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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Oct 24. 2021

[소설]강점기(10)

다나카 도이스케.     


의열단을 만들고 실패와 성공을 하며 물밑작업을 했지만, 활동이 주춤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과 물밑접촉을 시도 했다. 언젠가는 군대를 일으키리라는 목적의 한발짝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상해의 한 시내에 다나카 도이스케라는 일본 장성이 신혼여행을 온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나는 황급히 해진을 불렀다.     


“해진아 너에게 할 일이 생긴 듯 하다.”     

“단장님 무엇이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해진이 이곳에 온지 두해가 다될 무렵 해진은 꽤나 성숙한 여인으로 변해있었다. 아이같이 초롱한 눈망울은 여전했지만 말투와 행동은 차분하고 조신해져 있었다. 해진과 나는 자연스러운 부부로 위장 해 다나카의 행적을 면면히 살피고 저녁에 있을 파티에 참석하여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종암과 태견을 함께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로 했다. 때마침 신채호 선생이 숙소로 찾아왔다. 선생은 할말이 있어왔다며, 자리에 앉아 한마디 말을 꺼냈다.     


“자네들이 이번에 상해에서 다나카를 처단하고자 한다 들었네, 그일은 그만 두시게. 지금 상해에서 일을 벌였다가는 일본이 문제가 아니라 국민당의 눈밖에 날 수밖에 없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종암이 말을 자르며, 튀어나왔다.     

“지금 중국도 일본놈들이 눈에 불을켜고 달려드는데 보고 있으란 말입니까? 여기에 있는 우리국민들이 괴롭힘을 당하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치라는 말씀이십니까. 이것 따지고 저것 따지고 뭐가 가능하냔 말입니다.”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않아. 안그래도 아나키즘을 공산당으로 몰아 국민당의 심기가 불편한데 우리가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지원을 받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겠는가?”     

나는 말을 이어받았다. 다음이라는 말에 반기를 들고 일어설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우리가 다음을 기약하면서 어떻게 버텨왔는가 말이다. 자치권을 얻자는 소리, 외교로 독립을 얻자는 얘기들이 모두 다 저런이야기들 아닌가. 이건아니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논리며 있을 수 없는 충고 였다.     


“선생님, 지금 다음이라는 것은 다나카를 처단하는 것이 다음입니다. 무엇이 다음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어떤 다음을 기다리라는 것입니까. 우리가 잠자코 있을 때 우리 동포들이 일본의 군화발에 짓밟혀 신음하는 것이 안보이십니까. 생계를 잃고 만주로 중국으로 떠나온 동포들이 안보이십니까. 현실을 즉식해야 합니다. 저희는 다나카를 처단하겠습니다. 가시는길을 안내하겠습니다.”     


신채호 선생은 단념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까지 정중히 배웅한 뒤 다시한번 인사를 드렸다. 신채호 선생도 알았다는 듯 중절모를 한번 매만지고 돌아섰다. 우리가 갈 길은 확실해 졌다.     


해진을 꾸미자 어엿한 여인의 향기가 느껴졌다. 종암은 운전사로 위장을 하고 따라나섰다. 파티장에 드러서자 외국공관들과 기자, 군인들이 운집해 있었다. 혹여나 누군가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 내 모습이 아닌 해진의 얼굴을 자꾸만 쳐다보게 되었다. 해진은 그러나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태연작약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여유마저 보여주고 있었다.    

 

“내 너를 왜 진작에 참여시키지 않았는지 모르겠구나.”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이렇게 행동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겸손함이 좋구나. 사진으로만 보고 처음볼텐데 저기 들어오는 것이 다나카 도이스케란 자다 계속주시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혹여나 혼자 떨어져 어딜가거나 한다면 나에게 바로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야 한다.”     


다나카 도이스케는 입이 귀에 걸리는 듯 웃고 있었다. 외국인을 신부로 맞이하였는지 그의 옆에는 금발의 여인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연신서로를 눈빛을 주고 받는 모습이 여느 사랑하는 신혼부부와 다름없었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너가 좋고, 호탕해 보였다. 지리한 파티가 두시간여 지속될동안 다나카는 혼자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화장시을 갈때도 서너명의 군인이 따라다녔고, 부인과 파티장을 돌때에도 근거리에 군인들이 떨어질 줄을 몰랐다.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최대한의 빈틈을 찾으려 노력했다. 답답한 마음에 해진을 파티장에 두고 밖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를 한모금 쭈욱 빨아당기자 폐를타고 몸을 한바퀴 순환하는 듯 느껴졌다. 곧이어 찾아오는 머리의 먹먹함은 불편한 마음을 조금을 달래주는 듯 싶었다. 밖을 지켜보고 있을 때 파티장 앞의 강가에는 화려한 유람선 한척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이시간 이 자리에 저런유람선이 왜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다시 담배를 한모금 더 들이켰을 때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파티를 마치고 저 유람선을 탈 계획이구나. 그래 저 유람선에 오르는 순간 저격을 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서둘러 담배를 비벼끄고 해진을 찾았다. 해진에게 계획을 설명하고 지리한 파티를 견뎌냈다.     


아니나 다를까 파티가 마무리될 무렵 다나카는 단상으로 올라가 유람선으로 자리를 옮겨 이 자리를 축하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다나카가 선상에 오르려는 순간 가슴팍에 꽂아두었던 총을 꺼내어 다나카를 향해 발사했다.   

  

탕!탕! 두발의 총성이 울리는 순간 그의앞을 가로막은 것은 금발의 여인이었다. 아차 싶었다. 다나카를 다시 찾았다. 선상에 엎드려 쭈그리고 있었다. 곧이어 주변을 지키고 있던 헌병들이 주위를 감쌌다. 종암은 준비했던 폭탄의 뇌관을 터트려 다나카에게 던졌다. 총격전을 벌이는 사이 헌병들이 다나카를 둘러서 폭탄을 지켜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다나카는 다리에 부상을 입고 벌벌 떨고 있었지만, 해진과 종암이 걱정이 되었다. 다나카는 신속하게 차량으로 옮겨 도망을 치려하고 있었다.  

   

“태견아 얼른 저 차를 쫓아라. 저안에 다나카가 타고 있다.”     


지나가던 행인의 자전거를 빼앗아 타고는 골목길을 통해서 차량을 앞질러 달려가 폭탄을 다시한번 던졌지만 찰나의 순간으로 차량문을 맞고 바닥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다나카를 태운 차량은 꽁무니에 불을 붙이고는 유유히 현장을 벗어났다. 해진은 미리 준비한 옷을 갈아입고 비밀아지트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와 종암은 주변을 벗어나 골목에서 조우했다. 종암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뒤집어 입었다. 종암은 두겹의 옷을 입고 있었고, 주변상인과 비슷한 복장으로 변장을 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근처 과일가게로 태연하게 들어갔다. 나는 태견을 따라간 헌병을 따돌리고 비밀아지트로 향했다. 비밀 아지트는 칡흑같은 어둠속에서 인기척하나 들리지 않았다. 해진은 어둠속에서 두려움에 벌벌떨고있었다. 그도그럴것이 사람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을 폭탄이 터지면서 시체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을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기에 그러한 불안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되었다. 아무말 하지 않고 내가 옆에 있다는 것만을 알려주었다. 해진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아무말 없이 나를 와락안았다. 질척한 땀 냄새와 총탄의 화약냄새가 온몸에 진동하는 사이. 여인의 젖냄새가 내 코를 감싸안았다. 여인의 품에 안겨있는 모습은 어머니의 품과는 사뭇 달랐다. 지난시간 어머니의 품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던 나에게 어머니가 아닌 여인의 품은 기묘하게 다가왔다. 항상 무거운 책임감에, 삶과 죽음의 갈림길의 고뇌에 그리고 죽어가는 동료를 바라보는 극한의 고통속에서 살아왔는데 그 모든 아픔들이 따뜻한 솜이불처럼 나를 덮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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