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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변유변 Jul 25. 2023

새로운 환경이 주는 설렘과 두려움

- C후배에게.


그때 나는 설렘과 비슷한 크기 만큼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좋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는지는 잘 몰랐다. 학교 다닐적에는 배우고 싶지 않더라도 가르쳐 주었고, 이곳에서는 배우고 싶은 생각 뿐인데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메일을 열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이메일로 일하거나 영어로 일한 적이 없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이크로소프트 아웃룩에 친숙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전체답장과 참조의 차이, 서두와 맺음을 세련되게 하는 법 따위를 고민하던 몇달이었다. 좋은 문구를 발견하면 따로 저장해 두었다가 슬며시 꺼내 사용했다. 모르는 단어길래 찾아보니 문맥의 의미를 절묘하게 표현해 주는 것들도 적어두었다. 그런 문구와 단어를 사용하는 동료들이 우러러 보였다. 영어에서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묘미를 찾아가며 글쓰기의 어려움을 다시금 체감했다. 


미팅을 자주 했다. 회의가 별건가. 논의할 안건을 정하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뒤 해결점을 좁혀나가고 앞으로의 실행 플랜을 구체화하는 것이 회의이다. 가령, 다가올 오퍼레이션을 어떻게 수행해 나갈 것인지 킥 오프 회의를 한다면 구체적인 일정을 정하고 그 기한마다 수행해야 할 임무들을 나열하고 각 임무들은 다시 미래의 회의 안건이 되겠다.


이렇게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 막상 회의장에 들어서면 왜 그리 어려운지. 늘 지나고 보면 터널 밖은 밝고 환한 세상인데 그 안에 있는 동안에는 저 너머가 잘 보이질 않는다. 회의가 있다고 할때 나는 세 가지 공포에 질렸다. 첫째, 잘 알아듣지 못할 까봐 두려움. 둘째, 잘 말하지 못할까봐 두려움. 셋째, 앞의 두 가지로 인해 다른 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두려움. 미팅 인비테이션이 울릴 때마다 이런 두려움들이 나를 감싸고 돌았고, 나는 겉으로는 자신감으로 포장한 채 매일같이 이런 내적 갈등과 싸워댔다. 


두려움과 용기는 단짝이다. 두려움 너머엔 용기가 있다. 베트남 전쟁 종군기자 등으로 활약했던 이탈리아 작가 오리아나 팔라치는, 용감함에 대하여 이렇게 선언한다. "용기있다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두려워도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Oriana Fallaci,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 오리아나 팔라치, 나 자신과의 인터뷰")


잘 알아듣지 못하고, 잘 말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 다른 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하는 것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계속 듣고 말하고 쓰다보면 어제보단 오늘이, 오늘보다 그 다음 주에는 좀 더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설렘과 두려움 속에 출근하며 슬며시 용기를 내어 보았다.  


- 2019년 2월. 탕린. 18 Napier Rd, Singapore.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거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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