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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 Feb 06. 2021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전화하던 중년 남성

3. 짜증은 죄스러워지고


인사가 얼마 안 남은 날이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기사도 잡히지 않아 빈 기자실에서 멍청히 시간을 때웠다. 오후 6시 조금 넘어서 마지막 보고를 하고 서둘러 퇴근했다.


혜화경찰서를 나와 3분 거리의 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으로 걸어갔다. 해가 길어 여전히 더웠다. 일요일이라 저녁시간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천안 신창 하행선을 탔다. 얼마 안 가 전철은 지상으로 올라다. 마주 보는 창으로 들어오는 해가 뜨거웠다. 햇볕이 눈을 찔러 짜증이 났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나' 생각했다.


"어~ 00이냐? 나 00다" 갑자기 한 남성의 목소리가 열차 안에 크게 울렸다. 50대 중후반이나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은 휴대전화로 막 통화를 하던 참이었다. 열차 승객들의 시선이 한 곳에 모였다가 이내 흩어졌다. 주변을 아랑곳 않는 중년 남성 특유의 무딤에 나는 또 짜증이 났다. 초여름 날카로운 햇빛 후텁지근함, 중년 남성의 뻔뻔함과 무례함.


그는 계속 목소리가 컸다. "00이 죽었대 (...) 아 우리 중학교 동창 있잖아. (...) 응 있어. 암이래" 그는 오랜만에 연락하는 듯한 친구에게, '걔 오늘 생일이라더라' 하듯 대수롭지 않게 친구의 죽음을 전하고 있었다. 언뜻언뜻 가벼운 웃음소리도 내가며 "생로병사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따위의 말도 했다. 비웃음은 아니었고, 허탈함 같지도 않았다.


그의 얼굴을 봤다. 술을 마셨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는데, 무언가에 취한 듯 불콰한 얼굴이었다. 흰머리 비율이 3~4할은 돼보였고, 허름하진 않지만 결코 부티 나지 않은, 정돈되지 못한 행색이었다.


그는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 같았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이곳에 남은 이들에게 괜히 덤덤한 척 전화를 걸어 시답잖은 말로 안부를 묻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내 나이에 이젠 모든 죄가 다 어울린다는 것도 안다. 업무상 배임, 공금횡령, 변호사법 위반, 뭘 갖다 붙여도 다 어울린다. 때 묻은 나이다. 죄와 어울리는 나이. 나와 내 친구들은 이제 죄와 잘 어울린다." (허연, 슬픈 빙하시대2 중)


1호선 열차의 그 중년 역시 '죄와 잘 어울리는 나이'로 보였지만, 그 스스로가 대단한 범죄를 저지를 법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다만 그는 '암'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나이였고, 스스로도 알았던 것 같다. 당연히 친구들도 그랬을 것이다. 중년 남성은 죽은 친구에게 나름의 애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짜증이 울컥 하고 죄스럽게 느껴졌다.



덧붙이는 말


2년 전 초여름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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