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막말 정치'의 귀환
준비생 시절, 글쓰기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마"
글쓰기 수업 중 누군가가 쓴 작문을 첨삭하면서였는데 등장인물이 글 도입부에서부터 죽었다. 자극적인 설정으로 무리하게 글을 쓰지 말라는 것, 그보단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게 고민하고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자극이나 충격보다는 탄탄한 논리와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한 올, 한 올 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글에서도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다뤄선 안 된다'는 말 같아서 좋았다.
선생님은 이런 말도 했다. "문장으로만 승부를 보려 하지 마". 자연스럽게 이야기로 공감하게 해야지 센 단어나 특정 어구만으로 억지 눈물을 강요하지 말라는 거였는데 앞의 말과 같은 맥락에서였다.
예전에 국회의원을 지냈던 민경욱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잠깐 소란이 인 적이 있다. 본인이 쓴 건 아니었고 다른 사람이 썼다는 글을 공유하면서 "누구의 글이라도 정말 절창"이라고 했다. "이 씨부럴 잡것들아!"로 시작하는 긴 말 뭉텅이는 정치적 반대파를 향한 욕설, 고인모독, 허위사실로 가득했다. 새끼, 똥, 주사파, 절단, 눈깔, 수령, 빨갱이, 개돼지, 노회찬의 투신에 피한방울 튀지 않은 기적, 전태일도 조작한 건 마찬가지, 휘발유 뿌리고 라이터 땡긴 거지, 개쌍판, 518 유공자되어 몇 푼 받아 먹는 네놈 탐심, 문재인놈 등등등. 굳이 그의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라도, 보는 눈이 지쳤다.
언론인 출신 민경욱씨는 아마 글을 잘쓰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온갖 자극적 언어와 비속어, 제어되지 않은 분노로 점철됐을 뿐인 글자뭉텅이를 '절창'이라 할 리가 없을 테니까. 그가 방송사 출신이라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내가 아는 많은 방송기자들과 아나운서들은 글을 잘 쓰니까. 사람은 대게 능력 없고 가진 게 없을 때 말이 거칠어진다.
민경욱씨만 그런 건 아니었고, 한창 정치인의 막말이 극에 달한 때였다. 언론들도 조회수가 나오니 막말로 유명한 정치인들을 줄곧 팔로하며 적대적 공생관계처럼 그들의 말을 실시간으로 실어날랐다. 하지만 그런 언어폭탄이 과잉되는 게 좋은 일일 수 없었고, 그에 대한 비판이 늘어났다.
다행히 지난 21대 총선 때 '막말' 정치인들은 많이들 떨어져나갔다. 민경욱씨를 포함해 차명진, 이언주, 김진태, 나경원 등등이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막말로 상대를 상처입히고, 정치를 오염시킨 이들이 뒤늦게나마 작게라도 쓴맛을 봐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앞으로 막말이 설 곳이 없었으면 바랐다.
한동안 바람대로 막말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정치 자체가 눈살이 찌푸려지기 쉬운 소재이니 그거야 어쩔 수 없었지만, 막말이 넘나들던 과거와 달라서 그나마 괜찮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최근 재보궐을 앞두고 여야를 불문 막말이 또 한 번 쏟아져나왔다. 국제 법제사법위원장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대당 서울시장 후보를 겨눠 "쓰레기"라고 지칭했고,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김영춘 민주당 후보는 “부산은 3기 암환자 같은 신세”라고 말했다.
야당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은 '중증 치매환자'라고 해서 비판을 받자 "제가 '무슨 중증 치매환자도 아니고’라고 했더니 과한 표현이라고 한다. 야당이 그 정도 말도 못하나”라며 뭐가 문제인지 전혀 감도 못잡고 있었다. 그런 그는 용산참사가 임차인들의 폭력적 저항 때문에 발생했다는 취지로 말해 비판을 받자 뒤늦게 사과해야 했다. 박영선 민주당 후보는 또 어떤가. 20대 지지율이 크게 뒤처지는 것으로 나오자 "20대는 역사 경험치가 낮다"고 했다지.
이런 촌극을 볼 때면 역시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밖에 없다. '사람은 대게 능력 없고 가진 게 없을 때 말이 거칠어진다.' 그들이 그렇다.
덧붙이는 말
투표권이 생긴 뒤로 누구를 찍어야 할지 역대급으로 고민되는 선거입니다.
사실 '굳이 선거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ㅎㅎ