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등임용고시를 치뤘던 때는 2004년이다. 거의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러니 구체적인 내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내 공부방법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기억을 더듬어본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아마 2004년이 시작되는 1월에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시험이 12월 초에 치뤄지므로, 나는 약 10개월정도 공부하고 합격한 셈이다. 합격률이 그리 높지 않은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10개월정도의 짧은 공부기간으로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험이 나랑 잘 맞는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술형 시험에 유리한 사람이다. 대학 1학년 때 과학교육과에 다니는 사촌언니와 우연히 같은 교육학 수업을 들었다. 그때 언니는 2학년이었고 나는 1학년이어서 그랬는지, 그냥 언니 과 친구들은 성실하고 우리 과 친구들은 노는 걸 좋아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언니 과 사람들은 아주 성실하게 수업을 들었고 우리 과 친구들은 거의 농띠를 부렸다. 그런데 시험결과는 정반대로 우리 과 친구들이 상의권이었고 언니 과가 하위권으로 형성되었다. 언니는 내 시험 성적을 듣고는 교수님께 배신감을 느껴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우리 과는 글짓기에 뛰어난 데 비해, 과학교육과 사람들은 핵심내용만 적고 글짓기를 안 했던 것이다.
중등임용시험은 서술형 시험이다. 일단 글짓기가 중요하다. 하지만 내 전공과목인 국어는 모두가 글짓기가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과목이다. 그러니 글짓기만으로는 안 된다. 아니 심사하는 분들은 이미 핵심없는 글짓기에 질려있을 수도 있다. 국어과 시험에서는 글짓기 보다 "핵심"을 적어내는 게 관건 같았다.
나는 준비기간이 짧았으므로, 다양한 책을 보는 것을 포기했다. 당시 내가 선택한 학원강사의 교재를 중심으로 하되, 그 한 권만으로는 편협한 내용이 될 수 있으므로 참고할 만한 책 두 세권을 더 보는 것으로 정했다. (그 당시 주위 친구들은 보통 열 권이 넘는 책을 다양하게 봤던 것 같다) 중점으로 보는 한 권의 책에, 참고하는 다른 책의 내용을 덧붙여 적어서, 결국에는 딱 한 권만 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딱 그 한 권만 외우듯이 봤다. 그래서 나는 국어과의 방대한 양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내 머리속에 완전히 기억했다. 핵심내용만이다. 그 핵심내용만 기억한 뒤, 나머지는 나의 특기인 글짓기가 보충해주리라 믿었다.
실제로 시험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알 수 없다. 문학만 해도 고대부터 현대까지 너무나 많았고, 그 외 문법과 국어지식까지 국어과는 범위가 정말 방대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내용들을 다 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핵심만 봐야한다. 내가 시험볼 때 현진건의 유명하지 않은 초기 작품이 문제로 나왔는데, 아마 그 작품을 공부했던 사람은 무척 적을 것이다. 현진건의 유명한 작품이 얼마나 많은데, 왜하필 유명하지 않은 초기작이 시험에 나왔을까. 하지만 나는 어차피 핵심만 기억했다. 현진건 초기작들의 핵심적인 특징. 초기작의 핵심 특징이 그 작품에도 드러났을 거라 믿었고, 또 출제위원이 그 한 작품에 대한 지식보다는 현진건 작품세계 전반 속에서 그 작품에 대해 물을거라 생각하고, 마치 그 작품을 읽은 양 글짓기를 했다.
요약하면, 국어과 임용시험에서 모든 작품을 다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핵심이다. 핵심은 머리속에 완전히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 문학의 경우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대별 특징, 작가별 특징 등의 가장 기본 핵심.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글짓기를 잘 하면 되었다.
나는 엉덩이를 오래 붙이는 일은 잘해서 기본 하루 12시간 넘게 공부했던 것 같은데(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잠자기 전 30분이었다. 침대에 누워 반드시 했던 일이 있다. 잠자기 전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뒤, 머리속으로 오늘 하루 공부한 내용을 한 페이지에 요약하고 잠들었다. 여기서도 역시 핵심을 잘 기억해두려고 한 것 같다. 무조건 한 페이지 정도로, 내 눈에 그려질 듯이, 오늘 공부한 내용을 요약하고 잠을 잤다. (그러면 꿈에서도 막 그 내용들이 떠다니는 듯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내가 머리속으로 요약한 내용을 종이 위에 다시 써봤다. 생각날듯 말듯한 내용은 다시 책을 펴서 보충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요약에 요약을 거듭했다.
한때 유행했던 <시크릿>류의 책들을 보면 간절히 원하는 바가 있다면 눈에 그려질 듯 생생하게 묘사하고 머릿속으로 그려보라고 한다. 나는 그 책을 읽기 전이었지만, 공부에 있어 그 방법을 썼던 것 같다. 한 페이지로 내 공부의 내용을 눈에 보일 듯 그려보는 것이었다. 오늘 밤에도 자기 전에 이 일을 해야 했으므로, 오늘 공부하는 내내 한 페이지로 요약할 핵심적인 내용을 염두하면서, 또 그걸 꼭 기억해내겠다고 다짐하면서 공부했다. 암튼 나중에 내가 <시크릿>을 읽고, 나는 나의 이 공부방법이 생각나서 신기했다.
국어과는 정말 봐야할 내용이 방대했다. 국어지식, 문법, 문학. 그 분야별로 다양한, 유명한, 꼭 봐야할 책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학원강사가 만든 책 한 권을 중심으로, 다른 몇 권의 책을 참고하여, 내가 볼 책은 딱 한 권으로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그 한 권의 책을 머릿속에 완전히 집어넣으려고 했는데, 그 양만으로도 방대했기에 또 나만의 방식으로 핵심내용을 중심으로 요약에 요약을 거듭했던 것이다.
그래서 시험날 나는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내 머리 속에 방대한 범위의 핵심들이 정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의 경우 특별히 자신있는 파트가 있었을 것이고, 또 미처 공부하지 못한 파트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특별히 자신있는 파트는 없었지만, 어떤 부분이 나와도 다 어느정도는 적어낼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시험 시간이 정말로 부족했다. 어떤 한 문제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다 적어낼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 현진건의 유명하지 않은 초기작품에 대한 문제에도 나는 꽤 길게 답을 적어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준비한 시간에 비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에 합격했다. 그때 나의 합격소식이 너무나 의아했는지, 내가 국가유공자 가산점으로 합격했다는 헛소문까지 돌았다. 내가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험이 나랑 궁합이 잘 맞는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본 글짓기가 되는 사람이었는데, 거기다가 방대한 내용의 핵심은 머릿속에 다 저장이 되어 있었으니, 어떤 문제가 나와도 두렵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방법을 알면, 중등국어임용시험을 치루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 (벌써 다 아는 내용인가?)
하지만 나는 수능은 망한 케이스이다. 오지선다의 정확한 답을 도출해내는 능력이 내게는 부족하다. 특히 나는 물리에서는 머리가 하애지는 것 같다. 물리는 몇 번을 다시 돌아가도 잘할 수 없을 것이다. 운전면허 시험도 그리 높은 성적이 아니었던 것 같다(참고로 내 친구는 100점을 맞았다). 아마 공무원 시험을 봤더라도 좋은 성적을 못 거두었을지도 모른다(공무원 오지선다 맞나?). 본인에게 잘 맞는 시험 스타일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런 면에서 운이 좋았다. 혹시 매번 시험에 실패하는 중이라면 그 시험 스타일이 본인과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