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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리 Mar 15. 2022

글쓰기에 대한 고찰

20220315 - 일기(1)

하루에 30분씩 글을 쓰기로 했다.


글을 쓰는 것은 언제나 두렵다. 새하얀 페이지 위에 첫 문장을 써 내려가는 것은 나를 숨 막히게 한다. 세상 속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세상은 새하얀 페이지와는 다르게 칠흑같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는다. 더듬더듬 키보드 위에 손을 얹고 자음과 모음을 겨우 만질 뿐이다.


글이 어느 정도 써져있다 하더라도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도 있다. 생각이 충분히 펼쳐지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내가 쓴 글이 맘에 들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고등학생 때 백영옥 작가의 <스타일>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소설 속 주인공은 글이 써지지 않는 페이지 위 화면 속 커서를 '창녀의 윙크처럼 깜빡인다'라고 표현했다. 10년도 훨씬 더 된 지금도 내게 공감이 가는 구절인데,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글로 옮기거나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 어영부영한 글을 쓸 때마다 그 문장이 생각난다. 그럴 때마다 실제로 내 노트북 화면 위에는 값싼 매력으로 독자를 유혹하려는 창녀의 윙크가 깜빡인다.


글이 맛깔나게 써질 때면 내가 글을 쓰지 않더라도 글이 스스로 써진다. 살아있는 글이 중심을 자라내고 멈출 새 없이 페이지 끝까지 도달한다. 그런 글은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읽어도 숨을 쉰다. 그렇게 꿈틀거리는 글을 더 자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하루에 30분씩 글 쓰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어떤 유형의 글을 쓸지는 정하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정하는 순간 다시 글을 쓰기 전으로 돌아가 아무것도 못 쓸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쓰고 있어, 어떡하지, 특별한 생각이 안 나, 라는 생각이 들면 이 프로젝트는 실패로 돌아간다. 에이 뭐 한 줄이라도 아무거나 써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진짜 아무 글이라도 매일 쓰는 것, 글을 쓴다는 행위를 전혀 버겁게 느끼지 않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지향점이다.


모든 것에 욕심이 많은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너무 많다. 테니스, 수영, 필라테스, 헬스, 발레 같은 운동을 하고 싶다. 도예, 유리공예, 미술, 영상제작, 사진, 타투를 배우고 싶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는 돈이 든다. 취미를 찾는 것도,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모두 돈이 든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은, 내 머리와 손과 노트북만 있으면 되는 글을 쓰기로 했다. 그저 쓰기만 하면 된다. 어렵지만 제일 쉬운 일이다. 그저 쓰기만 하는 일.


글은 쓰는 것보다 쓰고 난 후 교정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오늘 고친 글은 내일 다시 보아도 고칠 부분 투성이고, 그건 그다음 날도, 다음 주도, 심지어 다음 달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난 아직 초보 글쓴이이므로(작가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쓸 수가 없다), 한 동안은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기로 했다. 헬스장에서 고중량 고반복을 하는 게 아니라 집 거실 매트 위에서 가벼운 홈트로 일단 체력을 다지는 것이 우선이다.


글을 시작하는 것은 끔찍하게 힘들지만 끝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어렵다. 너무 느끼하지도, 그렇다고 형편없지도 않은 마지막 문장을 쓴다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다.


이미 열두 시가 넘었으니 오늘의 일기는 3월 15일 화요일의 글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14일의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15일은 아침에 일어난 내게 그제야 찾아올 것이다. 지금 이 글도 14일의 내가 쓴 글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글을 쓰는 날들이 계속될 것이다. 미처 떠나보내지 못한 어제와 이렇게 작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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