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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이 Dec 22. 2023

남편을 위한 한 그릇 저녁(8)

-가지덮밥-

무슨 일이든 10년을 하면 어느 정도 전문가가 된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그리고 나의 주부 경험으로도 그건 맞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게 어설펐던 주부 1년 차는 어리바리 낯설다.

집안일을 안 해 본 것도 아닌데 시댁에 가거나

혹은 낯선 이를 집으로 초대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된다. 무언가를 할라치면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음식 맛도 그때그때 다르다.

하지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아이를 키우는 것도, 요리를 하는 것도 적당한 에너지를 쏟으면

제법 내가 원하는 맛을 낼 수 있다.


외식메뉴로 무얼 먹을까 고민하던 어느 날

요즘 유행하는 솥밥집이 떠올랐다.

솥에 올려진 밥인데 그 위에 부가적인 재료가 올라가 있다. 고기나 생선 같은..

솥밥이라 밥맛을 한 층 더 배가 시켜 그런지

특별할 것 없는 거 같은데 밥맛이 좋다.

그중 남편은 가지덮밥을 좋아했다.

어릴 적에는 가지는 흐물흐물하고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 이상한 야채였는데 지금은 가지의 그런 맛이 좋다고 한다. 양념과 어우러진 담백함이 주는 매력을 알게 되는 나이다.

나도 따라서 같이 가지솥밥을 먹었는데

엄청 특별한 뭔가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문득 가지솥밥 아니 가지밥을 집에서도 해보고

싶었다. 솥은 없으니  솥밥을 만들 수는 없고

그냥 가지덮밥도 괜찮지 싶었다.

영양을 위해 야채를 썰어 쌀과 함께 볶고

가지는 살짝 구워봤다. 그리고 양념장을 더했다.

짜잔 하고 기대했던 밥은 밥물 양조절에 실패해

죽처럼 돼버렸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더니

10년 주부의 내공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버린 것 같았다.


나는 가족들에게 살짝 거짓말을 했다.

아~엄마가 이거 원래 죽처럼 만들려고 한 거야~~

너 그 유명한 그 덮죽알지?

엄마가 그거 따라한 거야~~

일명 가지덮죽이라고 들어봤어?

주말저녁 나는 아주 유창한 거짓말로 나의 실수를 무마시켰다.


밥을 먹던 딸은 나에게

"엄마! 이거 되게 맛있는데!

죽이라 먹기도 좋고 맛도 좋아~~

사 먹는 거보다 나은데~~"


엄마가 주부경력이 10년이 넘었잖아~~

뭐든 10년 하면 다 잘할 수 있어^^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심장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가지덮죽이 되어버린 가지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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