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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iana Apr 24. 2024

KLM 네덜란드 항공 채용 소식에 배가 아프다

'외항사 승무원 커리어의 꽃'이라 불리는 회사가 있다!

2010년, KLM의 전례 없는 신입 대거 채용 시기 취뽀 성공한 병아리 승무원 시절




22년 당시 돌쟁이 육아하며 썼던 글을 이제야 발행합니다. 현재 해당 항공사의 채용 공고가 떴네요. 4월 27일 18:00시까지 서류 지원 마감이라고 합니다. 외항사 기내 승무원 취업에 관심 있는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





KLM 네덜란드 항공. 외항사(외국계 항공사)의 전현직이거나 조금이라도 외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외항사 승무원 커리어의 꽃이라고 불리는 회사가 2018년 이후 최근 다시 채용 공고를 냈다. (22년 3월 14일 자로 2차 합격자 발표가 난 것으로 알고 있다.)


예전에 KLM에 근무할 때 친해져서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현직 Dutch 크루들에게 전해 듣기로 코시국 이후 대대적인 인원감축이 있었고 이로 인해 아시아 로컬 크루 채용도 완전히 중단됐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채용 소식은 나뿐만 아니라 항공업에 종사하는 모두에게 서프라이즈였을 것이다. 최근 속속 들리는 항공사의 채용 소식은 코로나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여행 업계가 살아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해서 더더욱 반가웠다.


2016년 ANA 전 일본 공수 퇴사 이후 항공업계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지냈는데 돌쟁이 육아에 지친 현실 때문인지 올해 1월 지인을 통해 네덜란드 항공의 채용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새삼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살살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회사. 지금이라도 다시 뽑아준다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다니고 싶지만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법에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은 2년 계약직으로 근무하게 되며 이후 계약 연장도 재취업도 불가능하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KLM을 한번 다녀 본 나는 그곳이 승무원 생활을 하기에 얼마나 좋은 회사인지를 알면서도 이번에도 군침만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KLM은 나에게 잘 잠근 첫 단추 같은 회사이다.

2010년 2월 채용 당시 23세 최연소 합격자로 KLM 승무원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삼십 대 중반이 된 지금 돌아봐도 그때가 진정 내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은 2년이었다. 정말 온 우주의 기운을 받고 조상덕까지 봐서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채용 경쟁을 뚫고 입사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지원자는 몇 천명인데 서류 통과 포함 총 다섯 번의 피 말리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고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뽑힌 인원이 겨우 20명 남짓이었기 때문이다.


2년 계약직임에도 베이스가 한국이라는 장점 때문에 타 외항사의 전현직 한국인 승무원들이 대거 지원한 다는 점도 높은 경쟁률에 한몫을 했다(실제로 동기 중에 카타르 항공 1기에 대한항공 사무장 경력을 가진 언니도 있었다). 비행시간 대비 높은 연봉과 승무원들에 대한 인간다운 대우로 알려진 회사이기도 하다. 이렇듯 KLM 전직들이 입을 모아 회사를 칭찬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꼽는 장점은 크게 네 가지이다.


*약 10여 년 전 이야기라 현재 KLM 한국 승무원 처우와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다.

1. 여유로운 비행 스케줄

KLM 한국인 승무원은 ICN-AMS(인천과 암스테르담) 단일 구간만 비행한다. 이 구간이 장거리 비행으로 간주되는 탓에 암스테르담발 비행을 마치고 베이스인 한국에 돌아오면 법적으로 최소 5일의 휴무가 주어진다. 암스테르담에 머무는 Layover는 시즌에 따라 2~3박이다. 쉽게 말해 KLM의 한국인 승무원은 한국에 살면서 한 달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세 번까지 암스테르담으로 비행하며 한 달에 반은 무조건 휴무를 갖는다. Stand-by가 껴 있는 달은 내가 승무원인지 백수인지 헷갈릴 정도였는데 휴무 때 푹 쉬고 다 놀고 심심해질 만하면 가는 비행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항상 비행 전날은 다음 날 소풍 가는 꼬마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캐리어를 싸두고 잤던 기억이 있다.


2. 승무원들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

KLM이 승객들에게 BEST 항공사는 아닐지 몰라도 승무원들에게는 BEST 항공사라고 알려진 데는 바로 승무원들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가 아닐까 싶다. 국가와 항공사마다 기내 서비스에 대한 이미지나 기대치가 다른데 특히 유럽 항공사와 아시아 항공사의 서비스는 여러 면에서 상이하다. KLM과 ANA(전일봉공수)를 다녀본 내가 직접 겪고 느낀 바이다. 간혹 KLM의 '손님이 왕은 아니다' 정신의 서비스를 접하고는 실망하는 승객들을 봤다. 서비스직이다 보니 승무원의 잘못이 아닌데도 어쩔 수 없이 승무원이 나서서 죄인이 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KLM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그런 일은 겪지 않아도 된다. 물론 승무원 개인의 실수가 있다면 승객에게 당연히 사과를 해야겠지만 큰 일도 아닌데 회사가 시켜서 승객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게 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손님이 왕이다' 같이 맹목적인 을의 입장에서 서비스 제공을 강요하는 항공사도 있다.) KLM의 이런 대우는 승무원들 사이에서 거의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본인도 크게 감명받은 바 한 개 이상의 예시를 들고자 한다.


-다른 많은 항공사 승무원들이 기내 서비스가 끝난 후 갤리(기내 부엌) 커튼을 닫고 후다닥 식사를 하기 바쁘다면 KLM은 첫 번째 음료 서비스와 식사 서비스가 끝나면 갤리마다 구비된 커다란 낚시 의자를 펴서 앉은 후 방해받지 않고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전 세계 어느 항공사 얘기를 들어봐도 KLM의 낚시의자에 버금가는 대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종종 갤리의 컨테이너 박스를 빼서 앉는 곳은 있었어도...)

승객이 필요한 것이 있어 갤리에 잠깐 들어왔다가 식사 후 여유로운 모습으로 한 손에는 잡지를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낚시 의자에 앉아있는 승무원을 보고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승무원들도 사람답게 식사하고 서비스 중간중간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 준 회사의 배려이다. 물론 갤리탑에 간단한 스낵과 함께 물과 주스를 미리 따라두고 승객들이 언제든 갤리로 들어와 먹고 마실 수 있게 준비해 둔 채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식사/휴식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때 한 갤리당 2인 1조로 배정된 승무원들은 돌아가며 식사를 하고 승객의 콜벨에 응대를 한다.


-KLM에는 승무원 휴식과 관련된 따뜻한 전통이 하나 있다. 장거리 비행인 인천-암스테르담 구간에서는 승무원 전원이 A조, B조로 나뉘어 교대로 기내 벙커에 들어가 2~4시간의 수면/휴식을 취할 수 있다. 각 조의 휴식 시간이 끝나면 듀티 중이던 사무장 혹은 부사무장이 승무원들을 깨우러 직접 벙커로 들어온다. 그들은 가볍고 부드럽게 발바닥을 건드려서 잠을 깨운 후 잘 잤어? 푹 쉬었길 바라 라는 말과 함께 앞서 만들어 둔 프룻칵테일과 핫타월(hot wet towel)을 제공한다.

*프룻칵테일: 승무원 식사용으로 제공된 과일을 잘게 잘라 컵에 담고 주스를 부어 만든 간식

시차 있는 장거리 비행에 지쳐 비행기의 큰 엔진 소리에도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져 자는데 이렇게 젠틀한 기상 알람이라면 다음 쉬프트 하기 전에 힘이 난다.  

KLM이 첫 회사였던 나는 이게 얼마나 따뜻한 제스처인 줄 미처 몰랐는데 나중에 ANA에 근무하며 스스로 맞춰둔 알람이 울리지 않아 10여분 정도 늦게 일어나서 정신없이 갤리로 내려가 보니 나만 뺀 나머지 동료들이 다음 서비스 준비를 시작해 버려서 난감했던 적이 있다(장거리 비행에 단 한 명씩만 타는 한국인 크루에 대한 은근한 따돌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누구도 내 뒤를 봐주지 않고 심지어 비행 내내 웃으며 함께 일했던 동료의 실수를 뒤에서 몰래 회사에 보고까지 올리는 그야말로 각자도생 해야 했던 회사였다.


3. 동등하고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

보통 갤리 하나에 업무를 배정받고 더치 크루 한 명과 짝꿍이 되어 하나의 갤리에 포지션을 배정받는데 이 친구와 마음이 맞으면 정말 재밌게 일할 수 있다. 짝꿍의 경력이 더 길다거나 혹은 내가 한국인 크루라고 해서 받는 차별이나 불이익이도 없다. 오히려 해당 구간 단 세명만 타는 한국인 크루들을 많이 배려하고 도와주려는 분위기였다.


나중에는 더치들의 시니컬한 농담에 빠져드는 스스로를 발견할 것이다. Boeing 747 기종 upper deck 비즈니스 클래스에 배정되면 객실 서비스 외 특별한 업무가 주어진다. 30분마다 조종실(cockpit)에 전화를 걸어 한 명의 기장과 두 명의 보조 조종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음료, 음식)을 묻거나 그들의 신변을 확인을 해야 한다. 필요한 것을 전해주러 조종실에 들어가서 운이 좋으면 오로라를 보기도 하고 11시간 비행의 무료함을 달래며 그들과 짧은 커피챗을 나누기도 한다.


타 항공사들에 대해서 보고 듣고 겪은 것과는 다르게 KLM 조종사들은 승무원을 상대로 딱히 우월감이나 직업에서 부여되는 특권의식을 갖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런 게 용납도 되지 않는 게 더치 문화라고 느꼈다.

실제로 한 갤리 짝꿍에게 들었던 문장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데 이 한마디로 더치 문화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He is a captain and I’m a cabin crew but what does it tell you? We have different roles in this flight. It doesn’t mean he is any better than me.” (그는 기장이고 나는 승무원이야. 근데 뭐? 우리는 각자 이 비행에서 맡은 역할이 다른 거지 그게 그가 나보다 낫다는 뜻은 아니야.)


유럽에 일찍이 도입된 파트 타임제는 한 사람이 하나 이상의 직업을 갖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더치 승무원들의 경우 본인의 상황에 맞게 파트타임제로 비행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풀타임(100%) 승무원이 한 달에 비행이 꽉 찬 스케줄로 일을 한다면 일부 승무원들은 본인의 상황에 맞게 50%, 70%, 80% 등의 스케줄로 비행을 할 수 있다.

실제로 같이 비행을 했던 여러 승무원들은 다양한 본업(회계사, 의사, 사업가 등등)을 갖고 있으면서 한두 달에 한번 비행을 신청하여 근무하고 있었다. 한 번은 어린 자녀를 키우는 승무원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이와 같은 시스템 덕에 한 달에 한번 육아에서 벗어나 비행을 통해 본인만의 시간을 갖는 생활에 굉장히 만족한다는 얘기를 했다. 유럽에서는 이 같은 근무 조건 때문에 직업을 권력과 지위가 아닌 단지 생계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더 강해졌고 그렇기 때문에 특정 직업에 따른 특권의식도 약화됐다 여기는 것이 지나친 비약은 아니라 생각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 네덜란드의 국왕도 지난 20여 년간 KLM의 기장직을 겸업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승무원을 세상의 많은 직업 중 하나로 여길 뿐이고 승무직의 정의나, 입사 조건, 서비스에 대한 기대 자체가 문화적으로 우리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부분이 '한국식 서비스'에 익숙한 일부 승객들로부터 유럽 항공사는 서비스가 별로라는 인식을 심어주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승무원은 서비스직이고 그런 서비스직 종사자들에게서 기대되는 어떠한 애티튜드가 있을 텐데 그 마저도 국가와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네덜란드 국적 항공기의 승무원이 된 이상 서비스직 종사자라는 이유로 내 잘못도 아닌 일이 내 잘못이 되어 무조건적인 저자세로 머리를 조아릴 일은 없을 거라는 얘기다.


4. 아름다운 암스테르담과 주변국가 여행

암스테르담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에 하나인데 레이오버가 여유 있는 편이다 보니 기차 타고 근처 유럽 국가 여행도 다녀올 수 있다. 그렇게 벨기에 룩셈부르크는 물론이고 독일, 맘먹으면 파리, 런던 여행까지도 가능하다. 암스테르담 자체로도 구경할 데가 정말 많은데 한국인 승무원이라면 필수로 지녀야 하는 뮤지엄패스만 있으면 반고흐 뮤지엄을 내 집 드나들 듯 다닐 수 있다. 자주 가다 보면 나중엔 전시되어 있던 그림의 위치가 바뀐 것까지 알아차리는 경지에 오른다.


5. 나이에 관대한 입사 조건

많은 유럽 회사들처럼 나 이제 한도 엄격하지 않아서 당시 23살이던 나보다 14살이 많은 동기가 함께 입사했었다. 기혼에 아이가 있는 분들이 입사해서 가족과 유럽을 누비며 승무원 베네핏을 오롯이 즐기는 선후배도 더러 있었다. 본인이 입사 의지가 뚜렷하고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에 가깝다면 승무원 구직에 있어 나이라는 걸림돌은 KLM 입사에 있어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애 첫 제대로 된 직장을 외항사 승무원의 커리어의 정점이라는 곳에서 시작했으니 남들은 얼마나 좋았냐 싶겠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독이든 성배나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승무원으로서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항공사 중의 한 곳을 다녔으니 후에 다른 항공사를 다니며 비교를 안 할 수 없었다.

ANA를 다니며 승무원으로서의 전체적인 업무량, 회사 내 분위기, 한국인 선후배 간 위계, 처우 등이 KLM과 비교가 됐고 일 년 반 만에 몸 안에 잔뜩 사리를 만든 후에야 퇴사를 하고 스페인으로 1년 살기를 떠났다.

이후에 어떤 회사를 입사하더라도 그만한 조건을 찾지 못해 금세 실망하고 빠른 이직을 했던 경험도 있다. 동시에 기왕이면 구직을 할 때 그 업계에서도 처우가 좋은 회사를 골라가야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했던 것 같다. 2년의 짧은 계약 기간이라는 단점은 있지만 진심으로 즐기면서 비행을 할 수 있는 항공사에 갈 의지가 있다면 누구든 여러 번 도전해 봤으면 좋겠다. KLM 현직들에게는 아쉬운 얘기지만 2년은 금세 지나고 또 누군가에게는 2년마다 입사 기회가 생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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