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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쇠네스보헨엔데 Jan 21. 2021

에세이에 대한 에세이

이슬아와 이주윤

며칠 전 친한 동생이

 콤팩트한 판형의 에세이집을

하나 내밀며 말했다.

"언니, 이 작가 글 되게 재미있는데

 꼭 언니 같아요."

이주윤 작가의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였다.


아이가 미술 교습을 받는 사이 차 안에서 읽었는데 '언니 같다'는 동생의 찬사가 황송할 정도로

작가의 글솜씨가 좋았다.

살짝 씁쓰름한 듯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달고 달아

한번 열면 단숨에 먹어버리게 되는

국산 초콜릿 같은 글들이었다.  


한 시간 만에 절반을 읽었다. 딱 절반.

 그리고 덮었다.

 아이가 나올 시간까지 10분 정도 남았는데도

더 읽고 싶지 않아 라디오를 켰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냥 물렸다.

질렸다.


동생이 응원의 메시지까지 적어 선물한 작은 책은 며칠째 책날개가 절반에 꽂힌 채로

집안을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다.

다시 잡히지 않는 책의 하늘색 표지를 응시하며 내가 혹시 쓰게 될 책도 이런 것이라면,

신나게 읽다가 갑자기 확 물려

던져버리게 되는 책이라면,

아예 안 쓰는 게 낫지 않을까,

그저 다른 작가의 글을 옮기는 번역가의 위치에 만족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고민했다.  


그러다 이슬아의 <깨끗한 존경>을 읽었다.

 정가는 만원이 넘었을 테지만

집 근처 반품 샵에 9290원에 꽂혀 있었고

마침 서적은 40% 추가 세일에 들어가

5000원 남짓에 사 오게 된 책이다.

이슬아가 글을 유통하는 방식을 알기에,

이 책을 이렇게 사도 되는 것일까,

죄책감이 들었지만

반품 샵에서마저 팔리지 않으면

폐기 처분될 게 뻔한 것을 알기에

산업의 생태계를 잠시 교란하고

작품을 구출하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선 즉흥적으로 사 온 책이 그러하듯

 이 책 또한 책장에 얌전히 꽂혀있었다.


한참을 꽂아둔 책을

불현듯 집어 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잡은 그 자리에서 엉거주춤하게 앉아

 첫 장인 정혜윤 PD 인터뷰를 홀린 듯이 읽었다. 그리고 아이가 그림 그리다 던져놓은

색연필을 주워 정신없이 밑줄을 쳤다.


"저는 사람들이 슬프고 외로운 날에 기억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나보다 더 슬픈데 그가 엄청난 용기를 내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것이지요."


"고민될 때 이렇게 물어요. 어느 쪽이 변화의 편이야? 어느 쪽이 더 나은 변화의 편이야?"


"자신한테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일 같아요. 인생에 일어난 의미 있는 수많은 일들은 '확장'과 관련 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글은 확장이 있고 시선의 이동이 자유로운 글이에요."


그밖에도, 지옥은 내가 간다, 미치오 그렇게 추워?, 감탄과 절망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일...


그리고 이어진 김한민 인터뷰 초입에서 나는 이주윤과 이슬아의 차이를 깨우쳤다.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

월요일, 나.

화요일, 나.

수요일, 나.

목요일 나...

그야말로 만날 나뿐인 것이다.

비대한 자아가 어느 요일에나 반복되고 있음을 말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

어떤 토요일에 김한민을 만나러 갔다.

월화수목금요일의 이슬아가 지겨웠기 때문이다."


이주윤의 에세이에는

 비대한 자아만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슬아는 그게 지겨워져서

시선의 이동, 나의 확장을 도모했다.


에세이의 부흥기다.

 너도나도 글을 쓰고 책을 낸다.

그러면서 겸연쩍은지 나를 돌아보며

 "너는 왜 안 내? 너도 내!"라고 말한다.

 그 말에 나도 마음이 동한다.

 나의 한 줌 재능과 한 줌 재치와

 한 줌 경험을 얼버무려

한 권 책을 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으랴.


하지만 만날 나만 외치는,

나에 대한 이야기는

나라도 자제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아니라도

내 주변에서 모두들 목놓아

나를 부르짖고 있으니

 나는 나를 좀 묻어둬도 되지 않을까.

그게 억울하다면,

나를 좀 넓히고 옮겨서

이슬아처럼, 정혜윤처럼, 김한민처럼

그렇게 좀 더 나은 변화를 위한

무언가를 도모해보든지.


이주윤은 프롤로그에서

"독자들은 김애란, 임경선, 이슬아에게만 열광했으므로

나는 불우 작가 신세를 면할 길이 없었다"

라고 썼다.

왜 그런지 나는 분명히 알 것 같다.

그도 이제는 알게 되면 좋겠다.

맵시 좋은 글 솜씨를

나 타령에 쓰는 건

내가 받은 저 귀엽고 조그만 책이

마지막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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