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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imoriho Mar 28. 2023

니스의 해변

#1 우리는 함께 있었으니까.








벌써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친구 M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 오는 날 수영하는 게 로망이었다며 나를 부추겼다. 그래! 우리 셋은 내리는 비에 모든 걸 씻어 내리고는 새로이 태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소년, 소녀들처럼 흥분감에 휩싸였다. 당당한 발걸음을 하고서 바닷가로 향하는 우리의 손에는 읽지 못할 책과 타월과 맥주, 초콜릿과 과일이 들려 있었다.


​​​


"지금 바다 가는 사람들은 우리 밖에 없는 것 같아."​​



금방이라도 비가 퍼부어질 듯 여기저기 구멍 난 하늘 아래에서 바다 쪽으로 향하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한순간에 우중충해진 날씨에 반대쪽에서는 수영을 급히 마치고 나온 듯 물에 흠뻑 젖은 사람들(대부분이 여행객들), 비를 피하려 이리저리 뛰는 사람들, 그저 신난 어린아이들과 우산을 펴고 여유롭게 걸어 다니는 노인들로 난장판이 되었다. 우리는 반대편과의 싸움에서 일종의 승리를 거둔 듯 웃음만 지었다. 그러면서도 바람에 야자수가 흔들리고 추운 기운이 조금씩 느껴지고 있었으니 나는 속으로 재밌을까?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니스의 해변가에 다다른 순간 사라졌다. 나는 바다에 목말라 있었고, 니스에 도착하면 곧장 바다에 뛰어들어야겠다는 상상으로 파리 한복판 6층 집의 답답함과 진득거리던 더위를 이겨냈다. 게다가 그 진득거림은 한국에서부터 생성된 것이었으니 내가 이곳에 이르는 것을 얼마나 바라왔고, 많은 상상을 해왔는지는 누구도 헤아릴 수 없던 것이었다.






"근데... 나 수영을 잘 못해!"


"나도 마찬가지야!"


"그냥 가자. 너무 깊이만 가지 않으면 되잖아?"




​​​


"너무 깊이만 가지 마!"


​​​




하나. 둘. 셋





우리 셋은 마치 십 년 만에 고향을 찾아온 사람처럼 지친 도시로부터의 해방감을 느끼며 옷과 신발을 벗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우리의 고향은 이제는 오염된 갈색 바다라는 것이 다른 점이었지만 어쩌면 이곳이 바로 우리의 고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편안했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바닷가의 돌과 자갈들을 밟아 아려오는 발바닥의 고통은 기꺼이 무시하게 된다. 출렁거리는 물살에 몸을 던지면 아픔도 그만이었다. 바다는 그만큼 따뜻했고, 언제든 포근하게 우리를 안아 주었다. 회색 구름이 빠른 속도로 하늘을 칠하고 비는 전보다 더 거세게 내리는 와중에도 내가 헤엄치던 바다 위로는 아직 하얀 하늘이, 햇살이 마지막까지 내리쬐고 있어 신기하고도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 때쯤 옆을 돌아보면 어린아이들처럼 신난 친구들의 얼굴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런 웃음이란 내게 미래를 암시해 주는 행운의 계시와도 같이 여겨졌다.

​​​


니스. 흔히 작열하는 태양 아래 수영을 하고 나면 나중에 떠오르는 것은 푸르고 둥근 'CASTEL' 글자뿐이라고 자신하는 여느 여행객들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우리는 만들어 낸다. 바람에 휘날려 날아가려는 파라솔을 붙잡는다. 단단한 돌무덤 사이에 기둥을 힘겹게 꽂고서 비바람에 버텨낼 자리를 만들어 낸다. 그러고는 비가 쏟아지든 말든 자유로이 헤엄친다. 헤엄친다. 잠수한다. 우리는 행동에 옮기는 것을 중요시했고, 그런 행동 중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아무것도 없었다.


​​​


시간이 지날수록 남아 있던 사람들마저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한 번은 기쁨, 한 번은 아쉬움의 유영 끝에 우리는 파라솔 아래로 돌아와 초콜릿과 복숭아를 먹었다. 몸의 물기가 바람에 휘날리기 시작하자 금방 오싹한 한기가 느껴졌다. 이제 돌아가자. 우리는 홀딱 젖은 머리와 몸을 대충 닦고서 셔츠를 몸에 두르고 해변을 떠났다. 약속한 듯이 일렬로 걸어갔다. 별다른 말도 하지 않았다. 슬리퍼가 끌리는 소리만 들렸다. 트램이 지나가면 멈춰 있던 사람들은 철도를 지나 바다 반대편 쪽으로 향했고, 하얀색 카페 안에서는 물기라곤 없는 정돈된 사람들이 우리를 흥미로운 듯 구경했고, 비에 흠뻑 젖은 사람들의 발걸음은 그들에게 무덤덤했다. 강렬한 에너지에 기운을 빼앗긴 나는 몸에서 나는 짠 냄새를 맡으며 따뜻한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운 나를 상상했다. 그렇게 터벅터벅 걸었다. 그러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느새 또 비가 멈춰 있었고, 금방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고, 마주친 떠돌이 개가 우리를 앞장서서 걷는 것마저 에스코트하는 것처럼 다정해 보였다. 떠돌이 개는 거리를 킁킁거리며 다시 무심하게 지나쳤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올려다보면 거기, 커다랗고도 단단한 원목으로 이루어진 대문과 레몬색 집이 우리를 따스히 반기고 있었다.


​​​​


우리는 다가오는 모든 것에 두려움이 없었고 당돌했으며 동시에 너그러웠다. 바다에서 서로를 안고 웃고 장난을 치고 태양의 반짝거림이 어깨와 등 뒤로 비치는 걸 보며 아름답다는 찬사를 노래하던 우리.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얻은 젊은이들의 웃음은 얼마나 강력한 생명의 힘을 내뿜는지 쏟아지는 비는 우리를 조금도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반가움의 형태로 취급되었다. 나는 비 오는 날을 가장 좋아했으니까. 친구는 비의 낭만을 품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함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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