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gerun Apr 24. 2022

찜닭 먹다가 이상형을 만날 줄이야

있는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이상형의 사전적 의미는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유형'이라고 하네요. 이상형의 특징을 딱히 염두하며 살고 있진 않지만, 굳이 말로 풀어내야 한다면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또 그렇게 보이는 사람' 이랄까요. 살다 보면 가끔 만나게 되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어요. 눈에 보이는 인상 그대로, 덧대어진 층이 없는듯한 사람이요. 그리고 본인 또한 그런 자기 자신을 편하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구나 싶은 경우죠. 그런 사람은 몇 마디만 나눠봐도 참 안정감이 느껴지고 덩달아 마음이 담백해져요. 언어로 옮기기가 쉽지 않네요.


몇 해 전 안동에서 찜닭을 먹을 일이 있었어요. 맛집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중 유독 한 식당에 시선이 가더군요. 말쑥히 정리되어 단정한 느낌이 좋았으나 이미 마감을 한 거처럼 보였어요. 마침 문 열고 나오는 사장님 뒤로 식당 조명이 환희 켜져 있더군요. 손님을 반기는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치는 느낌도 아닌 무심한 듯한 눈빛이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냉큼 따라 들어갔죠. 식당의 첫인상은 친숙했어요. 향우회에서 받은 듯 보이는 거대한 전신 거울이나 짝 안 맞는 방석과 물병 등. 내부는 재래시장에 흔히 있는 식당의 모습인데 유난히 어색한 기분이 들더군요. 왜 그런가 찬찬히 보니 내부의 모든 곳이 반듯이 정리되어 반들거렸어요. 아까 밖에서 봤던 빈틈없는 깔끔함이 내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더라고요. 티브이에 나오는 셰프들이 요식업의 기본은 청결 이랬는데! 프로다! 고수를 만났다 싶었어요. 찜닭에 대한 기대감도 자연스레 상승했죠.


기분 좋게 받아 든 사장님의 찜닭은 역시나 정말 맛이 좋았는데 그 정갈함이 식당에서 받은 느낌과 비슷했어요. 맛이 좋다는 몇 번의 진심 어린 칭찬을 건네니 이제야 슬그머니 대답을 하십니다. '그 맛을 내기 위해 여러 번 과정을 거쳐요.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안 할 텐데.. 시간도 더 걸리거든요. 근데 그게 더 맛있다는 걸 알고 있고, 그렇게 해야 드시는 분에게도 더 좋다 생각하니 그렇게 해요. 맛있게 들어요' 흔들림 없는 편한 눈빛으로 몇 마디 툭 건네고 나가시더군요. 무심히 걸어가시는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들떴어요. 너무 멋지더라고요. 요란스럽지 않은 묵직한 진중함이 좋았어요.


그날로 찜닭집 할머니 사장님은 제 이상형이 되었죠. '그래. 저분처럼 소신을 가지고 자신으로 사는 거야. 자연스럽게.' 마음먹길 여러 번인데 잘 지켜지진 않아요. 그 정도의 내공은 보통의 노력과 인내심으로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겠죠. 혹은 타고난 천성일 수도 있겠고요.


초라하다 느낄  화려하게 포장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 자존심이 상할  괜히 마음과 반대로 행동하기도 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상대방은  알아챌 거예요. 부자연스러운 모습을요. 그냥 모른 척하는 것뿐이죠. '있는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사는 것에 익숙해진다면 스스로도 얼마나 편안할까요. 비교가 필요 없으니 상대방에 대한 비난, 질투, 경쟁 같은 복잡한 마음도 덜 가질 테고요, 스스로에 대한 욕심, 좌절, 실망 등의 감정소비도 덜 하겠죠. 그것들을 다 들어낸 후의 마음은 한결 자유롭고 편할 거예요. 지금  있는 그대로 만족스러우니까요. 그리고 자신에게 솔직해진 만큼 여유롭겠죠. 오늘 하루 어제보다 좀 더 여유로운 내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