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의 Safety Drill화
승객을 태우고 다니는 커머셜 항공사의 객실 승무원이라면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교육 과정 중에 Safety Drill(안전 반복 훈련)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기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긴급 상황에 따른 대처를 훈련하는 것인데, 이론 교육과 더불어 실제 기내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만에 하나 있을 긴급 상황에서도 승무원이 당황하지 않고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게끔 도와주는 반복 시뮬레이션 훈련이다.
코로나 시대의 출산, 그것도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홀로 12시간 진통과 분만이라는 "긴급 상황"을 겪어야 했던 나의 선택은 바로 출산의 Saftey Drill화였다.
객실 승무원 트레이닝 센터에는 실제 비행기 내부를 구현한 시뮬레이터가 있는데 이는 기내 화재 발생, 기압 이상, 불시착 등의 다양한 Emergency(긴급 상황)를 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한 항공사에 따라 해상 불시착 대비 상황을 데모로 교육하기 위해 수중 서바이벌 지식과, 안전 보트 작동 방법 등을 수중에서 교육하기도 한다. 이러한 훈련의 궁극적인 목표는 승객과 승무원 자신의 안전 확보이며 훈련의 끝에는 이론 시험과 실기 시험이 있다. 이 중 실기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9~12주 동안 배우고 몸에 익힌 대로 침착함을 유지한 채 신속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해야 한다. 혹여 랜덤으로 주어지는 상황을 잘못 판단하여 부적절하게 대처했을 시에는 실기 안전 교육을 끝까지 이수하지 못하고 승무원이 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훈련 중 몇 번이고 비상문을 열면 터지는 슬라이드를 타고 지상 1.8미터 높이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만큼 한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엄격한 교육이다.
전직 승무원이었던 내가 출산 전조 증상인 이슬 비침을 기점으로 진통과 분만에 걸친 전 출산 과정을 하나의 세이프티 드릴처럼 해 냈다고 하면 승무원 동기들은 박장대소를 한다. 남편의 부재 속에 임신 막달을 친정에서 보내며 어쩌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라는 출산을 앞두고 자연스럽게 스텝 바이 스텝 출산 임박 행동 지침을 머릿속에 반복해서 시각화했던 것이다.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즈음 내 얼굴에 깃든 미묘한 긴장과 비장함이란 마치 전장을 나가는 장수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임신 38주가 되면 아기가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들 하기에 출산 예정일 3주 전부터 출산 가방을 90% 정도 미리 싸 뒀었고, 혹여 고통에 몸부림치느라 이성적인 사고가 어려울 때를 대비하여 내 방 거울에 노트를 떡 하니 붙여뒀었다.
새벽 출생 시 지하 2층 주차장에 주차 후 3층 입원실로 직행
휴대폰 충전기, 헤어드라이어, 랩탑 캐리어에 넣기
병원 도착해서 남편한테 연락
드디어 출산 당일. 임신 40주 1일. 예정일이 하루 지난 시점에서 이제는 오히려 아기가 빨리 방을 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곧 매를 맞기는 맞아야 하는데 도대체 언제 맞을지 몰라 불안한 상태가 계속되는 느낌이랄까.
실은 며칠 전부터 자정 즈음 생리통과 비슷한 가진통이 몇 시간 지속되다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이슬도 비쳤던 터라 출산 당일 새벽 3시에 비슷한 통증이 시작됐을 때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아랫배가 묵직하게 전체적으로 아프던 게 점점 통증에 주기가 생기는 거 같더니 그 간격이 짧아지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심상치 않아지는 강도에 의심의 여지없이 진진통이라는 생각이 들어 진통 어플을 켰다. 통증은 1분여간 지속됐는데 그 주기가 10분에서 8분, 다시 6분으로 줄었고 이때까지도 최대한 집에 있다가 병원에 가야 덜 고생한다는 출산 선배님들의 얘기가 떠올라 다른 방에서 주무시고 계시던 부모님을 깨우지 않고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다.
이러다 집에서 애 낳는 거 아니야?
이 정도 통증이면 자궁 경부는 한 6센티 열렸으려나?
아냐 죽을 듯이 아파서 병원 가도 고작 1~2센티 열려있는 경우가 많댔어. 병원 가서 진통하는 게 더 고생 이랬으니 집에서 참을 만큼 참아보자.
(*자연분만 시 자궁경부가 8센티 이상 열려야 분만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당장 부모님을 깨울까 말까 하는 내적 갈등은 3시간여 지속됐고 6시 정각까지만 참아보기로 스스로와 합의를 봤다. 그리고 마침내 시곗바늘이 오전 6시를 가리키자 내 안의 세이프티 드릴 실행 버튼이 '틱' 하고 켜졌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모든 순서는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렸고 이제 나는 거의 자신만만한 상태였다. 나올 테면 어디 한번 나와 봐 엄마는 준비됐어.
양수가 터졌는가-> No. 그렇다면 샤워 가능.
통증을 더 참을 수 있는가-> Yes. 구급차를 불러야 할 정도는 아니나 지금쯤 부모님께 알리자.
먼저 방을 조용히 빠져나와 마음을 가다듬으며 따뜻한 물에 샤워를 마쳤고 머리를 말리고 미리 준비해 둔 옷을 입고 미처 출산 가방에 넣지 못한 짐을 마저 쌌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치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마친 후에 주무시고 계시던 부모님을 깨웠다.
엄마 나 병원 가야 할 거 같아.
반쯤 뜬눈으로 내 상태를 빠르게 스캔하신 엄마는 재차 확인을 했다.
지금 가야겠어? 막 하늘이 노래지고 오메 나 죽겠네 해서 가도 자궁 경부가 얼마 안 열려 있어서 다시 돌려보내. 지금 가야 되는 거 확실해? 더는 참을 수 없겠어?
응 곧 가야 될 거 같아. 어제 먹다 남은 육전 좀 데워줘요. 먹고 가서 힘주게.
그렇게 친정 부모님도 놀랄 정도의 침착함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7시 좀 전에 병원에 도착해서 입원 수속을 밟은 후 임산부의 3대 굴욕이라는 내진, 관장, 제모를 빛의 속도로 마치고는 개인 분만실에 누워있게 됐다. 흔히들 엄마가 되면 무서울게 없어진다는데 출산도 출산이지만 이 3대 굴욕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내가 아니라 의료진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는 많은 임산부들 중에 한 명이다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나를 한번 더 내려놓았다.
앞으로 몇 시간을 보내게 될 개인 분만실에는 임산부 외 직계 가족 한 명이 보호자로 함께 입실이 가능한데 옆에 남편이 없으니 친정 엄마에게 부탁할까 하다가 엄마와 상의 끝에 결국 혼자 전장에 나서기로 했다.
엄마가 옆에 있어도 별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진통이 얼마나 길어질지도 모르고 보고 있는 것도 힘들고...
그리고 엄마 때는 다들 혼자 낳았어~ 아빠들이 옆에 와 있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니까.
옆에 누가 있다고 한들 어차피 애는 오롯이 나 혼자 낳는 것이기에 조금 두렵기는 해도 기꺼이 그렇게 하기로 하고 부모님을 집으로 돌려보냈는데... 아뿔싸! 보호자가 없으면 무통주사 맞을 때 간호사 호출이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내가 입원했던 병원 분만실에는 의료진 호출 버튼이 없었고 이러한 나의 사정을 알게 된 간호사는 언제든 내가 부르면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분만실 문을 살짝 열어두고 나갔다.
아직 본격적으로 진통이 시작되기 전. 아까 남겨둔 문자를 안 읽은걸 보니 해외에 있는 남편은 아직 꿈나라인 듯했다. 손등에는 링거를, 척추에는 무통주사관을 꽂고 나 홀로 덩그러니 침대에 누워 분만실 천장을 바라보는데 세상에 그렇게 고독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 아니 이 광활하고 공허한 우주에 목적지 잃은 내 육신이 쓸쓸히 부유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이 현실인지 망상인지 구분이 안되면서 흡사 유체이탈이라도 한 마냥 내 영혼이 분만실 침대에 누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이제 어느 누구도 내가 앞으로 맞이하게 될 고통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았다.
태평아 잘할 수 있어. 지금 아빠가 멀리 있어서 엄마랑 너랑 둘이서 해내야 해.
그 사이 간호사가 두어 번 체크를 하러 왔고 연이은 내진에 따른 양수 파열 그리고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산고가 시작됐다. 먼저 애를 낳아 본 출산 선배들에게 도대체 어떤 느낌이냐고 최대한 비슷하게 묘사해 달라고 했더니 누구는 X꼬로 수박이 나오는 느낌이라고 했고 또 누구는 허리가 부러지는 고통이라고도 했다. 자녀 셋을 둔 꽤나 신뢰 가는 출산 선배인 친정 엄마에 의하면 하늘이 노오오래지고 별도 막 보이고 오메 이제 나는 죽었다 하면 애가 나온다고. 제각기 다른 경험담에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는데 내가 직접 겪어보니 그 고통도 산모의 체형과 체질 그리고 컨디션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그야말로 자궁이 아래로 쏟아지듯 밑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자궁 수축 지표가 99를 찍으면 통증이 최고치에 달했는데 그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절로 흐느낄 수밖에 없는 극심한 생리통의 느낌이었고 몸이 불판 위의 오징어처럼 베베 꼬이는 상태가 되자 나는 무통주사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 기요~ 저기요~~ 간호사 언니~ 저 지금 주사 맞아야 할 거 같아요오오오..
가뜩이나 혼자 있어 더 넓은 분만실을 공허하게 울리는 내 목소리는 살짝 열린 문틈을 넘지 못해 간호사에게 닿지 않았고 나는 다시 한번 목소리를 쥐어짜서 간호사를 불렀다. 내가 지금 의지 할 수 있는 단 한 명.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간호사에게서 순간 후광이 보이며 마치 지옥불에 떨어진 나를 구하러 온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무통주사 마취제가 내 척추에 꽂힌 바늘을 타고 싸하게 혈관을 돌았다. 그리고 나도 맛보았다. 그 무통 천국이라는 것을. 병원에서만 장장 9시간의 진통을 하는 동안 두 번의 무통주사를 맞으며 체력을 비축했고 그렇게 서서히 분만 시간에 가까워졌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