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아리 Mar 25. 2022

20220325 - 에세이(2) 

나에게는 가장 ~한 것을 골라놓는 습관이 있다. 가장 예쁜 것, 가장 좋은 것, 가장 싫은 것, 가장 갖고 싶은 것 등등. 어릴 때는 친구들에게 의미 없는 선택지를 던지는 것도 즐겼다. 너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언제야?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짜장면이 좋아, 짬뽕이 좋아? 나는 이런 질문들을 친구들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묻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중 언젠가 해, 달, 별, 구름 중에 무엇이 가장 좋은지 스스로 물었던 적도 있었을 것이고, 아마 달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달을 가장 좋아한다. 굳이 해, 별, 구름과 비교하지 않아도 달 그 자체가 좋다. 


달은 언제 떠 있건, 어떤 모양이건 간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런 달은 심지어 모양이 매번 바뀌는데, 그럴 때마다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보름달은 경이롭다. 밝고 동그란 달이 까만 밤하늘 가운데 떠있을 때면 신성한 기운마저 든다. 생각에 빠지게 하고, 기억을 더듬어보게 한다. 보름달을 보고 사람들이 소원을 빌거나 누군가를 떠올리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보름달은 망(望)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망은 한자로 바란다는 뜻이다. 그 이름처럼 보름달에는 수천 년의 소망들이 담겨있을 것이다. 또, 보름달 표면에 움푹 파인 자국이 마치 토끼가 달에서 절구를 찧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관련된 동화도 여럿 만들어져 있지만 사실 그건 잘 모르겠다.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그래도 안 보여서 게슴츠레 떠 보아도 토끼와 절구는 보이지 않는다. 


반달은 귀엽다. 실제로 반달을 보면 달이 기울고 있거나 차고 있어서 완전한 반구가 아니라 중심이 약간 튀어나와있어 구의 입체감이 느껴진다. 그러면 보름달에서는 느끼지 못한 달의 통통함이 눈으로 만져진다. 또, 반달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보름달은 영원하지 않고 기울기도 하고 차기도 하는 존재라는 것을 반달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반달은 상현달이나 하현달 둘 중 하나를 일컫는 말인데, 활시위(弦)가 위로 간 모양을 상현(上弦), 아래로 간 모양을 하현(下弦)이라고 한다. (이것도 사실 달이 서쪽하늘에 있을 때 맞는 설명인데, 그냥 쉽게 밝은 부분이 오른쪽이면 상현달, 왼쪽이면 하현달로 보면 된다.) 반달이 그리는 곡선을 활을 당기는 모습에 빗대어 이름을 붙였다니. 기발하고 낭만적이면서 고전적인 기분이 든다. 


그믐달은 서늘하고 슬프다. 그믐달이 더 기울어 손톱 달이 되었을 때를 나는 가장 좋아한다. 달의 동그란 모습을 따라 얇게 빛나는 그믐달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려진 나머지 달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보이는데, 그 시꺼먼 구체(球體)가 보이는 순간 찬 공기를 들이마신 듯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러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그믐달을 쳐다보면 숨고 싶지만 미쳐 다 숨지 못한 달의 서러움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면 그믐달이 점점 더 기울어 손톱 달이 되고 삭(朔)이 되어 사라지는 순간을 왠지 꼭 지켜봐야 할 것만 같다. 삭(朔)은 초하루라는 뜻이고 음력 1일, 시작이라는 말도 된다. 그 이름처럼 달은 뒤로 돌아 사라지고 그제야 비로소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달은 다시 초승달이 되고, 반달이 되고, 보름달이 되고, 또 사라지길 반복한다. 수많은 세월을 지내온 달에게 고단함 속의 의연함과 반복 속에서의 겸허함을 배운다. 



모든 모양의 달 중 나는 손톱 달을 가장 좋아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침 달도 좋아한다. 아침 달은 쓸쓸하다. 어둠이 사라진 하늘 한편에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어렴풋이 떠 있는 아침 달을 보면 마음이 저리다. 아침 달은 사실 자신이 밤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항상 거기 있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키지만, 은은하게 빛나던 밤이 지나면 차가운 돌덩어리 같은 조연의 모습으로 그 존재를 겨우 알릴 뿐이다. 움푹 파인 달의 자국도 그때는 더 이상 신비롭지 않고 아파 보인다.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달과 함께 새벽을 보낸 사람은 그런 아침 달을 보고 더욱 쓸쓸해지고 또 그로 인해 위로받는다. 지난밤 혼자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달'이라는 단어는 발음도 사랑스럽다. '달'이라고 말하다 보면 혓바닥이 입천장에 닿고 또 그 사이 입 안에 동그란 공간이 생기면서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그러다 보면 달의 모양이 마음속에 떠오르고 그 느낌이 나를 사로잡는다. 달이 가진 따뜻하면서도 차갑고, 풍요로우면서도 서글픈 감정이 되살아난다. 


달을 마주 보고 앉은 지 오래되었다. 달을 이렇게 좋아하면서도 당연히 항상 같은 자리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한동안 눈길을 주지 않았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오늘 밤에는 잠들기 전에 잠시 창문 앞에 앉아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장실의 규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