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아리 Aug 02. 2020

시간이 지나고 드는 생각들

이 얘기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

너와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든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간다. 한 사람의 세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들 세상에는 단 1그램의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도 큰 변화는 없다. 너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어쩌면 지나버린 그 날들이 정말 있었던 날들인지 의심스럽다.


나는 괜찮다. 금방 괜찮아졌다. 가끔 눈동자인지 눈시울인지가 뜨거워지긴 하지만 괜찮다. 눈시울을 붉혔다,라고 할 때 눈시울이 눈 주변의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잘 알게 되었지만 괜찮다. 너와 내가 나눴던 대화의 문장들, 그때의 옷차림, 너의 표정, 주변 공기까지 세세한 기억들이 문득 나에게 들이닥치곤 하지만 괜찮다. 그럴 때마다 네게 너무 화가 나 미칠 것 같고 대체 왜 그랬느냐고 소리 질러 묻고 싶고 그다음엔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느냐고 어깨를 잡고 흔들고 싶지만 괜찮다. 너와 내가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가 멈추지 않고 허공을 맴돌지만 괜찮다. 이런 내 마음이 너에 대한 분노인지 그리움인지 찝찝함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냥 다 집어치우는 거지 뭘 생각하느냐고 자책해도 나는 괜찮다. 그 가끔이 꽤 자주가 되어도 괜찮다. 난 정말 괜찮다. 반어법도 역설법도 아니고 글자 그대로 괜찮다. 생각보다 나는 굉장히 괜찮다. 그냥 가끔 그럴 뿐 아주 잘 산다.


너는 네가 꿈꾸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미친 듯이 달리는 사람이었다. 너 자신이나 주변 사람보다 그게 가장 중요했고 또 그걸 즐겼다. 힘들어도 앞으로 얻을 값진 미래를 보며 놀라울 정도로 열성적인 태도를 보였다. 너는 미래에 사는 사람이다.

나는 한 때 착하고 모나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다양한 일들을 겪고 난 후 멈추어 정체되었다.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었다, 아니, 놓았다. 그리고 그 편히 훨씬 행복했다. 하지만 이따금씩 내가 맡은 일들을 잘 해내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던 순간들을 반추했다. 나는 과거에 사는 사람이었다.

너는 정말로 사랑했던 그 여자를 내게 말해준 적은 없으나 네가 버리지 않은 그 여자의 흔적들에서 찾은 그녀에게 했던 말들은 네 안에 이토록 많은 사랑이 있었다는 걸 알게 해 줬다. 그 상대가 내가 아닐 뿐이었다. 너의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달래준 그 사람을 너는 지울 수 없었다. 너는 미래에 살고 있지만 과거를 꿈꾸는 사람이다.

나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예전 그 사람에게 사랑을 배웠고 배신을 경험했다. 그 상처로 다시 누군가에게 내 최선의 진심을 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를 알고 나서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또 그에게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 다음은 없다고, 앞으로 내가 걷고 싶은 길에 너를 올려놓았다. 나는 과거에 살고 있지만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다.


나는 너와 내가 닮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너와 나는 서로 다른 시간에 살면서 또 다른 시간으로 향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그 차원의 다름을 넘어서지 못했고, 그건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헤어짐은 헤어짐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그냥 넘어가자고 스스로 되뇌어놓고 나는 또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며 이유를 찾는다. 역시 새벽이 문제다.


2020년 8월 2일 오전 1시 37분 본가 서재에서 씀.


추천 음악: Good luck from her - CIFIKA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 있고 싶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