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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Oct 03. 2022

화마

화재 사고를 칭할  ‘화마 부른다. 화재를 마귀에 비유해 부른 말이다.화재가 발생   잿더미가  잔해를 보며 ‘화마가 할퀴고  상처등으로 표현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수해, 풍해뿐 아니라 지진  자연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고가 있지만 이를 마귀에 비유하진 않는다. 심지어 교통사고, 산업재해  인간으로부터 발생하는  숱한 사고에도 이렇게 악마적 단어를 부여하진 않는다.


불은 물이나 지진, 바람 등 과는 다르다. 모든 것을 삼키고 그 무엇도 남기지 않는다. 화재가 닥치고 난 뒤 남는 것은 죽음, 그리고 더 이상 쓸모 없어진 그 무엇들 뿐이기에 마귀라 칭했을지 모른다. 악마가, 마귀가 아니라면 이렇게나 모든 것을 빼앗아 가지는 않을 것이란, 고통의 표현이며 처절함의 단어다.      


지난 9월 26일 오전, 국내 모든 언론은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 사고를 연이어 속보로 보도했다. 이번 사고로 7명이 죽고 1명이 크게 다쳤다. 영업을 시작하기 전인 오전 7시 45분, 지하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는 초기 진화에 실패했고, 인명피해로 귀결됐다. 소방 방재 직원의 목숨을 내놓은 사투에도 불구하고, 7명이라는 생명이 세상을 떠났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쇼핑몰은 완공된 지 이제 겨우 2년이 채 되지 않은 곳이란 사실은 더 충격이다. 최첨단을 달리는 현대에도 불은 마귀가 되어 우리를 떠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화재 원인 규명조차 소원하다. 지하주차장에 모아둔 박스에서 발화가 시작됐다거나 지하 전기차 충전시설 때문이라는 등 설만 즐비하다. 부랴부랴 전국의 수많은 마트와 백화점은 박스를 치우느라 분주했다. 그 몫은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은 또 다른 환경미화원 등 이름 모를 누군가였으리라...     

다만 밝혀진 것, 확실한 사실은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이 죽었다는 것 외엔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대에도 여전히 불은, 화마는 그 무엇도 남겨주지 않았다. 죽음과 상처 외엔. 30대의 누군가의 아들, 60대의 가장 등 살아가기 위한 그 누군가의 생명은 하루아침에 날벼락 같이 사라졌다.   

  

그런데 화마가 할퀴고 간 뒤 또 다른 마귀가 찾았다. 돈을 들고 찾아왔다. 아들의 아버지의 몫 숨 값을 흥정하러 양복을 갖춰 입고, 말끔한 모습으로 찾았다. 현대백화점 측은 아직 장례가 진행되고 있는 유가족의 빈소에 찾아 계산서를 내밀었다. 보험가액이 어쩌고, 생명 값이 어쩌고, 생애소득이 어쩌고 하는 말과 함께.


아마 빈소를 찾은 그들은 악의가 없었을 것이다. 회사의 지시 혹은 일을 잘하는 직원일지도 모른다. 회사가 받을 피해를 산정해, 미리 유족과 합의한다면 이후 구설수가 생기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아들을 잃은 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이러지 않았을 터다. 한나아렌트는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논했다. 홀로코스트 대학살을 주도한 이들의 모습은 소위 말하는 악의 모습이 아닌, 우리 옆집에 살고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시민이었다는 것이다. 단지, 이들의 악행은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했다.


사람의 생명이 사라짐을 주판알 몇 번 튕기는 것으로 치환하기엔, 그들의 아픔은 태산같이 크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은, 유가족 외엔 그 누구도 입에 올려선 안된다.

때로는 뜨거운 불길보다, 숨 막히는 연기보다도 사람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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