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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디에 Apr 10. 2023

러브 몬스터

이두온

3년 전, 작가의 전작 <타오르는 마음>을 읽고, 한국 장르문학에서 보기 드물었던 그로테스크한 소설에 박수를 보냈던 기억이 있다. 잊을만하면 떠올려지는 작가의 신작을 기다려왔다. 






지민

어릴 때부터 늘 엄마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자랐고, 엄마의 집에 있으면 늘 존재를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보라는 늘 바빴고 자신의 감정에 빠져 있기 일쑤라 딸 지민의 불안과 감정을 알아채지 못했다. 타인의 정직하고 순수한 애정을 받아들이기에 용기가 부족했던 스스로를 자책하는 그녀는 보라와 인회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될까. 


보라

보라는 자신이 늘 예쁘고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확인받고 싶어했다. 그녀는 지민을 정상적인 가정에서 키우고 싶어 결혼에 집착했으나 정작 딸을 보면 힘들어져 외면했다. 하지만 지민이 언제나 필요로 했던 건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라 바로 엄마. 그저 엄마와 단 둘이면 충분했다. 보라가 좇았던 '정상성'은 무엇을, 누구를 위한 환상이었을까.


인회

인회가 우경을 만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은 자신이 결코 남편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는 것. 그녀는 생존을 위해 결혼했고, 남편은 때가 되어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인회를 만났던 것 뿐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뒤늦게 사랑을 찾겠다고 가버렸고, 인회는 불륜을 저지른 상대 여자가 아닌 두 사람의 사랑을 질투했다. 남편을 사랑했다고 착각한 제 자신이 바보같았다. 사랑 없이 결혼한 부부를, 혹은 사랑을 배신한 사람을 모두 단죄할 기세로,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은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은, 자신을 향하는 듯 하다. 


우경

어린 시절 고도비만으로 외모에 대한 자격지심이 컸던 우경은 극단의 다이어트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지만 아무것도 쉬운 게 없었다. 어떤 계기로 인해 사랑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그 희열과 쾌감을 알게 됐다. 외로운 이들의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자극해 자기만의 왕국을 만들려고 했던 우경은 사랑을 칼로 삼아 종교 그 자체가 되고자 했다. 자기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겠다니, 이처럼 경이로운 자신을 신과 동등하다고 여기면서.  


미선 

미선이 속한 세계의 사람들은 돌파구가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올 수 없는 늪같은 비루한 삶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것 뿐이라고 믿었다.  






이 소설에서 눈여겨 보게 된 지점은 지민, 인회, 보라 세 사람의 관계였다. 원망와 복수심으로 엉킨 이들은 점차 서로의 얘기에 귀 기울이며 공감하고 연대한다. 엄마에게 실망하고 남편에게 버림받다시피한 두 여성은 절망이라는 벼랑 끝에서 서로를 붙잡아 주고,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지난 삶의 회한과 사랑의 덧없음을 얘기하는 또 다른 두 여성은 다른 입장임에도 상대를 이해하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위로한다.  



중학교 무렵에 가끔 집에서 알몸으로 쫓겨나곤 했던 인희를가려주었던 포대의 따뜻함이 사랑이라고 각인된 그녀가 자루에 집착하듯 사랑에 집착했다. 그래서 지독한 사랑이라고, 세상에 없을 사랑이라고 여긴 남편의 불륜을 갖은 모욕과 기만을 견뎌가며 10년간 지켜볼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었던 인회. 그러나 그들의 '사랑'을 사랑했던 그녀는 배신 당했다. 남편의 애절한 사랑은 비겁하고 구질구질한 욕정에 지나지 않았다는 배신감.  


지민은 허인회의 분노에서 지독하게 상처받은 마음을 보는데, 그것은 지민이 갖은 상실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자기의 세계를 지키려다 정작 자신이 무너져버린 절망과 파괴. 행복할 때는 사랑이지만, 불행의 그늘이 드리우면 그 사랑은 금새 짐이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그들. 사랑을 호소하면서 불편한 것은 참을 수 없는 그들의 사랑법. 종교와 사랑과 결혼조차 주고받는 계산, 즉 거래로 이루어지는 시대에서 믿음과 헌신은 허상에 불과하다. 자식의 출세로 스스로의 허세를 채우려는 염보라. 진짜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늘 허기를 안고 자신의 삶이 비어 있다고 느끼며 살아온 허인회. 그들은 무척 닮아있다. 





수영장에서 사람들의 복장이 최소화 되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허울을 벗어버리고 민낯을 드러낸다면 저마다 각각의 내면에 감춰진 가장 내밀한 욕구는 무엇일까?  


여기저기 삐걱대며 세월의 흔적과 상처들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노년의 몸뚱아리의 값은 과연 얼마일까. 지민은 그들의 몸에서 세상의 미적 기준을 부숴버린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세월의 상흔을 안고 있는 몸을, 우리는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젊음을 욕망하는 것일테고. 


이 소설에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애정을 갈급하고, 타인의 관심을 양분으로 삼아 제 욕망을 채우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유년시절부터 긍정적인 애착의 경험이 없었던 그들에게 사랑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미지의 동경이었던 것 같다.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없었던, 어쩌면 사랑 또한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착각했던, 그야말로 왜곡된 사랑의 괴물들. 조우경은 괴물이라는 단어도 아깝다만.    


소설은 마치 로드무비를 연상시키듯 끝난다. 한편으로는 여러 명의 '델마'와 '루이스' 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들이 떠난 그 길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게 바다만이 아니기를.


'사랑의 본질은 고통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보게 된다.

너무나 식상하고 소설적이며 허상된 말이라고 비웃는 이들도 있겠지만 사랑이 사라진 날, 종말이 오리라.  




#러브몬스터

#이두온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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