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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리 Sep 09. 2021

하고 싶은 것들

조급하지 말자는 마음이 나를 조급하게 하네

다음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이다.


운전면허 따기

프랑스어 배우기 

필라테스, 개인 PT 다니기

핸드 포크 타투 배우기

도자기 공예, 가구 DIY, 가죽공예, 재봉, 금속공예, 유리공예를 배우고 공방 꾸준히 다니기

필름 카메라 들고 출사 다니기

소설 써서 신춘문예 제출하기

서핑 배우기

롱보드 트릭 배우기

카페나 바에서 일하기

Procreate로 일러스트 배우기

펀치 니들로 러그 만들기

바다가 있는 곳으로 여행 가기

파이썬 배우기

프리미어 사용법 익히기

주식, 부동산 등 금융 투자하기

은발로 탈색하기

우리 집 냥이들로 스티커, 티셔츠 등 굿즈 제작하기

등등.


다음은 내가 실제로 하고 있는 것들의 목록이다.


회사 출근, 퇴근 반복하기

멍 때리면서 누워있기

공원 산책하기

공유 자전거로 동네 한 바퀴 돌기

맥주 마시면서 야식 먹기

운동은 내일 하기로 마음먹기

OCN에서 해주는 영화보기

유튜브 저장 목록에 저장된 영상 한꺼번에 시청하기

인스타그램으로 친구들, 유명인사 구경하기

블라인드에 재밌는 글 있는지 구경하기

잠자는 우리 집 냥이들 괴롭히기

등등.


다음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지금 못하는 이유들이다. 


운전면허 따기 -->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할 돈이 없다.

프랑스어 배우기 --> 회사에서 일하다가 여유로운 시간에 조금씩 하려고 했으나 요즘 여유로운 시간이 없다.

필라테스, 개인 PT 다니기 --> 집에 오면 너무 피곤하고, 개인 PT 등록할 돈이 없다.

핸드 포크 타투 배우기 --> 지금 이사 온 지역에 타투이스트가 없다.

도자기 공예, 가구 DIY, 가죽공예, 재봉, 금속공예, 유리공예를 배우고 공방 꾸준히 다니기 --> 취미를 배울 여유자금이 없다.

필름 카메라 들고 출사 다니기 --> 출사를 갈만한 좋은 장소를 찾아갈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부족하다.

소설 써서 신춘문예 제출하기 --> 쉬는 시간에 틈틈이 쓰려고 했으나 쉬기에 바쁘다.

서핑 배우기 --> 바다를 갈 시간적 여유가 없고 서핑 강습비가 조금 부담스럽다.

롱보드 트릭 배우기 --> 이사 올 때 롱보드를 안 가지고 왔고 트릭을 가르쳐 줄 사람, 수업이 이곳에 없다.

카페나 바에서 일하기 --> 지금 있는 회사가 투잡을 금지한다.

Procreate로 일러스트 배우기 --> 쉬는 시간에 배우려고 했으나 은근히 시작하기 두렵고 그냥 쉬고 싶다.

펀치 니들로 러그 만들기 --> 필요한 용품을 구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가짓수가 많고 빔프로젝트가 필요한데 없다.

바다가 있는 곳으로 여행 가기 -->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여름이 다 지나버렸다.

파이썬 배우기 --> 쉬는 시간에 머리를 써서 무언가 배운다는 게 거부감이 든다.

프리미어 사용법 익히기 --> 마찬가지. 쉬는 시간에 무언가를 배운다는 게 쉽지 않다.

주식, 부동산 등 금융 투자하기 --> 투자할 종잣돈이 없다.

은발로 탈색하기 --> 회사에서 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우리 집 냥이들로 스티커, 티셔츠 등 굿즈 제작하기 --> 내가 원하는 견적, 스타일의 제작 사이트를 아직 못 찾았다.


나이를 먹고 자리를 잡으면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재정적, 심적 여유가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고 자동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재정적, 심적 여유 그 어느 것도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나이를 먹을수록 하나씩 포기하게 되는 건가 싶어서 문득 두려워진다. 


SNS를 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내가 그런 사람들을 팔로우했기 때문일 것이다. 센스 넘치는 가구 인테리어, 소품 배치, 옷 스타일링을 보면 당장이라도 무언가 만들고 싶고 사고 싶어 진다. 아름다운 구도와 색감의 사진을 보면 서랍에 있는 필름 카메라를 꺼내 어디론가 나가고 싶다. 땀 흘리고 운동한 후 탄탄한 몸을 찍은 사진을 보면 게으른 나 자신을 질책한다. 주식 투자 관련 글을 보면 나 빼고 다 돈 버는 것 같아서 불안해진다. 


학교를 다닐 때는 하고 싶은 일들을 모아 일단 보이지 않는 미래에 넣어둘 수 있었다. 일단 시험을 봐야 하니까, 논문을 써야 하니까, 졸업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인턴을 할 때는 일단 새 일에 적응하고 배워야 하니까, 취준 할 때는 일단 자소서를 써야 하니까, 필기시험을 준비해야 하니까, 면접을 봐야 하니까, 합격해야 하니까 하고 싶은 것들은 미뤄뒀다. 나중에 언제라도 하면 되니까. 지금 나는 학교니 시험이니 취직이니 하는 장애물들을 이제 다 넘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넣어뒀던 하고 싶은 일 보따리를 풀어서 하나씩 하려고 하니 선뜻 시작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실제로 시작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 마음가짐 때문일까? 내가 변했기 때문일까?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배우고 싶었던 과거의 나와 최소한의 에너지로 겨우 하루를 연명하는 내가 공존한다. 그 둘 사이에서 내 마음만 조급해진다. 이럴 생각 할 시간에 뭐라도 할걸. 그래, 조급해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 더 조급해진다. 그러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 하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잠이 오지 않으면 유튜브나 SNS에 들어가고, 그럼 또 무한반복.


에라 모르겠다. 일단 오늘은 어쩔 수 없지. 


2021년 9월 9일 오후 4시 48분 사무실 내 책상 앞에서 씀.

추천 음악: Hello, Anxiety - Phum Viphu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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