼지느라 투명하게 얇아졌고 눈에 잘 보이지는 않는다.




추도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주말 거리에 아버지들이 가득했다. 풍선을 손에 쥔 내 손을 잡은 서른 살의 아버지, 까마득한 화물선 갑판 위에 선 마흔다섯 살의 아버지, 내 딸의 유모차를 밀어주는 예순다섯 살의 아버지.


저기 있다. 모든 시간의 그리운 아버지들.




# 계간 <에세이문학> 2025 봄호

# 사진 : pixel, px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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