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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디에 Mar 30. 2023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모신 하미드


재정 지원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온 파키스탄인 찬게즈는 졸업 후 기업 감정 평가를 하는 유수의 회사에 취직해 성공적으로 미국 생활에 정착한다. 필리핀 출장 중에 뉴스를 통해 접한 911테러 사건 이후 그의 인생에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일단 도입부를 지나오면서 나는 이 소설이 상당히 '도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찬게즈가 다짜고짜 누군가를 미국인이라고 자신있게 특정하는 것이나 상대의 양해를 구하기도 전에 대화를 시작하고 이끌어가는 등 이러한 장치가 마치 저자가 독자한테 "애기 좀 합시다. 일단 내 얘기를 들어보시오!"라는 것처첨 전달됐다. 


찬게즈가 근무하는 회사인 언더우드샘슨은 감정 평가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자산과 부채를 놓고 사업체가 안고 있는 걸림돌이 미치는 영향과 이를 제거할 시 갖는 사업체의 가치를 평가해준다. 소설 속에서 찬게즈의 직업이 꽤 유의미한 설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찬게즈 본인 역시 파키스탄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오고, 언더우스샘슨에 입사하기까지 그가 갖는 가치를 평가받았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대다수 사람들의 인생이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치는데, 이민자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클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시각은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다. 분쟁이 발생하면 강대국의 지원은 금전적이든 정치적이든 투자 가치 계산기를 먼저 돌려본다. 소설 속 후안바우티스타는 찬게즈, 즉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터전을 잡은 젊은이들이 오스만 제국 당시 기독교 소년들이었지만 인질로 잡혀 이슬람 군대에서 훈련을 받은 예니체리와 같은 선상에 있음을 시사한다.   


쌍둥이 건물이 하나둘 무너지는 장면을 보면서 찬게즈는 즐거움을 느끼며 미소를 짓는다. 저자는 그가 테러에 의한 희생자들이 아닌 누군가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상징성에 빠져들었다고 표현한다. 인간성과 인류애를 들먹이며 비난의 손가락질을 하기 전에 다른 관점에서 들여다 보자. 미국인들은 미국 무기가 적이라 지칭하는 이들의 거주지가 폭파되는(대부분이 민간인임에도) 영상이나 유행하는 폭력적 비디오클립을 보면서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찬게즈와 그들이 크게 다를까. 고향에 들른 찬게즈는 자신이 미국인의 시선에서 고향집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그 시선을 걷어내고서야 제대로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하는데 이는 친미주의 시각을 갖고 있는 자들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예를들면, 찬게즈가 미국을 떠나던 날, 혼자 걸을 때 추웠을 에리카를 떠올리며 JFK 공항에서 재킷을 벗어 보도 위에 놓은 그의 행위는 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궁극의 애도와 연민에 불과했지만, 이 행위는 공항에 경보 발령을 일으켰다. 


한때 '미국인'이 되기에 여념이 없는 생활을 했으나 고향에 돌아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비폭력 반미 시위를 주도하는 찬게즈는 이 소설의 대화 상대인 2인칭의 누군가에게 자신은 테러리스트가 아닌 평범한 사람임을 유쾌한 어조로 강조한다. 그런데 그의 대화 상대뿐 아니라 독자조차도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높아지면서 '혹시나...?'라는 의심을 품게끔 유도 당한다. 청자는 찬게즈의 얘기를 듣는 와중에도 주변의 소리나 형태에 두려움을 느낀다. 이에 대한 찬게즈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상상으로 두려움은 더 커진다. 찬게즈는 모든 파키스탄인을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라고 상상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서방 세계 혹은 친미주의자들이 무슬림을 모두 테러리스트로 의심하고 있음을 꼬집고 있다.  


찬게즈가 미국에서 근무하던 회사는 그에게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라고 주지시킨다. 재정에 관한 사항에만 신경을 쓰고 자산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들의 진짜 본질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혹은 복잡하게 얽힐대로 얽힌 국제 사회에서, 독자이자 지구인인 우리가 보아야할 것의 본질, 즉 근본주의는 무엇일까. 






이 소설에서 에리카는 무엇을 상징할까? 크리스가 죽은 후 성에 대한 감각이 사라진 에리카는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무감각해져가는 현대사회를 대변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근래에 일어난 전쟁이나 지진에 관련한 보도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며 후원도 하지만 정작 난민 수용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모순도 짚어볼 수 있는데, 찬게즈가 에리카에게 크리스와 경험했던 사랑에 대해 얘기해달라고 하고, 그녀는 크리스와의 추억을 찬게즈와 공유하는 모습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경청을 하고 쓰다듬어주는 아픔의 공유와 이해에 따른 행동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주저하는근본주의자

#모신하미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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