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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iana Feb 21. 2022

코로나 시대의 출산 2

팬데믹 중 출산 경험에 둘째 생각이 사라졌다


전편: 코로나 시대의 출산 1-출산의 Safety Drill화



불행 중 다행은 막달 내내 집에서 미리 연습했던 라마즈 호흡법이 놀랍게도 진통을 줄이는데 꽤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숨을 코로 깊게 들어마신 뒤 입으로 후우우 하고 길게 뱉는다.

날숨과 함께 통증이 잦아들면 최대한 몸을 이완하면서 짧은 휴식을 취한 뒤 다가올 수축에 대비한다.


호흡마저 세이프티 드릴을 하듯 자궁 수축 지표를 확인해 가면서 미리 연습한 대로 나름 잘 해내고 있는데 마침 남편에게서 화상 전화가 왔다. 그의 막 자다 깼지만 상기된 얼굴을 보는 순간 참아왔던 설움인지 원망인지가 북받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잘 잤니? 오래 잤네...(어금니 꽉). 나 너무 아파.

미안해 옆에 못 있어줘서. 여보 혼자서 정말 잘해주고 있어서 고마워. 내가 만나면 진짜 잘해줄게. 지금보다 훨씬 더.


내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질 때마다 남편은 본인 얼굴을 더 구기며 눈물 바람을 했다. 그래 오죽하랴 지금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그의 마음은. 단언컨대 처음이자 마지막일 자식 탄생의 순간을 곁에서 함께 축하하지 못하는 그의 마음은.


그렇게 서로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으로 하릴없이 전화기만 붙들고 있던 중 내진하러 온 간호사의 방문에 서둘러 통화를 마치게 됐다. 자궁문이 8센티가량 열려 서둘러 분만 준비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며 간호사가 의사 선생님을 호출했고 그동안 내가 누워있던 침대가 트랜스포머처럼 척척 조립되면서 분만에 적합한 자세로 눕혀졌다. 사실 여기까지는 대부분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린 데로 진행이 됐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임산부는 면역력이 많이 약하기 때문에 코로나 감염에 각별히 주의해야 했고 혼자 진통할 때는 벗고 있던 마스크도 의료진이 분만실에 들어서면 착용해야 했는데 이 마스크를 설마 분만 중에도 쓰고 있게 될 거라는데까지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드라마에서 보던 임산부가 땀에 절고 머리는 산발을 한채 이를 바득 바득 갈며 짐승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힘을 주는 바로 그 순간. 그냥 숨만 쉬기도 힘든 그 순간에 마스크까지 착용하라니. 허나 어려움은 내 사정이고 누구 하나 원망할 수도 없었다. 코로나! 욕을 바가지로 해도 시원치 않을 코로나는 그런 녀석이었다. 온갖 설움과 답답함, 두려움과 화가 응집된 형태의 감정에는 이번에도 화풀이 대상이 없었다.

호출된 의사 선생님의 등장과 함께 따로 긴장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분만 준비에 들어갔고 이때부터는 내가 애를 낳았다는 느낌보다 애 낳아짐을 당했다는 기억이 강하다.


엄마, 이제 곧 우리 아기 만날 거예요. 아빠도 옆에 없는데 엄마 정말 씩씩하게 잘하고 있어요.

이제부터 힘주기 할 건데 배가 점점 아파오면 자궁 수축이 된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신호주면 그때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흡 하고 참은 후에 밑으로 길게 힘을 주면 돼요.


지금이야! 밀어 밀어! 더 더 더 더!!!


내 다리 양옆으로 한 명씩 붙은 간호사들과 아래서 아기 받는 의사 선생님의 목청 터질듯한 열정적인 응원에 보답하고 싶었으나 마스크 안은 이미 땀으로 범벅인 데다가 코로 깊게 들이마시는 호흡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략 7~8회 힘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학생으로 치면 나는 거의 F학점에 가까운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마스크 때문에 호흡이 가빠지고 힘은 달리고 내 두 허벅지도 달달 떨리고 그렇게 타이밍도 맞지 않는데 에라 모르겠다 억지로 힘을 주다 보니 결국 온 얼굴에 핏줄이 터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팬데믹 중 출산이라는 전례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디테일한 과정은 어디서도 전해 들은 바가 없던 탓에 출산에 있어서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자부하는 나도 멘붕 상태가 된 것이다.

 

정말이지 마스크 쓰고 힘주기를 한 그 40여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게 느껴진 순간 중에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 나중에 애가 너무 이뻐서 혹시나 둘째 생각이 난다면 지금 이 순간을 절대 잊지 말자 다짐 또 다짐했다. 그렇게 총 12시간 만에 드디어 태평이가 세상에 나오게 됐다.


부채질해달라 어디를 주물러 달라 응석을 부릴 수도 없어 그냥 이것이 내 운명이겠거니 하고 담담하게 진통을 겪으면서도 제일 아쉬웠던 것은 내가 이토록 고생하는 모습을 남편이 직접 보지 못해서 애가 절로 나온 줄 알면 어쩌지 했던 것이다. 해외 발령 덕분에 남편은 앞으로 내가 평생 우려먹고도 죽어서 그의 묘비에 쓸 정도의 대역죄를 지은 죄인이 되었고 옆에 있었다면 남아나지 않았을 남편의 머릿 털은 제 명을 다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엄마인 나 혼자 겪어야 하는 일. 내 성격상 만일 남편이 옆에 있었더라면 욕받이 혹은 짜증 받이에 옆에서 숨도 마음대로 못 쉬었을 텐데 차라리 그가 없는 게 다행이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생일이 2월 28일인 태평이는 어느덧 첫돌을 앞두고 있고 출산과 육아에 정신없는 1년을 보낸 지금 이 글을 쓰며 돌아보니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출산 이후 영원히 달라져버린 나의 일상과 앞으로의 인생을 매일 상기시키던, 마치 영광의 상처 같았던 짙은 임신선도 어느덧 희미해졌고 모든 것이 미숙했던 엄마는 이제는 후기 이유식 재료쯤이야 계량기 없이 눈대중으로 때려 넣는 짬이 생겼다.  


애 낳는 건 다 똑같이 힘들다고 하나 팬데믹 전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에 멘붕이 여러 차례 왔을 엄마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앞으로 하게 될 팬데믹 베이비 엄마들을 떠올리면서 이 글을 썼다.

출산 중에 마스크를 썼든 안 썼든 제왕이든 자분이든 보호자가 함께였든 아니든 그 방법과 과정은 조금씩 달랐겠지만 그대들과 나는 같은 전장에서 싸운 용사였다. 팬데믹 중에 임신, 출산 그리고 매일 전쟁 같은 육아를 치르고 있는 나와 그대들이 코시국의 진정한 파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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