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백 원의 무게

by 소봉 이숙진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던 어느 오후, 나는 천천히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바람은 부드럽게 옷자락을 흔들었고, 길가에는 낙엽이 조용히 쌓여 있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반짝이는 은빛 두루미 한 마리였다. 두루미는 마치 나를 부르는 듯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까짓 오백 원쯤이야 하며 멈추지 않았고 허리를 굽히는 게 귀찮았고, 그 순간의 평온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냥 지나쳤다.

오백원.jpg

몇 걸음 지나고 나서야 마음이 찜찜해졌다. ‘왜 안 주웠을까?’ 단순히 돈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그 태도 때문이다. 나는 왜 그렇게 쉽게 포기했을까. 허리를 굽히는 수고조차 하기 싫었던 그 순간, 내 안의 나태함이 보여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오백 원은 크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그 동전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너는 지금 얼마나 성실하게 살고 있는가?”

작은 수고조차 외면하는 습관이 더 큰 기회 앞에서도 나를 주저앉히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오백원(무궁화).jpg

내가 아주 존경하는 선배가 언젠가 해 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녀의 아버지가 볏짐을 잔뜩 지고 가다가 땅에 벼 이삭이 떨어진 걸 보고, 멈춰 서서 고무신을 벗고 엄지와 검지 발가락으로 벼 이삭을 집어서 손으로 잡아 주머니에 넣던 모습을 보고 나서, 지금껏 밥알을 함부로 버린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늘 “이놈들아! 땅을 열 길을 파 봐라. 동전 한 닢 나오는가.” 하셨다던 이야기가 귓전을 맴도는데, 내가 이렇게 게을러서는 안 되겠다.

오백원(구름).jpg

그날 이후로 나는 길 위의 사소한 것들에 더 눈을 주게 되었다. 떨어진 나뭇잎,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그리고 길가에 놓인 작은 동전 하나, 그것들은 내게 삶의 자세를 묻는다.

“너는 허리를 굽힐 준비가 돼 있는가? "

오백 원의 무게는 가볍지만, 그날 내게 던진 질문은 묵직했다.


오백원(붉은꽃.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팩트풀니스』 책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