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불에 대처하는 자세
자전거를 타다 보면 자꾸 멈춰 서야 하는 구간이 있다. 내달려 속도를 올리고 싶은데 자꾸만 멈춤 신호가 뜬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멈춤이 뜨면 멈추면 된다. 그리고 다시 달리면 된다.
대략 왕복 17킬로를 달렸다. 자전거 구입 후 가장 많이 오래 탄 것 같다. 목표지점까지 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아파트와 상가가 많아 횡단보도가 끝도 없이 나오는 지역과 막힘없이 달릴 수는 있지만 마의 언덕이 있는 한강 자전거길. 일단 천천히 둘러보며 가기 위해 아파트촌의 대로변으로 가기로 했다. 속도 좀 내려하면 신호등이 바뀌고, 자전거가 앞에서 옆에서 치고 들어와 정신 사납다. 찻길로 달릴 수 없으니 인도에 걷는 행인들도 주의해서 피해 다녀야 한다. 속도는 자꾸 느려지고 브레이크만 잡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길을 잘못 택한 걸까? 그렇지 않다. 돌아오는 길은 한강 자전거길이었는데, 만약 왕복을 모두 그 길로 달렸다면 초주검이 되었을 것 같다. 죽음의 언덕도 있거니와 쉼표가 없다. 의지로 멈추고 싶을 때 멈추면 되긴 하지만 쭉 뻗은 길을 달리다 보면 그냥 계속 속도를 내게 마련이다. 가는 길에 만났던 수많은 횡단보도들이 급격한 체력 저하를 막아준 셈이다. 남겨뒀던 힘을 돌아오는 길에 아낌없이 쓸 수 있었다. 만약 운 좋게도 계속 파란불만 만나 끝없이 달렸다면 얼마 못가 방전돼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럼 아마 돌아오는 길도 과감히 한강길을 선택하지 못했을 것 같다. 덕분에 죽음의 언덕도 죽지 않고 넘었다.
운이 좋아 술술 풀리는 것 같던 삶이 끝도 없이 내리막길을 타고 구르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뭔가 하려 해도 자꾸 막히고 꼬인다. 마치 괴팍한 원숭이가 내 인생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마구 집어던지는 것 같다. 멍하니 앉아있다가 문득 자신이 앉아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늘 서성이거나 어딘가를 향해 뛰어다녔는데 일단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다. 횡단보도의 멈춤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사이 숨도 고르고 뭉쳤던 다리 근육도 한번 만져준다. 다시 신호가 바뀌면 또 페달을 밟으면 된다. 어느 횡단보도의 멈춤 신호를 다시 만날 때까지. 쉬며 가면 오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