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샤오러
어느날 아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판옌중은 아내를 찾기 위해 행적을 추적하면서 그동안 미처 몰랐던 아내의 과거와 숨겨왔던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돌아가셨다던 어머니와 오래 전에 연락이 끊겼다는 오빠의 등장, 아내를 경멸하는 듯한 고향 이웃, 그리고 남편도 모르는 아내의 절친이라고 자처하며 오히려 판옌중을 가해자 취급하는 오드리까지. 그는 자신이 늪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 소설이 왜 <화차>와 <도가니>의 결합이라고 소개했는지 알겠다. 여기에 작가 임솔아의 <최선의 삶>,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까지 보태진다면 네 권을 통해 들여다봐야할 사회적 문제를 이 책 한 권에서 톺아보고 고민해 볼 수 있겠다.
소설은 성폭력 및 근친성폭력, 가스라이팅, 가정폭력, 학대와 방치, 과잉보호, 가출 청소년, 가출팸 등의 폭력 범죄 앞에서 우리가 미처 짚어내지 못했거나 혹은 간과했던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 준다. 또한 가정폭력과 성폭력 범죄를 놓고 다양한 관점과 처한 입장에서의 시각, 그리고 인간 내면의 가장 아래쪽에 자리한 악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오드리는 열 살 때 합숙 훈련 중 체조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녀의 고통과 상처를 부모조차 잊어버리고 덮어두라고만 했고, 누가 알게 될까 쉬쉬하기에 급했다. 심지어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하면 인생이 끝장난다고 말렸다.
우신핑은 고등학교때 같은 학교를 졸업한 선배의 집에서 강간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지역 유지였다. 그런데 소문은 우신핑이 원해서 성관계를 갖은 후 가해자를 강간범으로 몰아 돈을 뜯어냈다고 퍼졌다. 더구나 사람들은 강간 가해자 청년이 그 사건으로 신세를 망쳤다며 동정했다.
소녀의 엄마는 남매를 앉혀놓고 그녀가 아빠의 근친 외도로 태어난 딸이라고 폭탄 발언을 하며 자식들 앞에서 남편을 저주한다. 그 자리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소녀이지만 그 자리에 있던 가족 중 누구도 그녀를 염려하지 않는다.
젠만팅은 우신핑이 실종되고, 그의 남편이 찾아오자 묘한 흥분을 느낀다. 나보다 더 나은 처지라고 여겼던 동료의 불행에 안도감과 더 나아가 즐거움까지 생긴 그의 심리는 보편적인 감정일까.
추전샹은 만 열여섯 살이 되지 않은 소녀와 성관계를 가졌다. 소녀의 어머니가 찾아와 보상을 요구했고, 소년의 아버지는 상대가 원하는대로 합의했다. 그런데 전샹은 억울하다. 합의 하에 이루어진 관계였고, 생활비까지 지원했다는 이유다. 소년의 아버지도 소녀를 꽃뱀 쯤으로 몰아붙이며 세상물정 모르는 제 아들이 덫에 걸렸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소설은 성폭력 범죄의 가해와 피해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면서 이에 대한 법적 처벌과 단죄에 대한 단순한 스토리가 아니다. 피해자가 왜 적극적으로 가해자를 신고할 수없었는지, 장기적으로 진행된 성폭력 범죄의 폐해가 개인 일생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면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신핑의 강간 사건이 이슈됐을 당시 동네 사람들이 우신핑을 피해자라고 여기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평소에 가해자를 좋아했으며, 사건 당일 옷차림이 정숙하지 못했고 미성년자가 술에 취했다는 것. 무엇보다 가해자의 아버지는 지역 발전에 힘썼던 지역 유지의 아들이었고(가장 큰 이유다), 우신핑은 3일이나 지나서 사건을 담임 선생에게 신고했으며, 사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았다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성폭행 사건 피해자는 어떻게 살아야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등장하는 성폭력 피해자들은 집요할 정도로 서로에게 집착한다. 소설에서 그려진 인물들의 공통된 감정은 외로움과 죄의식이다. 어린 피해자들은 자신의 고통보다 오히려 그들이 가해자의 미래를 망쳐놓을까봐 걱정한다. 그래서 여러 이유로 그들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피해를 하소연할 수 없었고, 감정을 공유하고 온전한 사랑을 쏟아줄 대상이 필요했다. 그러니 가해자이면서도 마치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보호자인 양 행세하며 외로웠던 자신의 곁을 지켜준 사람을, 세상에서 혼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무릎쓰고 어떻게 내칠 수 있었겠나.
가해자가 소녀에게 했던 행위만이 가스라이팅일까. 폭력 범죄 피해자들에게 한 마디 한 마디 무책임하게 독한 말을 내뱉으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를 전환시켜 피해자에게 오히려 죄의식을 심은 그 모든 사람들이 가스라이팅에 동조한 것이라고 보면 너무 과하다고 여기려나? 그리고 사건을 사실적으로 보도하기 이전에 왜곡되게 부풀려 2차 가해를 주도하는 언론도 그 책임을 피해가지 못 할 것이다.
소설은 3인칭, 1인칭으로 번갈아 가며 서술한다. 중반을 넘어서 반전을 향해가는 스토리는 독자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물고기'는 왜 모든 것을 껴안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 엄청난 사실을 어떻게 오랜 시간 동안 가슴에 묻어 둘 수 있었을까.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에게는비밀이없다
#우샤오러
#한스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