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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이 Dec 09. 2024

엄마! 나 이제 김장 잘해요^^

매년 이맘때쯤이면 김장을 할까 말까 망설인다.

안 하자니 겨울 내내 맛없는 김치를 먹을 테고

혼자 하자니 허리디스크가 고질병인 나는

후유증이 걱정되기도 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난 엄마가 김장하는 데 가서 좀 돕고 가져와~~ 돕는 거보다 먹고만 오지..ㅎㅎ"

그 아무렇지 않은 일상들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문득문득 소리 없이 가슴 아프다.

나이가 들어서도 엄마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 한 구석에  같이 있는

엄마가 오늘은 문득 더 그립다.




추워지기 시작한 그날도  엄마는 기존에 해왔던 일을 기억했었는지 나를 데리고 시장에 갔다.

김장을 해야겠다고..

배추 30 포기를 주문하고 이것저것 다른 야채들도

배달이 됐었던 것 같다.

욕조에 한가득 배추를 절인 나는 그 배추가 얼마나

절여져야 김장을 하는지도 몰랐던 철부지 20대였다.

그리고 엄마는 악성 뇌종양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고, 세 번의 항암치료를 받고 있던 상태였다. 


김장을 한다는 엄마를 말려보기도 했지만

무작정 시장을 가서 배추 주문을 하는  엄마를 보고

나는 엄마가 그래도 김장을 하실 수 있나 보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엄마의 몸상태도

김장의 노동력도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도 아무것도 짐작하지 못했다.


다음날 다 절여지지도 않은 배추를 여러 번 씻어 놓고 나자 무를 썰어야 했다.

엄마는 배추를 씻는 나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마음은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몸은 전혀 움직이지 못한 채로 허공을 바라보고 계시다가 결국은 누워 계실 수밖에 없었다.

(그 막연한 눈빛이, 어쩌지 못해 포기할 수밖에 없는 눈빛을 위로해주지 못했던 것 같아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아! 저 배추를 다 어떡할 것인가?

나는 젊은 혈기로 눈으로 봐왔던 엄마의 김장을 떠올리며 무를 썰기도 하고 강판에 갈기도 하며

무작정 김장을 시작했다.

파 마늘은 얼마나 넣었는지, 젓갈은 들어갔는지도

모를 김장이 시작된 것이다.

대충 고춧가루에 버무려진 김장 속을 만들어 놓으니  나의 체력은 이미 바닥을 쳤던 것  같다.


중간중간 한숨이 베어진 김장 속을 넣으며

넣어도 넣어도 줄지 않을 것 같은 배추를 보며

아침부터 시작된 김장일이 저녁까지 이어지자

뒷머리에선 쥐가 나기 시작하고

몸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아

나도 마룻바닥에 누워버렸다.

마음은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을 정도로

서러웠다.

아픈 엄마도

널브러진 배추도 다 원망스러웠다.


한참을 누워있다 나는 다시 오기가 설인 배추 속을 넣고 새벽녘까지 김장을 마무리했던 것 같다.

그때 그 김치는 다 먹었는지

맛이 어땠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 그때의 김장은

내 삶의 심이었던 엄마의 갑작스러운 투병의 아픔과

삶의 끈을 부여잡고 김장을 하고 싶어 했던 엄마와

김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공허한 눈빛과

그런 엄마를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나의 20

오기가 버무려진 김장이었다.




그때의 내 나이만큼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엄마의 나이와 비슷해진 나는

나의 어린 마음의 설움도

엄마의 막연하고 공허했던 눈빛도

다 끌어안고 보듬어  줄  있는데..

그 시절의 어린 나와

그 시절의 엄마는 이미 아픈 기억 속으로만 남아있다.


하지만 그때의 그 김장의 시간 속에는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엄마의 강인한 의지와

엄마의 의지를 돕고 싶었던

철부지 어린 나의 오기가

몸속의 피가 되어 흐르고 있다.

그래서 조금은 위로가 되고

조금은 덜 외롭다.


김장을 끝낸 오늘

나는 내 마음속에 머물고 있는 엄마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엄마! 나 이제 혼자서도 김장 잘해~~

그리고 엄마 닮아 김치 엄청 잘 담근다.

내 김치 꼭 먹으러 와~~^^"








엄마에게 전해주고픈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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