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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 Mar 28. 2021

무거운 공기로 숨을 쉬던 경험들

4. '학폭에 왜 이렇게 민감할까'에 대해


얼마 전 군대 동기들을 만났을 땐, 유명인들의 학교 폭력으로 한창 시끄러웠다.


“요즘 이재영·이다영 기사밖에 안 보이더라. 잘못하긴 했는데 언론이 너무 심하게 몰아가는 거 아냐?”

“맞아, 걔네 기사밖에 안 보이더라. 왜 걔네 기사만 쓰는 거야?”


라는 질문들을 받았다. 딱히 악의 있는 질문은 아니었고 정말 궁금해서 던진 물음 같았다. 하필 앞에 기자 친구가 있으니 물어본 거기도 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조회수가 잘 나오니까 그렇겠지 뭐. 사람들이 궁금해하잖아. 그런 기사들을 좋아하고”라 답했다.


대화 주제가 학교 폭력으로 옮겨갔고, ‘사람들은 왜 학교 폭력에 이렇게나 민감할까’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마 ‘권선징악’에 대한 인간 본연의 기대(?) 같은 게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잘나가는’ 사람의 몰락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샤덴프로이데 심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학교 폭력이 대중들에게 광범위한 호소력을 갖고 이렇게나 깊이 민감해하는 건, 역시 많은 이들이 그 폭력의 직·간접적인 피해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폭행, 따돌림, 욕설 같은 학교 폭력은 학생 공동체 전반을 무겁게 짓누른다.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그걸 지켜보는 이들도 고통받는다.


부당한 걸 알지만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침묵해야 하고, 힘세고 잘나가는 일진 무리에게 알아서 눈을 깔아야 하고, 어깨라도 부딪히면 표정 관리부터 해야 하고,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긴장하게 된 경험들이 아마 대부분 있을 것이다.


누군가 교실을 자유로이 활보하고 큰소리로 하고 싶은 말이든 욕이든 거침없이 쏟아낼 때, 누군가들은 부자유한 환경에서 싸우지 않고도 패배감을 느끼며 지냈을 것이다. 폭력의 기운이 짓누르는 공간에서 무거운 숨을 쉬는 일 역시 학교 폭력의 부수적 피해다. 그러니 이처럼 많은 이들이 공분하는 건 어쩌면 다른 차원의 피해 고발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 번 터지니 봇물처럼 나왔다. 많은 이들은 ‘적절한 죗값’을 이야기한다. 적절한 죗값이 어느 정도의 값인지 모르겠다. 이곳의 죗값은 늘 너무 과하거나 터무니없이 약했으니까. 가해자들은 억울하다 할지도 모른다. 늘 그렇듯 그들 역시 일진 무리의 선·후배, 동기 간 피해자이거나 무신경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케어 받지 못한 이들일 테니까. 물론 그렇다고 학폭의 죄가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닐 것이고.


적절한 죗값이라는 것이 가해자를 적절히 처벌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었으면 한다. 끊임없이 폭력이 재생산되는 사회와 조직, 교육 시스템의 개선을 이뤄내야 할 사회의 책임이 포함됐으면 한다. 원론적이고 따분한 이야기지만.



덧붙이는 말

한 달 전에 쓴 일기인데 이제야 올립니다.

바쁘고, 게으른 생활을 청산하고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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