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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Oct 24. 2021

[소설]강점기(9)

나는 가슴속으로 뜨거운 눈물을 연거푸 흘렸다. 무어라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가슴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노모를 만나러간 봉근은 다음날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혹여나 하는 걱정을 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봉근은 노모 때문에 마음이 걸렸음을 순순히 털어놓았다. 하지만 나라를 위한 큰 뜻이 먼저기에 이렇게 나왔다고 했다. 봉근은 부산경찰서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동행할 수 있는 것은 여기 까지였다.     


쾅! 하는 굉음이 귓가를 때렸다. 아 터졌구나. 몽둥이가 내 심장을 무두질을 해대듯 세차게 때리고 있었다. 한봉근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시모도는 확실히 처단했는가. 봉근을 구출해야 하는 것인가. 아 나는 이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대지를 찢을듯한 굉음은 내 머릿속을 헤집고 내 본능을 꺼내고 있었다. 모두들 앞에서 항상근엄하고, 책임져야할 무거운 어깨를 짊어지고 그 옛날 야소처럼 걸어가야 했지만, 나는 한낫 하찮은 인간에 불과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윤세주에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고 오라 일렀다.     


“단장님 하시모도가 오른쪽 다리에 중상을 입고 지금 병원으로 이송중이라고 합니다.”     

“봉근은, 한봉근은 어찌되었단 말인가.”     

“봉근도 다리에 부상을 입고 지금 헌병대에게 끌려가고 있습니다.”     


모두 예상했던 일이다. 이렇게 될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성공한다 할지라도 봉근이 살아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온전히 몸을 빠져나와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만약 그리 기대했다면 사진은 찍지 않았을터. 하지만 공허했다. 폭발소리에 묻혀 지나갔던 내 본성이 공허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는 왜 나를 숨기며 나의 사라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부산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여 대구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을 언도 받았다. 봉근은 하시모도를 처단하는 과정에서 자신 또한 다리에 부상을 입고 있던 터였다. 기본적인 치료도 받지 못한 봉근은 폐병까지 얻어서 자신의 짧은 생을 더 빠르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사형을 집행하기 전 단식을 하였다. 왜놈의 손에서 욕보이기는 치욕이라 했다. 썩어가는 살의 고통과 쓰러져가는 몸의 괴로움은 그의 정신을 잠식하더니 이네 그의 숨마저 거두어 갔다. 사형집행이 있기 전에 그는 저세상으로 떠났다. 하시모도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을 함께 거두어간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봉근에게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다만 조국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나는 봉근이 건네 편지 한통을 받았다.    

      

그거 아시오? 나는 지금 행복하다는 것을. 단장이 가슴속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을 거란 것을 알고 있소. 겉으로 보여주는 당신의 말투와 행동에는 따뜻함이 서려있고, 조국을 사랑하는 만큼 의열단원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소. 그래서 난 내 신념을 그대에게 모두 맡길 수 있었소. 냉혈한이라면 조국의 독립을 원하는 뜨거운 마음따윈 없지 않겠소. 내가 죽음을 앞두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참을수 없는 고통이 다가오자 생각이 나는 것은 고향땅에 두고온 노모 뿐이라오. 나 한가지 부탁이 있소. 내 노모를 찾아 뜨거운 손을 맞잡고, 나는 행복했노라. 그리고 뜨거웠노라 말해주시오. 내 죽음이 헛되지 않음은 조국 독립이겠지만, 그 헛되지 않음을 알아줄 사람은 최소한 나를 낳아준 부모가 아닌가 생각해오.     

김대지 단장. 일제를 향해 폭탄을 던지시오. 그리고 반드시 군대를 일으켜 주시오. 내 하늘에서 그대가 일으킨 독립군을 지켜보고 있겠소이다. 내 몸뚱이는 같이하지 못하더라도. 이 한봉근의 정신만큼은 함께할 것을 보장하겠소.     


편지의 내용은 짧았다. 두 가지의 부탁이 그의 죽음을 대신해 주었다.     

나는 부하들을 물리치고 혼자 동구 범일동으로 향했다. 낮은 담장 너머로 허리가 반쯤이나 굽어있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순백색의 옷차림, 곱게빗어 올린 쪽진머리. 그 누가 보더라도 한봉근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사립문을 슬머시 열며 들어갔다. 연륜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나를 보자마자 어떤 거리낌없이 마루에 걸터앉게 했다. 나는 아무말 없이 사진을 건냈고, 노모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봉근은 행복했습니다. 다만 노모를 생각함에 쉽게 눈을 감지 못했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뜨겁다는 말을 빼 놓았고, 노모를 걱정하는 마음을 덧 붙였다. 내가아는 봉근이라면, 표현할 줄 모르는 봉근의 마음이라면 이러했을 것이라 헤아렸기 때문이다. 주름진 얼굴에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노모를 잡고 있는 내손으로 떨어지는 순간 식지 못한 눈물이 한방울 두방을 떨어졌다. 말을 잇지 않았다. 나도 노모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 노모가 감당하지 못할 슬픔을 내가 감당해야했을 슬픔을 우리는 봉근이라는 투사를 통해 공유하고 있었던 셈이다. 고개를 숙이고 사립문을 다시 나오다 고개를 돌렸다. 손에는 사진을 꼬옥 쥐고 가는 나를 끝까지 처다 보고 있었다. 큰절을 하고 사립문을 나왔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가슴속에서만 가추어져 있던 뜨거운 눈물이 이제는 밖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 눈물이 레테의 강처럼 나의 기억을 지워주면 좋으련만...     


상해로 돌아가기 전 윤제주와 이성우는 국내에 남기고 다음거사를 준비케 일렀다. 숙소로 돌아와 의열단원에게 상황을 알리고 짧은 묵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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