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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erun Aug 13. 2022

비누에 붙은 한 가닥 머리카락

욕실에 놓인 비누에 짧은 머리카락 하나가 붙어 있습니다. 분명 이전에 내가 쓰다가 붙은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보기 좋지 않아요. 비누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멀리 시간 여행을 떠나봅니다. 


어린 시절 욕실에 갈 때면 종종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어요. 다름 아닌 비누에 붙어있는 머리카락. 내 것이 아닌 누군가의 머리카락이죠. 항상 범인은 아빠. 직접 본 적은 없어 왜 꼭 아버지가 쓰고 난 뒤엔 비누에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는지 지금도 알 수는 없어요. 그 시절 비누를 쓸 때마다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거슬리더라고요. 왜?라는 의문을 가지며 내 손으로 머리카락을 떼어내는 순간이 싫었어요. 그런데 20대의 어느 늦가을부터 비누는 깨끗해졌어요. 더 이상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떼어낼 일이 없어졌죠.


몇 번의 이사를 거듭하며 아버지라는 이름 아래 존재했던 물건들도 많이 없어졌어요. 아버지는 더 이상 같은 공간과 시간대에 존재하지 않아요. 함께하는 시간이 새로이 쌓이지 않으니, 허전한 날에는 과거의 어느 순간들로 여행하듯 한 번씩 다녀오곤 합니다. 함께 보낸 수많았던 시간들은 오랜 시간 비디오 돌려보기를 거듭한 듯, 아름답고 소중한 이야기들로 차곡차곡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죠. 


병마와 한참 싸우던 중, 딸에게 선물 받은 도라지꽃을 톡톡 터트리며 내 텃밭에도 많다고 농담하시던 그 순간으로. 부엌 한쪽에 선 채로 더덕주 한 잔씩 나누어 마시던 짧지만 강렬했던 술자리로도 가보고요. 눈 쌓인 산자락을 깔깔대며 구르듯 내려오던 추웠던 겨울의 산으로도 가봅니다. 영화 첨밀밀의 주제가를 빙긋이 웃으며 따라 부르던 아버지의 마른 얼굴을 보기도 합니다. 퇴근 후 매일 같이 약수를 배낭 한가득 지고 현관으로 들어설 때 나던 아버지의 땀내도 맡아봅니다. 비누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에도 아름다운 꽃에도 영화 주제가에도 또는 낯선 등산객에도 아버지는 존재합니다. 일상에서 늘 다시 만나곤 하는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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