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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Jun 27. 2022

파리(paris)에 대한 내 생각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와 책 <시크:하다> 리뷰

결혼하기 1년 전쯤 40여일의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런던을 시작으로 뮌헨,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스위스 인터라켄을 거쳐, 파리를 마지막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모든 도시들이 거의 비슷하게 다 좋았는데, 그 중 스위스가 가장 좋았다. 스위스에 있던 내내 나는 정말 행복했다. 그런데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 계속 "파리로 다시 가고 싶어"라고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그저 파리가 마지막 도시여서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본 영화와 읽은 책을 통해, 파리가 마지막 도시여서 그리웠던 것이 아니라, "파리"였기 때문에 그리웠던 거란 걸 깨닫게 되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라는 영화는 곧 시작할 글쓰기 수업의 과제여서 보게 되었다. 케이트 윈슬렛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부부간의 갈등을 다룬 영화였다.


배우를 꿈꾸던 케이트와 비교적 자유로운 노동자였던 디카프리오는 첫눈에 반해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고, 겉보기에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 무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간직한 두 사람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꿈과 욕망을 숨긴 채 성실하게만 살아가는 일상에서 따분함을 느꼈다. 그 따분함을 더 많이 느낀 쪽은 아내인 케이트였고, 그래서 케이트는 겉은 안정적이지만 내면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녹스에서의 삶에서 벗어나, 파리로 떠나자고 남편 디카프리오에게 말한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디카프리오도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으므로 승낙한다. 파리행을 결정하고 난 후 두 사람의 얼굴에는, 특히 케이트의 얼굴에는 생기가 차올랐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디카프리오가 승진 제안을 받게 되면서 디카프리오는 파리행을 고민하게 되는데, 설상가상으로 케이트는 셋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디카프리오는 구실이 생겼으니 잘 됐다하며 파리행을 무산코자 했고, 파리에서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며 소리치던 케이트는 디카프리오의 모성애 공격에 무릎을 꿇으며 그들의 파리행은 결국 무산되었다. 그리고 그후 케이트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듯한 공허한 눈동자를 보다.


디카프리오의 모성애 공격은 "당신은 아이를 벌을 받는 듯 여겼어.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 있어?"라는 류의 대사였는데, 케이트는 저 말을 듣고 "그런 적 없다"고 눈동자를 심하게 흔들면서 대답했는데, 아마 실제로 아이를 벌처럼 여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여자에게는 때론 아이가 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된다는 모성애의 강요로, 엄마들은 그런 마음이 들면 심하게 자책을 한다. 하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쩌란 말인가. 영화의 배경이 1955년이기에 지금보다 더욱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케이트는 모성애 공격을 당한 것이다. 디카프리오는 셋째 양육에 도움을 주지도 않을 거면서(돈 제외) 뭘 그리 당당하게 모성애 공격으로 셋째를 꼭 낳아야 한다는지.......  


아무튼 케이트는 꿈꾸던 파리행은 무산되고 형벌과 같은 셋째를 낳기로 하고 결심하며, 마음이 내키지는 않지만 성실하게 일상을 영위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마음이 멀어진 것까지 숨길 순 없었고, 디카프리오는 그런 아내가 서운해서 둘은 부부싸움을 하게 되고, 그 와중에 디카프리오는 돌이킬 수 없는 말을 하게 된다. "나도 그 아이를 지우길 바랬어" 홧김에 한 말이라고 금방 사과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다.


케이트는 밤새 심하게 고민하고, 다음날 아무일도 없었던 듯 디카프리오에게 따듯한 아침식사를 차려준 뒤, 혼자서 낙태기구를 사용하여 뱃속 아이를 보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내 예상과 달리 충격적이고 슬퍼서 여기까지만 쓰겠다.   


디카프리오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셋 키우려면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파리에서 모든 걸 새로 시작하면서 아이 셋을 키운다는 것은 무모하고 비현실적이다. 디카프리오 자신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니, 케이트도 조금더 참아주길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케이트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바닥 끝까지 에너지가 소진되어서 더이상 스스로는 힘을 낼 수 없었기에, '살고 싶어' 파리에 가고자 했을 것이다.



2020년 내 아이들이 5세와 3세, 코로나가 시작되어 석달쯤 집안에서만 지낸 어느날, 부부싸움 중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 집도, 아이들도 다 당신에게 줄테니 이혼해줘"

"다 주고 이혼하면 당신은 뭐하려고?"

"난 파리로 갈거야. 거기에서 나는 혼자 살거야"


에너지가 소진되어 내 안 구석구석의 에너지들을 박박 긁어내어가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나는, 혼자 파리에 가면 그 에너지들이 그저 채워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1955년의 케이트는 혼자서 파리에 갈 생각은 못했나데, 2020년도의 나는 혼자서라도 파리에 가야 살 것 같았다. 하지만 1955년의 케이트도, 2020년의 나도, 엄마이기 때문에 남편의 작은 회유에 못이기는 척 일상에 눌러앉는다.


남편에게 영화 이야기를 하니까, "우리랑 똑같네"라고 말한다. 자기도 디카프리오처럼 아내가 좀 참아주길 바랬다고 한다. 나는 참을 수 있는 한계에 대해 말했다. 지금도 육아가 힘들지만 지금은 참을만하다. 하지만 그때의 육아는  '혼자서' 참고 감당할만한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시크:하다>라는 책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 내가 왜 그동안 파리로 '도피'고 싶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파리라는 도시의 특색을 알려주는 책이다.


조승연 작가가 말하는 파리는 타인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그러므로 타인의 시선을 신경쓸 필요가 적은 곳, 그렇기에 좀 막(?!) 자유롭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은 곳이다. 아무데서나 키스를 해도 상관없는 곳, 과시를 위해 물건을 사지 않는 곳, 지나칠 정도로 서로에게 무관심한 곳. 그래서 나는 이혼을 하고 빈털터리로도 파리에 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나보다.



또 파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있는 곳이다. 건축물의 내외부, 음식, 패션 등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다못해 집착한다싶은 곳.


나는 친정엄마에게 "여시짓 좀 그만하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여시짓이라는 것은 내 옷과 소품들을 착장해보는거다. 그렇게 거울 앞에서 한참을 보냈다. 지금도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쇼핑을 하고, 예쁜 걸 입어보고 걸쳐보는 걸 정말로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는데, 내일 입을 옷을 정해놓고 잠든다든가, 어릴 적 꿈이 디자이너, 코디네이터, 또는 화가였던 걸 보면, 나는 원래부터 그런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기를 바랬던 부모님의 기대에 충족하고 싶었기에 그것은 취미가 되었고, 그 취미가 엄마에게는 그저 "여시짓"으로 폄하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그 폄하에 길들여져, 그 여시짓을 하면서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하지만, 내가 파리에 간다면, 그것은 여시짓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아니 오히려 미적감각이 높아서 존중받는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게 떠올라 구름처럼 떠다니듯 좋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40대지만 앞으로도 그 여시짓을 계속해도 될 것 같았다.


취향의 산업. 어떤 사람의 취향이 세련되고 고급스럽다고 인정하고, 어떤 사람의 취향이 거칠고 촌스럽다고 하는지 결정하는 능력이 프랑스의 가장 큰 경제적 파워인 것이다. 세련된 취향, 안목, 구분하는 눈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국가보다 우정보다 충성보다 위에 있는 절대적 가치

 -책에서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대통령의 패션센스를 정치력만큼 논한다고 하니, 패션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파리가 내 취향인 나라이다.



마지막으로 파리가 끌렸던 이유는, 파리 사람들은 현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산다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개인의 소소한 행복을 중시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떤 목표를 이루는 것으로 내 인생의 성패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먹고 놀면서 느끼는 즐거움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프랑스인은 진짜 성공한 인생이란 성공하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이고, 진짜 행복한 인생은 행복이란 것을 믿지 않고 주어진 순간에 충실한 인생일 수 있다.

-책에서


"인생은 즐거워서 사는 것이지 이유가 있어서 사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그래, 즐겁게 살고 싶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옭아매고 살고 있던 20년 당시의 나는 당장 즐겁고 싶어서 파리로 떠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숨이 막힐 듯 행복했던 스위스도 아니고, 인간이 만들어낸 찬란한 문화유산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이탈리아도 아니고, 정돈된 단정하고 젠틀한 매력의 런던이나 뮌헨도 아니었다. 여행객을 배려하지 않는 꼿꼿함과 지저분하기로 유명한 지하철, 파리시내의 비싸지만 좋지 않은 시설의 숙소들에 불평불만을 쏟아냈던, 하지만 늘 다시 가고 싶다고 거기로 도피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파리의 매력을 나는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

"남자는 그 남자의 러브스토리의 합이지. 남자란 사랑의 기승전결을 여러번 겪으면서 차차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한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롭고 멋진 이야기였는지가 중요하지, 새드엔딩이 있다고 해서 나쁜 소설은 아니다.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해보면서 사람이 되는 거지"


결혼을 한 나는 저 문장에서 러브스토리를 경험과 도전으로 바꾸어 읽어봤다.

"사람은 그 사람의 경험의 합이지. 사람은 여러 경험을 하면서 차차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한다. 그 경험과 도전들이 얼마나 흥미로웠는지가 중요하지, 결과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해피엔딩과 새드엔딩도 다양하게 경험하면서 사람이 되는거지"



그리고 당장 파리로 떠날 수 없는 나는, 한국에서도 파리에서 사는 것처럼 살아보기로 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만연한 나라라는 게 마음에 들기에, 나부터 타인에 대한 관심을 꺼볼테다. 나나 잘하며,내 것만 생각하면서 살자.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나의 취미이다. 그 취미를 하면서 죄책감과 불편함을 느끼지 말고 당당하게 하자. 마지막으로 좀 막 살자. 인생 뭐 있나. 오늘의 즐거움을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미래를 위해 참고만 살지 말며, 오늘을 어떻게 즐겁게 살지를 고민하면서, 좀 막(?!)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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