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릉이가 그려나가는 경로처럼
오랜만에 서울 잠실에 가보았다. 석촌 호숫가 산책도 하고 유명하다는 송리단길도 기웃거렸다. 근처 올림픽 공원에 들렸다가 계획에 없는 따릉이를 타게 되었다. 공원 한 바퀴 돌아보려 했는데 충동적으로 집 근처까지 자전거로 돌아오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늘 타고 다니던 내 자전거에서 벗어나니 처음엔 낯설고 불편했다. 얼마 못가 반납하겠다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길이 들어 편히 타게 되었다. 내 것처럼 편안해진 낡은 따릉이 자전거의 손잡이를 쳐다보니 질문이 꼬리를 물고 들어온다. 몇 년이나 된 자전거인가. 어디까지 가보았을까. 또 이제껏 이동한 거리는 얼마일까. 오늘 도착할 동네는 와본 적이 있을까. 내가 처음 데리고 가는 걸까. 왠지 대견하기도 애처롭기도 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문득 따릉이 가는 길이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여기 불쑥 저기 불쑥 계획된 경로 없이 매일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또 다양한 곳에 머문다. 하루에도 여러 번 바삐 사용되기도 하지만 어느 때는 몇 날 며칠 방치되어 제자리에 머물겠지. 출발지에서 따릉이를 빌릴 때는 그 동네에 수요가 많은지 겨우 찾아 탔지만 도착지의 대여소엔 차고 넘치도록 주차되어 있는 따릉이들을 보니 새삼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싶다. 한 시간이 넘도록 먼 거리에서 데려온 따릉이는 며칠 만에 이곳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게 될까 궁금하다. 함께 시간 좀 보냈다고 정이 붙은 건가 헛웃음이 난다. 이왕이면 앞으로 재밌고 편안한 길을 많이 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번 해본다.
살다 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매일매일이 같으면서도 같은 날이 하나 없다. 어느 때는 너무 낯설고 험난하며, 또 어느 날들은 지겹도록 똑같은 경로를 돌고 돌아야 할 때도 있다. 멀리서 보면 혹은 대충 보면 기계적인 반복 같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같은 출발, 경로, 도착은 없다. 마치 따릉이가 도시 안을 끝도 없이 돌아다니듯이, 그리고 어딘가에 머물러 또 다른 출발을 기다리듯이. 주어진 생 안에서 분명 저 멀리 목적지가 있는 듯 직선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돌아보면 지그재그도 아닌 엉킨 실타래 한 뭉치 같은 지나온 길이 보인다. 들쭉날쭉 사방으로 뻗어있지만 그래도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고 있다. 따릉이 자전거의 경로처럼 말이다.
빌려 타고 멀리 데리고 온 따릉이가 애처롭다 생각했는데 달리 봐야겠다. 참 신나겠구나. 아마도 낡아서 더 이상 이용이 불가해질 때까지 계속 도시의 이곳저곳을 여행하겠지.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보내면서 말이다. 다양한 길을 따라 많은 경험을 하고 새로운 곳에도 들려볼 테지. 도시 안에서 따릉이가 지나가며 만들어놓은 수많은 길처럼 생의 울타리 안에서 다채롭고 재밌는 인생길을 많이 만들어 가길 바라본다. 그리고 이왕이면 매너 좋은 이용객들이 대여해 소중히 다뤄주듯, 마음씨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오래도록 인생의 길을 잘 굴러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