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은 어디에 있지
고등학교 시절의 한 수업이 생각납니다. 담임 선생님은 왜인지 반에서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를 적어 내라고 하셨죠. 지금 생각해보면 애초에 질문부터가 문제가 있는 거 같죠? 순진했던 10대 학생들은 본의 아니게 최고와 최악의 친구를 고민 끝에 적어냈죠. 그런데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한 사람만 떠오르더군요. 스스로를 속이지는 못하겠고 결국 한 친구의 이름을 적어 냈어요. 나름 단짝 친구였는데 그 아이가 너무 좋기도 했는데 또 그 감정의 무게만큼 너무 싫기도 했어요. 그 두 개의 감정을 따로 떼어 분리할 수 없더군요. 왜 이런 복잡한 감정이 드는 걸까 심난했죠.
애초에 좋은 점과 싫은 점을 나누어 저울질한 것이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그건 모두 그 친구의 특징이었을 뿐이데, 잘 맞는 부분은 장점으로 잘 맞지 않는 부분은 단점으로 구분했어요. 그러니 아마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친구의 장단점은 또 전혀 다를 수도 있을 거예요. 그 친구와 함께 한 시간은 30년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 장단점을 나눠보라고 한다면 글쎄요.. 30년 전의 장단점은 잊어버렸고요. 이젠 그냥 상대방에게 호불호를 덜 둔다 해야 할까요. 사람인지라 작은 충동들은 어쩔 수 없이 생겨요. 그럴 때는 웬만하면 아 싫다. 가 아니라 아 맞다.로 빠르게 받아들이려 해요. 어차피 이미 알고 있는 특징들이니까 감정소비 없이 얼른 상황을 소화시키고 넘어가는 거죠. 아마 상대방도 그럴 테니 지금까지 함께 하는 거겠죠.
사실 뭐든 나누어 생각하면 편하긴 합니다. 경계가 명확히 나누어진 선 안에서만 생각하는 게 더 단순하고 답도 쉽게 나오니까요.
그런데 구분선의 존재를 애매하게 만드는 점이 있어요. 세상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거죠. 오래전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오랜만에 다시 먹었더니 이게 아닌데 싶을 때도 있고요. 전에는 생각이 맞아 가까워진 지인이 오랜만에 만나니 말이 안 통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경험들은 황당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요. 어라 왜 이전하고 다를까. 음식 맛이 변하고 상대방이 달라졌다 생각하지만, 과연 그러기만 할까요. 그동안 내 입맛이 바뀐걸 수도 있고 또 내 가치관이 변한걸 수도 있죠. 단지 다시 대면할 때까지 내 기억 속 음식과 지인은 변하지 않고, 예전 내가 좋아했던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었을 테니까요.
계속 변화하는 것에 구분선을 올려두기는 어려운데, 변하지 않는다 생각해버리니 쉽게 선을 그어 보는 거 같아요. 좋다 싫다 맞다 아니다로 구분지은 특징들도 심지어 그것들을 나눈 선도 모두 영원할 수 없어요. 심지어 그 사고를 하는 사람 마음은 하루에도 수도 없이 변하죠. 명확히 하는 게 깔끔하고 편하긴 해요. 그런데 가끔은 상황에도 구분의 잣대에도 유연성을 둬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경험하고 사고할 수 있는 반경이 훨씬 넓어질 거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